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 “투쟁의 서사”에서

적당히 의역함-_-;;

[자신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면, 두려움을 느끼며, 그래서 침묵하고픈 유혹에 빠진다는 말을 한 후]
이렇게 지속하는 두려움은, 인종차별주의, 계급착취, 그리고 성차별적인 지배의 억압적인 구조를 통해 받은 나/우리의 상처에 대한 나의 깨달음을 증대시킨다. 이런 정치적 자기회복, 혁명적 의식의 발달은 상처를 치유하지 삭제하지 않는다. 이런 두려움은, 몸에 지속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잊혀진 상처로서, 집요하게 인식하길 요구하는 과거의 공포와 고문의 기호로서 드러난다.
피착취자와 피억압자의 가슴과 정신에서, 공포와 순화되지 않는 두려움의 발생은, 지배 정치에 우리를 묶어 두고, 우리가 저항할 수 없고 저항이 두려워 제자리에 머물도록 한다. 모든 수준에서, 이런 두려움을 직면하고, 우리의 삶에서 그런 지배를 깨는 것은 저항의 즐거운 몸짓이다. 우리의 정치적 자기회복이 완전해 지는 걸 믿는 나를 비롯한 개인들에게, 두려움의 일부가 남아있다는 건 불안하겐 해도 무력하게 하는 건 아니다. 이런 두려움은 내가 종종 잊길 원하는 기억, 장소 그리고 상황으로 나를 되돌려 놓는다. 그것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저항은 또한 “망각하지 않으려는 기억의 투쟁”이라는 앎을 기억하도록 한다. 기억은 우리가 역사의 주체이게 한다. 망각하는 건 위험하다.

나의 마음(mind)은 피난처, 성소, 침략의 두려움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나의 마음은 저항의 장소이다.

만약 마음이 저항의 장소라면, 오직 상상력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이럴 때, 상상한다는 건 현실을 변화시키는 과정의 출발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bell hooks, “Narratives of Struggle”, in Philomena Mariani edit. Critical Fictions: The Politics of Imaginative Writing p.53-61

예전에 한나님 블로그에서 이 글을 소개 받곤, 곧장 학교 도서관을 통해 이 책을 주문했다. 벨 훅스의 개인 저작엔 이 글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오늘 아침, 길지 않은 이 글을 읽으면서 상당한 힘을 얻었다. 벨 훅스의 글은, 언제나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나게 한다. 그건 벨 훅스 자신이 페미니즘을 너무도 사랑하고 믿기에 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도 나오듯, 저항은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고, 이런 과정을 통한 믿음과 상상력이 다시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 건 아니지만, “힘을 북돋우는 잠재적 공간으로서의 추방자의 정치학(politics of exile)” 역시 이런 맥락에 있고, 상당히 매력적인 동시에 정말로 힘을 주는 구절이다. 이와 관련한 글은, [열망]Yearning의 한 챕터에서 다루고 있다.

엽서 두 장

어제 낮, 오늘 있는 수업의 발제가 있어 나름 정신없이 글을 쓰고 있던 중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학과 사무실 옆에 있는 알림판에 엽서 두 장을 붙이고 싶어졌다. 한 장은 “우리, 여기에, 함께” 홍보용으로 나눠준 엽서고 다른 한 장은 올해 퀴어문화축제 엽서 중 고양이병아리(병아리를 고양이로 종전환시켰네요;;;;;)와 코끼리가 마주보고 있는 것. 떠오른 김에 곧장 알림판에 엽서 두 장을 붙이고 다시 발제문을 쓰다가.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잠깐 바람도 쐴 겸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사무실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알림판이 허전했다. 두 장의 엽서가… 없어졌다. 떨어진 건가 해서 바닥을 둘러봤지만 없었다. 떨어질 만하게 붙인 것도 아니고. 그러자 가능한 상황은 단 하나. 누군가 탐나서 뽑아간 것.

거참, 사무실 문을 두드려서 달라고 하면 두 장씩도 드릴 수 있는데… 허허.

흐흐흐. 그저 예뻐서 가져갔건, 일종의 용기와 지지를 주는 부적과 같은 의미로 가져갔건,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상상을 하자, 기분이 좋았다. 또 누군가 몰래 가져가길 바라는 몸으로, 알림판에 다시 두 장을 붙였다.

여이연과 동인련, 그리고 지렁이

어젠 총 세 개의 일정이 있었다. 두 개는 포럼 혹은 발표회고 다른 하나는 지렁이 회의. 포럼 중 하나는 여이연에서 10주년 기념으로 하는 학술대회였고, 다른 하나는 동인련에서 미국의 LGBT단체를 방문하고 돌아온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날짜가 겹쳐서 안타까웠지만, 다행히 여이연은 10시부터 시작하고 동인련은 오후 3시부터 시작하니, 여이연을 듣다가 동인련에 가면 되겠다 싶었다.

우선, 여이연. 장소는 서울대대학병원에 있는 함춘회관이었나. 꽤나 멋진 곳이었다. 지렁이도 나중에 이런 곳에서 행사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장소. 흐흐. ;; 놀라운 건, 참석한 사람이 (우연히 들었는데) 150명이 넘는 것 같다는. 오전엔 꽤나 앞에 앉아서 처음엔 몰랐다가, 나중에 질의응답시간에 질문자를 보려고 뒤돌아 봤다가 사람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엔, 빠져나가기 쉽게 제일 뒤에 앉았는데 좌석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더라는. 그래서 진행을 맡고 있는 분이 계속해서 보조의자를 내오고. 이날 가장 듣고 싶은 주제는 임옥희선생님 발표에 김영옥선생님 토론 조합이었다. 아아, 참석하기 전부터 최고의 조합이라고 기대했지만, 동인련에 가야해서 못 듣고 나와야 했다는… ㅠ_ㅠ

여이연과 동인련 행사 모두 혜화동 근처여서 멀지는 않았는데, 길을 전혀 모르는 동네인지라(길을 아는 동네라고 안 헤매는 건 아니지만-_-;; 흐흐) 길을 나섰는데, 길치인 걸 감안하면 꽤나 잘 찾아갔다(방점은 알아서;;;). 정말 외진 곳에 장소를 구했더라. 그리고 발표회를 위해 빌린 사무실에 들어가니, 순간적으로 여이연의 학술대회 장소와 너무 비교가 되더라는. 작은 사무실에 접이식 책상을 몇 개 잇대어서 만든 회의장소. 얼추 10분전에 도착했는데 3시 정각에 이를 때까지 주최측을 제외한 참석자는 루인 뿐이라 상당히 당황했다(참석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관심이 집중될까봐;;). 그나마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해서, 주최측 포함 얼추 20명 정도 모였지만.

우연히도 같은 날 진행한 두 행사의 전혀 다른 모습에, 몸이 복잡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 운동과 LGBT 혹은 퀴어 운동의 현황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10년을 맞이하는 단체임에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활동의 성과와 관련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 말이 동인련의 활동과 성과가 적다는 의미는 아니고, 여성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여이연에서 내는 출판물들의 무게가 꽤나 크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동인련 발표회가 끝나자 곧바로 지렁이 회의 장소로 이동해선, 11월 3일에 있을 영화 상영 및 포럼 준비를 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측이 불가능하단 점에서 다과 등을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고. 예전에 학교에서 했던, 여성주의문화제의 하나로 영화 상영을 했을 땐, 영화를 보러 온 사람보다 문화제를 준비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흐흐. 물론 회를 거듭할수록 사람 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현재 예약한 장소의 좌석을 반 이상만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