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회의: 거리두고 수정하기+문자

출판회의를 했다. 어제, 오후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애초 계획이었다면, 작년 12월 초에는 나왔어야 할 책이 6개월 정도 늦춰지고 있는 셈이다. 뭐,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애타지는 않은데(출판사 편집장님이 이 글을 보면, 버럭! 하시려나;;;) 외국에서 나오는 책들도, 출간 예정일에 맞춰서 나오는 경우는 잘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초에 나온 논문을 읽다 보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참고문헌이 “근간”이라고 적혀 있어서, 당연히 출판했고 구입할 수 있겠지, 하고 찾아보면 여전히 “근간”인 경우도 적지 않으니까. 최초 예정일에 책이 나온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 이렇게 책이 늦게 나오는 걸 변명하고 있지만…. 흑. 정말 얼토당토 안 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ㅠ_ㅠ

루인의 경우, 예전에도 쓴 적이 있듯, 두 편의 글이 들어간다. 초고가 나온 시기는 작년 말, 즈음이었으니까, 초고를 쓰고 5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거리 두기가 가능하다.

글을 수정한다는 건, 자신이 쓴 글을 자신의 글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글로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기 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보통 학기말 논문을 제출할 때면, 제출할 때까지 몇 번을 고쳐서 제출하지만, 제출하고 나서 행여나 다시 읽는다면, 그때부터 자학을 반복하기 마련. 제출하기 전까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점들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어느 매체에 기고하는 글도 마찬가지인데, 그 글이 실린 매체가 출간되어 인쇄 상태로 다시 읽으면 그때부터, 부끄러움에 안절부절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단계. 이번 글을 수정하며 이 단계를 기다려야 했다.

물론 그 사이 여러 번 고치긴 했지만, 전체적인 인식이나 글의 구조적인 측면은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3월 말이었나, 4월 초였나, 저자들과 편집장이 모여 회의를 했는데, 그때 루인의 글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지적들이 아팠는데(루인이 외면하고 싶었던 문제점들이었기에), 그럼에도 곧 바로 퇴고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지적들, 그리고 접근 방식을 좀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도, 글 자체는 수정하지 않았다. 기다렸다. “이 글은 루인이 쓴 글이 아니다”라는 자기 암시가 필요했다. “이 글은 루인이 쓴 글이다”라고 여기면서 글을 읽으면, 문제점들을 옹호하고 맥락을 스스로 변호할 것만 같아서, 루인의 글이 아닌 것처럼 거리두기를 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어제 오전, 한 편은 어느 정도 수정을 했고, 다른 한 편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같이 책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느끼고 지적해 주는 바로 그 지점이기도 했다. 아, 그렇구나. 그러니 루인만 빼고 다들 알고 있었던 셈이다. 묵묵히 기다려 주고, 지적해 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이제 이런 지적에 따라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가 문제로구나.

이런 와중에, 9시가 넘은 시간, 문자가 한 통 왔고, 확인하며, 기뻤다. 소통하는 방법, 만나는 방법이 다양해지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약속한 만남, 우연한 만남, 그리고 “갑자기, 불쑥” 오는 만남, 어느 쪽도 모두 설레고 즐겁고 반가우니까. 🙂

이제, 출판사 편집장님의 블로그에 가서 얼른 글 쓰라고, 독촉해야지. 케케케.

트린 T 민하 기획전

ㅌㄹ블로그에 놀러 갔다가 엄청난 소식을 접했다. “트린 T 민하 기획전”!!!

미디어극장 아이공 개관 첫 기획전
베트남, 탈식민주의 여성영상 트린 T 민하 기획전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에서 미디어극장 아이공의 개관 첫 기획전으로 아시아계 여성작가 트린T민하 기획전을 개최합니다.
베트남 출신의 여성 감독이자 학자인 트린T민하는 탈식민주의 관점으로 다양한 영화,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주의 작가입니다. 트린T민하의 작품은 베트남 문화, 정치, 여성의 정체성의 문제등을 독특한 형식으로 표현하고,‘차이’와 ‘관점’을 관통하는 그녀의 정치적 입장을 보여줍니다.
미디어극장 아이공은 트린T민하의 작품을 통해 오늘날 사회적 타자, 억압, 착취의 재생산에 놓여있는 제3세계 여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고민하고, 타자로서 관통되는 문제의 지점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성,소수,비주류의 대안영상을 지향하는 미디어극장 아이공은 이 기획전을 시작으로 주체로서의 여성성에 대한 소통의 장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또한, 이번 기획전은 각종 영화제에서 상영된 트린T민하의 대표작을 비롯해 국내에서 상영된 바가 없었던 트린T민하의 신작도 상영되어 국내 관객들에게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행사 개요>
․ 행 사 명 트린 T 민하 기획전
․ 주 최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 기 간 2007. 5.17(Thu) ~ 5. 30(Wed)
․ 장 소 미디어극장 아이공
․ 티 켓 일반 5,000원, 장애인/학생/단체(20인 이상) 3,000원
․ 문 의 TEL. (02)337-2870, igong@igong.org
․ 예 매 예매는 현장에서만 구매 가능
․ 홈페이지 http://www.igong.org

<상영작품 리스트> (8편 / 7섹션)
신작<사막은 보고 있다 The desert is watching> (11mins, 2003)
<사막의 몸 Bodies of the desert> (20mins, 2005)
<재집합 Reassemblage> (40mins, 1982)
<벌거벗은 공간: 지속되는 삶 Naked Spaces: Living Is Round> (135mins, 1985)
<그녀 이름은 베트남 Surname Viet, Given Name Nam> (108mins, 16mm, 1989)
<4차원 The Fourth Dimension> (87min, digital, 2001)
<사랑의 동화 A Tale of Love> (108min, fiction, 1995)
<밤의 여로 Night Passage> (98min fiction, digital, 2004)

출처와 작품 시놉시스는 여기로
트린 T 민하와 관련해서는 [여/성이론] 9호를 참고하세요!

수업:서울지역과 비서울지역에서 여성학, 고3경험

이번 학기를 시작하며, 처음엔 총 세 과목을 신청했다. 그러니 현재 두 과목을 듣고 있다는 의미. 결국 이렇게 되었는데, 지도교수와 많은 얘기, 상담을 하며 여러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다음 학기에 더 흥미로운 과목과 놀기로 하고 두 과목을 듣고 있다.

그렇게 듣고 있는 과목들 중 한 과목은 목요일 2시에 한다. 오늘. 그리고 오늘 수업은 지난 주 휴강에 따른 보강 수업으로 선생님과 함께 저녁 먹는 시간까지 해서 2시에 시작해서 8시 40분 즈음에야 끝났다. 물론 저녁을 먹는 시간에도 수업과 관련한 얘기를 나눴지만, 그만큼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다.

이 수업을 들으며, 루인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어서 즐거워하고 있다. 선생님의 쾌락적인 언어들도 좋지만, 또한 그런 과정에서 지금까지 간과하고 있던 경험들을 해석할 수 있는 틈들이 발생한다는 것, 수업을 듣는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알았던 지식을 확인하거나, 자신의 위치를 편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앎들 사이에 있던 간극을 메우거나 간극과 균열을 발견하는 쾌락을 경험하는 것.

오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울지역에서 여성학을 한다는 것과 비서울지역에서 여성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문제는 이 “깨달음”이 명절 때마다 느꼈던 점이었음에도 한 번도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

서울에 소재한 대학에서 여성학을 공부한다는 건, 그다지 주류의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닌, 먹고 살기 어려운 일을 하는, 이란 식의 어떤 이미지가 있다. (한 편으론 사실이고 한 편으론 이미지고.) 그래서 대학원생이라는 어떤 계급성에도 불구하고 여성학을 한다고 하면 경영학을 공부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진 않는다. 물론 이런 반응은 루인이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성학과 사람들이거나 여성학/페미니즘을 매개해서 만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일 년에 두 번, 명절에 부산에 갈 때마다, 시공무원인 한 친척어른은 루인에게, 석사 졸업하면 지자체 계약직으로 일하면 되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지자체 계약직의 경우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 말이 가지는 여러 맥락들을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는데, 그저 공무원인 친척어른이 루인에게 하는 관례적인 의미로 받아 들였을 뿐이었다. 선생님께서 서울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것과 부산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다른지를 얘기하는 걸 듣다가, 불쑥 깨달았다. 예전에 부산 지역에 있는 한 여성학과 학생이 했던 말, 부산의 그 대학엔 공무원들도 많다고, 자자체와 상당히 많이 연결 되어 있다고. 그 학생의 말과 루인의 친척어른이 한 말의 연결 지점을 비로소 깨달은 셈이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님은 당연!

서울이라는 지역이 가지는 맥락 속에서 살고 있음에도 언제나 이런 식으로 맥락을 놓치곤 한다.

그러며 요즘 고민이 떠올랐다. 이른바 고3의 입시경쟁이라는 것의 의미가 가지는 학벌 차이.

흔히 입시 제도를 얘기하면 힘든 고3들, 입시정책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단체들, 뭐 이런 이야기들이 중심을 이룬다. 그러면 루인은 또, 아 그렇지, 대학에 입학하는 고등학생 시절은 정말 힘들지,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그 말에 공감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도 쓴 적이 있는데, 루인의 경우, 모의고사를 치면 뒤에서 1, 2등을 하는 그런 고등학교에 다녔고, 그 학교는 공립이었기에 학교 선생들도 그다지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 번 왔다가 몇 년 지나면 떠날 그런 학교였다. 입시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신경 쓰는 학생도 드물었다. 어쨌거나 인문계였지만, 소위 인문계라고 얘기할 때 말하는 그런 고등학교가 가지는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언론(을 매개하는 여럿)에서 만들어내는 고3의 이미지, 과외 열풍, 학부모단체의 목소리들은 서울이라는, 그것도 모의고사 성적이 상위 1, 2등을 다툴 그런 학교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닐 런지. 서울지역과 비서울지역이 경험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립과 공립이 다르고 모의고사 성적으로 평가하는 학교의 학력에 따라 다른데, 왜 그리도 고3의 이미지는 천편일률적인지. (일테면 ps의 경우 부산지역에서 모의고사 성적으로 1, 2등을 다투는 그런 고등학교에 다녔고, 그래서 이른바 고등학생 혹은 입시지옥이라는 어떤 생활을 했었다.)

한 번은 이와 관련해서 글을 쓰고 싶다. 당장은 아니고,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