[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2007.08.16. 목, 20:00, 메가박스 신촌 5관 E-11

“짝사랑이라도 그건 그거 나름대로 완성된 사랑이야.” (마코토)

“난 단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싶었어.” (시즈루)

01
뒤늦게 깨달은 사랑은, 그리하여 만날 수 없는 시간 동안 싹튼 사랑은, 환상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와 같은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조금 다른 형태긴 하지만, 아는 사람 중엔 근 20년 가까이 자신의 존재도 모르는 사람을 혼자서 좋아하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런 사랑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환상이기 때문이다. 헤어졌거나 만날 수 없는 동안에 깨닫거나 싹트고 있는 사랑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어 하)는 방식의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말이, 만남을 유지하는 관계의 사랑은 환상이 아니라거나 환상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현실과 환상이란 이분법적인 구분과 경계 짓기를 효과적으로 허문다(물론 이런 경계를 가장 멋지게 허무는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들이지만). 소위 현실이라고 불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환상에 기댈 때, 그에게 현실과 환상이란 식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현실감이 떨어진다”란 식의 평은, 마치 그렇게 말하는 이의 인식세계야 말로 견고하고 “현실”적이다(“객관적이다”)란 오만함의 반증이라고 의심하고.

02
이 영화와 가장 비슷한 영화를 꼽으라면, [국경의 남쪽]이지 않을까 싶다. 나이도 상황도 다른데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와 [국경의 남쪽]이 비슷하다고? 이런 느낌이 든 건, 둘 다 사랑을 통한 성장을 그리고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상대방을 재현하는 방식 때문이다.

시즈루(미야자키 아오이 분)의 변화와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이 영화를 읽어가다가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하는, 하지만 충분히 예측가능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리하여 이 영화의 화자가 시즈루가 아니라 마코토(다마키 히로시 분)란 걸 낯설게 깨달았을 때, 결국 이 영화에서 사랑/성장 이후의 삶이 가능한 사람은 마코토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이점이 정확하게 [국경의 남쪽]과 닮았다. [국경의 남쪽]처럼 마지막으로 만나는 모습이 사진 속에 박제된 모습이란 것 역시 똑같고.

사진을 일종의 박제하기, 변하지 않는 것으로 고정하려는 욕망의 표현으로 해석한다면, 이 영화의 후반부(혹은 결말) 역시 상대를 박제하며 자신의 성장을 꽤한다는 점에서 유쾌하진 않다.

03
작년 메가박스에서 주최한 일본영화제의 개막작이었던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막무가내로 읽고 싶었다. 하지만 일본영화제를 한단 걸 알았을 땐 이미 매진. 그리고 얼추 일 년이 지났다. 8월 15일 메가박스의 모든 지점에서 개봉한다는 걸 알았을 때의 기쁨이란.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리뷰와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기대치를 낮췄고, 심지어 ‘제목이 전부인 영화 아냐’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제목이 반이거나 전부라면, 비교하기 딱 좋은 텍스트도 이미 중얼거리고 있었고. -_-;;

이렇게 기대치를 낮춰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괜찮았다. 제목이 반이고 시즈루란 캐릭터가 반이라고 하면 살짝 과장한 감이 없지 않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고. 시즈루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아무려나 극장에 한 번 더 갈 거다. 메가박스에 갔다가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래서 다시는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안 읽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만(나름 멀티플렉스인 아트레온은 상당히 괜찮은 곳임을 깨달았달까;;;), 한 번 더 가기로 했다. 나중에 DVD도 살 것 같다. 물론 가야지 가는 거고, 사야지 사는 거지만. -_-;; 흐흐.

이처럼, 이 영화에 가지는 감정은 상당히 양가적이다.

04
ただ一度の愛

이사

어제 아침, 소나기가 올 수도 있다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음에도 빨래를 했다. 요행수를 노렸달까. 하지만 어제 저녁, 연구실에 앉아 있을 때 정말 시원한 기세로 비가 내렸다. 빨래를 할 때부터 비에 젖으면 밤에 다시 빨래를 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서인지 별로 당황하진 않았다. 근데 늦은 밤, 玄牝으로 돌아가니, 문 앞에 곱게 갠 빨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래층에 사는 주인집에서 한 일이리라. 이런 주인집과 사는 것도 복이다.
(오늘도 지난날처럼 햇살 한 번 좋다. 하지만 사실 이런 날은 빨래를 말리기에 좋은 날이 아니다. 비온 뒤 햇살은 따가워도, 젖은 땅의 습기가 증발할 때 병원균과 함께 증발하기 때문에 비온 뒤엔 빨래를 말리거나 눅눅한 이불을 건조하지 않는 게 좋다고. 초등학생 때 이렇게 배워서 여전히 이 말을 믿고 있지만,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흐흐.)

몇 주 전, 이사를 간다면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살짝 했다. 아침, 씻으려 간 화장실에서, 이사를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고개를 살짝 돌리니 무지 큰 세탁기가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玄牝으로 이사 온 후 큰 짐만 두 개(세탁기와 냉장고)가 생겼다. 그러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몇 년은 더 지금 사는 곳에서 살겠다고 다짐을 한 건 세탁기와 냉장고의 부피와 무게 때문이 아니다.

지난 玄牝에서 지금의 玄牝으로 이사 올 때, 얼추 사과박스 정도의 박스로 30개가 넘었다. 그 중 대여섯 개의 박스를 제외하면, 모두 책이었다. -_-;; 이 박스들을 들고 1층에서 4층까지 왕복했을 때, 더군다나 MDF박스 30개도 날라야 했을 때(한 번에 두 개씩이니 총 15번을 왕복해야 했다), 다시는 책을 안 사거나 이사를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처음 이사했을 때만큼은 아니어도 얼추 그 만큼의 책이 방 한 곳에 쌓여있다는 걸 깨달았다. ㅡ_ㅡ 이렇게 쌓여있는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이곳에서 눌러 살아야 하나, 중얼거릴 뿐.

그런데 이사를 가야 한다. 다행히 玄牝의 주소지를 옮기는 일은 아니다. 연구실을 다른 건물로 옮기는 이사다. 아악 ㅠ_ㅠ 거짓말 아주 조금만 보태서 이삿짐의 1/3은 루인의 물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 물건의 절대 다수는, 역시 책이다. -_-;; 학교가 학과별로 공간을 재배치하면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근데 이사를 하기 싫은 건, 책을 포장하고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연구실의 자랑인, 창문 너머의 풍경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어서다. 옮기는 건물의 경우 창밖 풍경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고 알고 있고, 방은 강의실을 둘로 나눠서 만든 곳인 듯 하다.

다만, 방의 호수를 아직 확인 못 했는데, 루인이 가장 좋아했던 강의실일 수도 있다는 점이 위로라면 위로랄까. 학부시절 시험기간이면 도서관이 아닌 빈 강의실에서 시험공부를 했는데, 시험 때문에 사용하고 있지만 않다면, 거의 항상 그곳에서 놀았다. 옮겨 가는 곳은, 그곳 아니면 그 옆방 정도인 것 같다. 그렇다면, 뭐, 나쁘진 않다. 그래도….

레즈비언은 시민인가? -이색 첫번째 워크샵

아는 분이 모 블로그 방명록에 올려 놓은 걸 이제야 확인했다. -_-;; 예전에 이웃블로거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에서 이와 관련한 기획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건가 싶기도 하네. 흐흐. 🙂

재밌겠다.

레즈비언은 시민인가? : 한국사회 성적시민권에 관한 논의

발표: 박하, 토리, 복어알
일시: 2007년 8월 30일 (목) 저녁 7시
장소: 대방동 여성프라자 시청각실
문의: 02-2139-7807
주최: esac
후원: 민주노동당

이색esac(evan study and activism)은
이반연구활동가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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