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와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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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사를 읽으면서, 별로 논평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럴 수 없게 만드는 몇 가지 지점 때문에. (첫 번째 기사만 읽었고 나머지는 관련 기사라서 같이 링크했을 뿐.)

01. 첫 번째로 링크한 기사만 읽고 있으면, 아동의 인권과 관련해서 한국이 세계 1위 같다. 아니 한국을 따라갈 나라가 있을까 싶다. 언제부터 아동의 인권에 이렇게 관심이 많으셨는지. 한국의 아이들은 참 좋겠다. 아동의 “인권”엔 이토록 관심이 많은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 아동*의 인권* 말고 *아동*에게도 좀 관심을 가지지.

(일테면 아이가 있는 트랜스젠더의 경우, 성별변경이 현재로선 안 되는데, 많은 반대논리는 아동의 인권이다. 아이가 겪을 혼란을 생각해야지 부/모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비난과 함께. 하지만 정작 트랜스젠더 부/모와 아동의 입장에선 호적상의 성별변경을 하지 않는 것이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학교에 온 사람은 아버지면서 “여성”인데 호적상엔 “남성/부”로 적혀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호적상의 성별변경을 하지 금하는 것이 아니라 승인하는 것이 “아동의 인권”이다.)

02. 신문기사는 “트랜스젠더의” 입양, 즉 트랜스젠더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이를 통해 혈연가족이라는 강박이 심한 한국사회에서 “입양”아동이 경험하는 지점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기사는 입양아동은 “입양한” 아동지만 한국의 왕따 문제와 무관하다는 환상을 조장한다.

왕따문화가 있어서 트랜스젠더는 아동을 입양하면 안 된다는 말은, 아이는 부모의 역사와 무관하게 입양아동임을 알고 있을 거라는 전제가 동시에 작동하는데 그렇다면 한국에서 가족은 반드시 “이성애”혈연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강박 먼저 문제제기해야 하지 않나? “입양”도 왕따의 원인으로 작동한다면, 트랜스젠더 부모가 입양하는 걸 반대하는 건 부모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일종의 “트랜스혐오”로 읽을 수 있겠지) 동시에 가족은 반드시 혈연으로 구성해야지, 입양한다는 것, 그것도 공공연히 입양한다는 것 즉 가족을 입양을 통해 구성한다는 것도 반대의 주요 이유일 테다. 하리수가 아닌 다른 연예인들이 아이를 입양할 때도 언론에선 상당히 호들갑스레 반응하니까. 물론 부모가 트랜스젠더도 ‘아니’고 “동성애자”도 ‘아니’란 점에서 보도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왕따를 경험할 수 있으니 입양은 안 된다”는 논리가 말이나 되긴 돼? 이런 논리라면 장애인은 결혼을 하면 안 되거나 결혼은 해도 아이를 낳으면 안 되고, 이주노동자 역시 아이를 낳으면 안 되고, 아이가 왕따를 당할 수 있으니 이혼은 절대 해선 안 되고, 부모 중 한 명이 없으면 “결손”가정이 되니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 중 누구도 절대 죽으면 안 되고 등등. 지나친 오독일 수도 있지만, 이런 논리는 현재 만연한 “왕따”문제를 풀어갈 의지가 전혀 없거나, “왕따문제”는 “왕따 당하는 아이의 문제”이지 “왕따를 하는 아이의 문제” 혹은 “왕따”가 가능하게 하는 사회문화적인 맥락의 문제는 아니란 식으로 읽힌다.

03.

법적으로는 트랜스젠더의 입양은 문제가 없지만 상당수 국민 의견은 “입양한 아이가 나중에 부모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받게 될 정체성 혼란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데 모아지고 있다.

기사는 이 구절로 시작하는데, 조금은 진부한 얘기를 덧붙이자면, “성별은 타고난 것이며 절대 변할 수 없고 이성애야 말로 자연스러운 거다”라고 말하며 “아이들이 겪을 정체성 혼란” 운운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성애”도 “여성”/”남성”이란 정체성도 결코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정체성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 만약 “이성애”나 “여성”/”남성” 정체성이 그렇게 본질적이고 안정적이라면 이런 식의 말을 하며 불안할 이유가 있을까? 부모가 “동성애자”건 트랜스젠더건 아이의 정체성에 무슨 상관이 있겠어.

04. 이 기사에 논평을 해야겠다고 느낀 건, 인터뷰를 인용하는 방식 때문에.

서강대 조옥라 교수(사회학)는 “부모의 마음이야 그렇지 않더라도 요새 아이들은 뭔가 꼬투리 하나만 있어도 왕따를 시킨다”며 “(트랜스젠더의 입양은) 우리 국민이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상황이라 당분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은

입양된 아이의 ‘왕따’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게 한국사회의 현실이라는 진단이다.

조옥라교수의 말은 “트랜스젠더의 입양이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논쟁이 될 거라는 의미인데 반해 기자는 이 내용을 “트랜스젠더가 입양한 아이는 왕따가 될 것이다”란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코미디는

이진우(34) 간사는 “하리수의 결혼은 성전환자들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좋은 선례이고 입양계획도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면서도 “입양기관은 대부분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트랜스젠더에게 아이를 맡기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는 인용구를

트랜스젠더의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전문가들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표명하고 있다.

라고 해석하는 지점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있다. 이진우씨는 입양기관이 종교단체라서 아직은 힘들 거라고 얘기하고 기자는 시기상조라고 해석했다. 이거 코미디 맞지? “호형호제를 허하노라”고 말하는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해 소자..”라고 대답하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어” 가출했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거지?
(근데 언제부터 이진우씨가 “트랜스젠더의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전문가”였어?)

05. 입양기관에선 계속해서 “국민의 정서법상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하는데, 그럼 그 시기는 언제인가요? 적당한 시기를 하사해 주시면, 감히 받들어 그 시기에 입양을 추진하겠사와요. 흥!

글고, 트랜스젠더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냐? 역시 “불법”이었어? 역시 그런 거야?

06. 이런 논쟁을 찬반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인권침해”아냐? 코미디는 계속된다.

07. 노회찬 관련 기사를 읽으면 속이 탄다. 노회찬 관련 기사에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성전환자인권실태조사기획단·노회찬의원실 발행)’라고 적여 있는데, 노회찬 의원실에선 인쇄비만 냈거든! 조사 자료집에도 “후원”으로 명시되어 있거든! 아울러 퀴어문화축제때 이 양반이 와서 축하인사를 했는데, 멀찌감치 서서 들으며 든 상념: 선거 유세 하러 왔니?

정말, 코미디는 계속 된다!

※지렁이 블로그엔, 마지막 부분을 고쳐서 올렸음.

어제 일기

2007년 6월 13일 수요일 날씨: 맑았다가 흐림. 가끔 비.

아침 5시 53분에 잠에서 깨어났다. 무려 12시간 가량을 잤다. 중간에 서너 번 정도 깨어나기도 했지만. 전날 늦은 회의로 피곤했고 그 전의 피로까지 겹쳐 있었으니까. 회의 때도 12시가 넘어가면 졸기 시작하는 루인이니 밤새 회의를 했다는 말은 루인에겐 참 민망한 말이다. 정말 단 한 번 조는 일 없이 회의를 하는 사람들은, 피곤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일은 몸이 기억하는 리듬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제 새벽 4시, 회의가 끝나고 玄牝으로 돌아가는 길은, 택시를 타지 않고 걸었다. 몇 번 택시를 타며 대충 어떻게 가면 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길치에 방향치인 루인이 택시 몇 번에 길을 알았다는 말은, 회의를 한 사무실에서 루인이 머무는 사무실로 가는 길이 일직선이란 의미이다. 반쯤은 조는 상태로, 반쯤은 Kevin Devine을 듣는 상태로 걸었다. 그 시간에 걷기도 참 오랜만이다.

어제 오전엔, 오랜 만에 친구를 만나 잠깐이지만 얘기도 나눴다. “오랜” 만이라고 적지만, 루인의 시간 개념으론 오랜 만이란 느낌은 별로 안 든다. 다만, 그 친구와 소통하던 방법의 하나가 (루인의 입장에선 서실상) 사라졌기에 이제 오프라인으로 만난다면 정말 오랜 만일 지도 모른다. 메일을 제외하면 이제 오프라인 뿐이니까. 사실, 루인의 입장에선 블로그 이웃이란 느낌으로 그 친구를 만나기도 했고, 블로그가 그 친구와 관계를 맺어가는 정말 소중한 방식의 하나였기에 많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얘기를 들으며 정말이지, 루인이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헤어질 때, 어떤 인사말을 할까 하다가 듣는 입장에선 너무 슬픈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다른 말로 바꿨다.

저녁엔 일찍 玄牝으로 돌아가 잠들었다. 잠을 자는데 여러 번 잠에서 깨어났다. 온 몸에서 쥐가 나는 느낌에 깨어나기도 했다. 너무 더워서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잠에서 깨어나 라디오를 듣다가 섬머타임제와 관련한 내용이 나왔다. 보도하는 기자가 섬머타임제를 실시하면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기 위해선 6시 15분이 아니라 사실상 5시 15분에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손석희는 “5시 15분에 방송을 준비해야 하는 건 그렇다”고 말하는 걸 들으며, 피식 웃었다. 웃었지만, 이 말이 가장 와닿는 말이기도 했다.

어제 잠들 때부터 약간 불길했는데, 결국 알러지성 비염이 터졌다. 코에 화장지를 쑤셔 넣고 버티고 있는 시간. 잠이 오지 않는 비염약이지만 부작용으로 잠이 온다는 문제의 그 약을 먹고 버티고 있지만, 약발이 듣지 않고 있다. 읽어야 할 게 산더민데… 졸립다;;;

[몽테크리스토퍼 백작]에 보면, 당테스가 옛날 애인의 집에 갔지만, 어떤 음식도 먹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누군가가 준비한 음식을 먹음과 먹지 않음, 누군가와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 이런 행동들, 음식을 둘러싼 이런 행동들의 의미를 떠올리고 있다. 조만간에 별도의 글을 쓰려나? 그런데 이렇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채식주의자에겐 의미가 또 달라지기도 한다. 아마 조만간에 별도의 글을 쓰겠지 싶다. 조만간이 언제인진 모르겠지만.

새가 우는 연구실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의 진가는 한겨울 눈이 오는 밤이나, 그렇게 눈이 쌓여있는 시간에 느낄 수 있다. 지난겨울, 연구실 창문 밖에 있는 나무들이 눈꽃을 피웠을 땐 정말이지 북극에 와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어릴 때 읽은 소설의 한 장면처럼, 북극의 어느 지역에서 이글루를 만들고 그 안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랄까. 혹은 나무로 만든 집이 엉성해서 벌어진 틈 사이로 눈보라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런 시간이 아니어도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은 정말이지 매일매일 감동의 순간이다. 모든 학교의 건물이 그러하진 않겠지만,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은 한쪽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건물 뒤에 있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연구실 뒤엔 산 혹은 언덕이 있는데, 산 혹은 언덕의 모습을 모두 볼 수는 없지만, 그 언덕에 자라는 나무들이 사시사철 변해가는 모습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계절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다. 죽어 다시 태어날 때 어떻게 태어날 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는 바람처럼 언덕 혹은 산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건, 그저 피곤해서 잠시 눈을 쉬려는 행위 이상이다.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은 북향인데, 북향이기 때문인지, 북향임에도 불구하고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서늘한 편이다. 겨울에야 좀 춥다고 해도 여름 같은 날은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아직도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연구실 문과 창문을 열어두면 그렇잖아도 낮은 온도의 연구실에 바람이 선선하게 불면서 더 시원한 공간으로 변한다. 그래서 어떤 땐 긴팔 겹옷을 준비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을 정도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사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긴팔 겹옷이라니!

비록 여러 날 전, 히치콕의 [새]를 볼 때는 조금 무섭긴 했지만, 그럼에도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의 진짜 자랑거리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기도 한데) 하루 종일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겨울만 아니라면 혹은 새들이 머무는 시기이기만 하다면, 하루 종일 새소리가 들린다. 뻐꾸기 소리부터 여러 새들의 울음소리. 그래서 요즘 같은 시기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기보다는 비록 음질이 많이 안 좋다고 해도 스피커로 작게 음악을 틀어서 새소리와 함께 듣는 편이다. 새소리와 함께 듣는 음악의 즐거움은, 서로의 소리와 잘 어울리기만 한다면, 이 순간만큼은 어떤 고민들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혹은 지금의 고민을 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창 밖을 보며 새소리를 듣고 있을 때면, 창틀에서 뛰노는 참새나 다른 새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꺄릇,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비명을 삼키며 절로 의자에서 일어나곤 한다. 새를 좀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음. 물론 이런 반응에 새들은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그럼 곧 미안함을 품지만, 종종 걸음으로 새들이 뛰어노는 창틀. 그리고 종일 새소리가 들리는 공간.

몸이 조금 피곤함에도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드는 건,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이 이런 공간이기에 가능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