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열망

대학 신학기 젊은 스님이 학교에 오셔서 강연을 하신다고 해서 들으러 갔다. 스님은 산사의 조용한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말씀하셨고 가난해야 눈을 뜰 수 있는 청빈한 삶을 강조하셨다. 특히 연기론적 세상의 이치를 말씀하시면서 환경을 이야기했고 사랑의 소중함을 말씀하셨다. 마음을 비우고 매일매일 도를 닦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으로 다가 왔다. 스님께서도 하루하루 도를 닦는 일에 게을리하면 자신의 육체와 정신 또한 걸레처럼 더렵혀 질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정신이 맑아졌다. 강연이 끝나고 스님은 질문을 받았다. 연기론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신입생의 질문이 있었다. 자신의 전공에 대한 불안감을 이야기하고 적성에 맞지 않을까봐 걱정된다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자 질문을 경청하시던 스님은 질문이 끝나자마자 청중들에게 후려쳤다. “내가 적성에 맞아 중하는 줄 알아!? 내가 적성에 맞아 목탁 두드리는 줄 알아!? 열심히 두드리다 보면 적성이 되고 목탁에 속도가 붙고 재미가 붙는거야! 일단 두들겨!! 두들겨 보지도 않고. 이눔들아!!” 이 강연 이후로 난 내 적성에 대해 반문해 본적이 없다. 아마 질문한 그 신입생도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한다.

-이기진

한 잡지에 실린 이 글을 읽고, 감동이.. 흑흑. 스님, 멋져요ㅠ_ㅠ

이와 관련해서 무시무시하게 울렸던 말 중엔
“If you really want, you can get it.”을 “함량미달의 욕망가지고 멀 할라그려?”로 해석한 것도.

“한국의 위상”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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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알람은 핸드폰이 아니라 사실 지지(mp3p)의 라디오 알람이다. 핸드폰으로 울려 봐야 그때뿐이지만 라디오를 켜면 계속해서 소리를 듣기 때문에 아무리 피곤해도 결국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며 전날 있은 소식부터 해서 인터넷 뉴스로는 접할 수 없거나(검색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기에) 제목만 건성으로 읽고 지나갈 소식을 듣곤 한다.

그렇게 아침을 깨우는 라디오는 다름 아니라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다. (6시 15분이 기상시간이란 얘기.) 인터넷으로도 뉴스를 잘 안 읽는 습관이 있어, 라디오를 통해서라도 뉴스를 접하자는, 얄팍함의 결과랄까. “시선집중”을 듣노라면 사이에 또 다른 라디오 뉴스도 들을 수 있어서 나쁘지 않은 편이다.

어제부터 라디오에서 주요 기사로 다루고 있는 소식은 미국의 총기사건. 하지만 라디오를 통해서도, 인터넷 뉴스의 제목을 통해서도, 소식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나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다. 사람들이 죽음에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미국에서 발생한 죽음을 “소비”(이 단어는 이 순간 적확하다고 느낀다)하는 방식 때문이다.

위에 링크한 기사제목들이 이 모든 반응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데, 기사에서, 인터뷰에서, 라디오뉴스에서, 걱정하는 건 오직 하나다. “한국의 위상”

인터뷰의 경우 주로 물어보는 건, 한국교민들 혹은 한국유학생들의 안전이다. 물론 이건 인종차별주의에 따라 발생할 지도 모를(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가능성에 대한 염려이다. 하지만 이런 안전에 대한 걱정은 차후 한국인의 위상 혹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어떤 “위상”에 “흠”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서 비롯하고 있다. 리플 중 압권은 “이 일로 비자발급이 안 되면 어떡하나”였다. 화가 나는 건 죽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상의” 애도 한 마디 없다는 점이다. 아니, 있다고 해도 정말 예의상, 방송용으로 하는 말뿐이었다. 관심은 그 사건에서 죽은 한국인 한 명 혹은 두 명이 누구인가와 조승희씨가 한국인인지 아닌지의 여부이다. 그래서 조승희씨가 사실상 한국인이 아니라고 했을 때의 안도하는 반응들. 조승희씨가 한국인이 아니니까 교민들과 유학생들에게 별 피해가 없을 거고, 그럼 됐다는 반응들. 죽은 사람 중에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다면, 조승희씨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이 이렇게까지 한국 언론을 장식했을까? 어떤 나라에서의 죽음은 얘기해도 어떤 나라에서의 죽음은 “hrnet”을 통해서만 얘기될 뿐이고, 누군가의 죽음은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죽음은 회자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애도는 없고 소비만 있다. 정말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일까.

새삼스럽지 않음에도, 이럴 때마다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