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유난히 면역력이 떨어져. 그래서인가봐. 묻어둔 기억들이, 침전물처럼 가라앉아 있던 기억들이, 작은 진동에도 다 일어나는 건.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끊임없이 흔적 찾기 놀이를 하지만 찾으면 사라지고 다시 찾고 사라지는 날들의 반복. 이런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
그저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시제가 불일치하는 바람을 품고 있어.
여름만 되면 유난히 면역력이 떨어져. 그래서인가봐. 묻어둔 기억들이, 침전물처럼 가라앉아 있던 기억들이, 작은 진동에도 다 일어나는 건.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끊임없이 흔적 찾기 놀이를 하지만 찾으면 사라지고 다시 찾고 사라지는 날들의 반복. 이런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
그저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시제가 불일치하는 바람을 품고 있어.
소나무 위에 손톱달이 떴다.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작은 연못 옆에서 어떤 색깔의 물병 혹은 약병을 들고 있는 마녀가 떠오른다. 저 소나무 아래에 마녀가, 키득거리며 웃고 있을 것만 같아, 슬쩍 놀러가면 신나게 놀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때 읽은 소설들에 따르면, 마녀나 드라큐라는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악동에 너무도 친밀한 이미지들이다. 괜히 장난치면, 킥킥, 웃으면서 신나게 놀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손톱달이 뜬 날이면 연못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도 꺄르르 웃으면서 어딘가로 달려갈 것만 같은 마녀를 만날 것만 같다.
… 따라갈 걸 그랬나?
조금 전, 다시 [밀양]을 읽고 왔다. 며칠 전에 읽은 영화인데, 전혀 다른 내용처럼 낯선 장면들 혹은 느낌들도 있었다. 아주 당연한 현상이지만.
기말 논문으로 사용할 텍스트를 결정했다. [트랜스아메리카]와 [미녀는 괴로워] 두 편. 영화를 읽는 도중에 한 가지 질문이 불쑥 튀어 올랐다. “[밀양]을 서사로 분석할 때, 페미니즘이나 젠더논의에 ‘기여’하는 측면은?” 이 질문에 막막함을 느꼈다. 만약 [밀양]을 분석한다면 이건 순전히 루인을 설명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할 뿐이다. 더군다나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이론적인 틀에서 더 적절한 텍스트는 [밀양]이 아니라 [트랜스아메리카]와 [미녀는 괴로워]이고. 다행인 건, 둘 다 좋아하고 한 번 분석하고 싶은 텍스트라는 점. 다만 이 두 텍스트를 피하고 싶은 바람이 컸는데…. 루인이 트랜스(젠더) 이론을 전공으로 하고 있다는 걸 선생님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기말논문을 이 주제로 쓸 때, “그럴 줄 알았어”라는 반응 혹은 “당연히” 이 주제로 글을 쓰겠지라는 예측을 배신하고 싶은 바람. 언제나 이런 바람과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가, 루인의 관건이다.
[밀양]을 읽으며, 이신애가 나오는 장면마다 모두 소유하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절실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금 이 영화를 “분석”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이신애에게 너무 붙어서 거리두기를 할 수가 없었다. 건조한 거리두기가 필요한데, 지금으로선 넋두리로 끝날 것 같다. 넋두리가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단 게 아니라, 제출해야하는 글의 형식 때문에. 아무튼 다시 읽은 [밀양]은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