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락 웹아카이브, TQueer.com을 퀴어락으로 기증!

“TQueer.com: 당사자주의가 아닌, 또 다른 퀴어 활동을 위한 웹진”이란 웹진이 있습니다. 2010년 8월 첫 글을 공개하면서 시작했고 2012년 2월 마지막 글을 공개하며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사자주의와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트랜스/젠더/퀴어 정치학으로 글을 쓰고 번역 작업을 했던 웹진입니다.
보통 웹진 활동이나 단체 활동이 중단되면 해당 단체나 모임의 홈페이지, 블로그, 게시판 등은 방치, 폐쇄 혹은 소멸의 수순을 밟습니다. 활동 당시 특정 시점에서 홈페이지 호스팅 계정을 연장 했다면, 이후 활동을 중단하면서 더 이상의 호스팅을 연장하지 않지요. 그렇게 단체의 소중한 기록, 흔적이 남아 있던 사이트는 사라집니다. 누구도 찾을 수 없고 때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도 없게 됩니다. 이것은 인터넷 시대의 슬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백업 데이터를 가지고 있겠지만 운영 당시의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활동 당시 생산한 자료를 살피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TQueer.com” 역시 지금은 아는 분이 거의 없을 듯합니다. 2012년 2월을 끝으로 더 이상 웹진 활동을 안 하고 있으니까요. 다행인 건 활동을 중단했음에도 TQueer 활동가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정을 계속 연장하며 사이트를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비온뒤무지개재단 부설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 연락을 해왔습니다. 홈페이지의 관리 및 유지 권한을 퀴어락에 기증하겠다고요.
웹아카이브는 퀴어락이 오랫 동안 고민하고 있는 영역입니다.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던 시대, 통신도 활발하지 않던 시대엔 잡지라는 형태, 종이 편지의 형태, 포스터의 형태로 삶과 활동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잡지나 소식지를 발간하던 단체가 활동을 중단해도 관련 기록이 남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퀴어락은 1993년 말에 설립해서 1994년 초에 해소한 초동회의 소식지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퀴어락 자체는 2009년에 설립되었지만 종이 잡지나 편지는 누군가가 보관할 수 있는 형태니까요. 웹진은 좀 다릅니다. 웹진은 구독자가 ‘소유/소장’할 수 없으며, 발행 단체가 사라지고 계정 연장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찾기가 불가능합니다. 인터넷 시대는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용 걱정이 종이잡지에 비해 덜하고, 파급력이나 확산 속도가 이전에 비해 빠릅니다. 바로 그런 만큼이나 사라질 가능성도 더 큽니다. 종이 잡지는 구독자가 해당 권호를 소장할 수 있지만 웹진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잡지만이 아니라 웹자보, 웹 홍보문서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다면 퀴어 관련 이런 소중한 자료, 웹에서 유통하겠다는 목적으로 생산된 자료를 어떻게 하면 지속시킬 수 있을까? 퀴어 역사에서 소중한 여러 웹자료를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퀴어락의 오랜 고민거리입니다.
이 와중에 TQueer.com에서 웹진을 퀴어락에 기증해주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것은 시작입니다. 단체가 해소되거나 활동 중단으로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퀴어락에 기증해주신다면 퀴어락은 열심히 관리하겠습니다. 퀴어락은 웹에서 생산된 자료를 수집하고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이고요. 관심이 있다면, 혹은 기증해주실 자료가 있다면 퀴어락에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웹진을 퀴어락에 기증해주신 TQueer.com 활동가 분들께 큰 고마움을 전합니다. TQueer.com은 이제 http://queerarchive.org/tqueer/ 로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의 역사 동영상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2002-2016년 역사를 요약한 동영상입니다. 공유하면 좋을 듯해요.
그 역사 자체가 기쁘기도 하지만, 센터를 통해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이 만들어질 수 있었거든요. 센터가 아니었다면 퀴어락이 생겼을까 싶기도 합니다. 퀴어락만이 아니라 별의별상담연구소, 비온뒤무지개재단,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등을 설립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영상엔 그 역사가 요약해서 담겨 있기도 하고요. 🙂

https://youtu.be/Od0W0cyaB3s

결혼은 왜 하는 것일까?

그냥 잡스런 상념.

무척 단편적이지만 이성애로 가정하는 결혼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을 우연히 볼 때면 종종 저 두 사람은 왜 결혼 관계를 유지할까 진심으로 궁금하다. 여성으로 드랙하는 사람은 많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남성으로 드랙하는 사람은 대꾸 한두 마디를 겨우 한다. 대화가 없는 관계. 물론 결혼 관계에 있는 여성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우리 대화 좀 해”라고 하고 남성이 가장 무서워 하는 말 중 하나가 “우리 대화 좀 해”라고 들었지만 정말 어떤 소통이나 감정적 연대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니까 결혼을 통한 가족의 구성은 감정적 연대, 정서를 공유하는 집단, 대화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란 뜻이다. 그것은 결혼이라는 긴밀한 관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결혼을 유지하는 조건이 아니다.
물론 많은 페미니스트 연구자가 지적하듯 한국에서 결혼 관계는 외도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 외도가 결혼과 이성애-가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니 결혼에서 기대하는 것은 ‘따뜻한 나의 집’이 아니다. 물론 남성으로 드랙하는 사람 다수는 결혼을 통해 가사 노동을 무임으로 해줄 사람을 찾는 거겠지만. 그렇다면 여성으로 드랙하는 사람은 왜 결혼을 하는 거지?
언젠가 한 수업에서 이와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땐 경제 문제로 얽혀 있는 관계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이미 결혼을 한 상황에서 얽혀 있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면 결혼 관계를 유지할 이유도, 결혼 자체를 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이면 이성애 규범성의 수행이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규범을 실천하며 무언가를 증명하고 생애주기를 수행하는 것이다. 즉 결혼은 이성애 규범적 시간성을 수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것을 다시 동성결혼으로 연결시켜보자. 나는 도대체 왜 결혼을 하려는지 이해를 못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동성결혼이 가능해지면 할 의사가 있음을 알고 놀랬다. 왜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 왜 결혼이 필요한지, 결혼이란 형식을 거치고 싶은지 그 욕망을 이해할 수 없고 그 필요성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도적 혜택이 문제라면 결혼이 독점하는 제도적 혜택을 재구성할 문제이지 동성결혼으로 획득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해하지 못 한다. 무엇보다 동성결혼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는 사람들의 이기적 태도를 이해하지 못 한다. 그렇게 해서 무엇이 더욱 가치 있어지는지 알 수 없다. 결혼만으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 무엇인가? 왜 그 가치를 유지시키는 방식으로 삶을 구축하고 운동의 전망을 설정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이것은 내가 어떤 식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며 내가 한 번도 욕망한 적 없는 일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비판 정치학에서, 퀴어 정치학에서 결혼이 왜 가치 있는 의제인가가.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서. 결혼을 지속시키는 힘/권력은 무엇일까? 결혼이 결코 둘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행사가 아님에도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그 동력, 힘, 이득은 LGBT가 아니라 퀴어에게 어떤 의미와 규범성으로 작동하는가? 결혼 자체가 아니라 결혼을 통해 얻는 이득은 왜 퀴어를 어떻게 위태롭게 하는가?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미 누군가가 했을 질문이다. 다양한 분석도 나와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