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정리]2007.04.11.까지

원래는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카페에 별도로 정리하기로 했으나, 게시판을 아직까지 만들지 않은 관계로 여기에 우선 정리를 하려고. 반드시 이런 이유에서만은 아니고, 스스로에게도 이렇게 정리를 할 필요가 있어서. 글, 인터뷰 등을 포함함. 링크할 수 있는 글은 제목에 링크함.
※추가: 그러니까 이건 어떤 의미에서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운동의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의도이기도 한데, 루인의 과대망상이 아니라 예전에 회의 때 이런 의도로 세세한 활동까지 다 기록하고 남기기로 했음.

#2006#
(학교 교지 여름호에 투고한 글은 제외하고.. 성격이 많이 달라서)
2006.06. “트랜스/젠더 선언문 1/2” 씀 (존재할 뿐 구할 수는 없는 글. 케케)

2007.06. WIG:Wander In Gender에 참가 및 발족(?).

2006.07.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에 참가

2006.08.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발족준비위에 참가

2006.09.04.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성전환자인권실태조사 기획단의 일원으로, 공동작업. 공동연대홈페이지에 파일이 있다고 기억하는데 없네요;;;)

2006.09.12. “나를 증명할 길은 수술 뿐인가“(네이버 링크) 한겨레21 626호 (갑자기 청탁 받아 날림으로 쓴 글 ;;; 또 다른 버전은 여기로)

2006.11.04.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발족: 운영위원 및 학술정책팀장

2006.11.11. 법과 사회 대학원 세션에서 발표 (발표문은 “젠더를 둘러싼 경합들”)

2006.11.15.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대대학원신문 54호. (루인의 실력 보다는 다소 인맥으로 청탁 받았다고 말하지만, 이런 식의 설명은 청탁한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는 발언이라 조심스러움. 제목의 거창함에 비해 만족스러운 글은 아님.)

2006.12. “젠더를 둘러싼 경합들(Gender Dysphoria):트랜스/젠더 정치학을 모색하며” [여/성이론] 2006.가을 통권 15호

#2007#
2007.01.18-20 제5회 인권활동가대회 참가: 활가대회 준비모임이기도 했음.

2007.01.30. “경계를 넘어”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라디오의 “경계가 만난 사람들”이란 코너에 현과 함께 출연. (주소를 링크할 수도 있으나 녹음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 만큼 끔찍한 일도 없는 관계로 생략. 굳이 궁금하면 알아서 찾아 보세요. 인터넷 시대에 못 찾을 게 뭐 있겠어요 -_-;; 아, 그리고 활가대회 참가하면서 만난 인연으로 출연한 것이기도 해요.)

2007.02.06. “성별이분법의 공간에서 뒤척이다” 인권오름 제40호 2007년 02월 06일 (역시 활가대회에 참가한 인연으로 기고한 글. 두 번째 사진은 별로 안 좋아함.)

2007.03.05. “나를 증명할 길은 수술 뿐인가” [대학인을 위한 독서세미나] 경남대학교 교양학부 독서세미나교재편찬위원회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와선, 한겨레21에 쓴 글을 사용하고 싶다고 함. 많이 망설이다 결국 그러라고 함. 고료 대신 책을 세 권 받음. 고료를 받으려면 실명을 공개해야 하는데 그건 싫었거든.) (혹시나 하면서, 재미로 확인했다가, 허걱! 시중에서 이 책을 판다;;; 시중에서는 팔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2007.03.12. “성전환자 성별변경을 둘러싼 법적 논의들” 이대대학원신문 55호 (이 글은 아직 온라인으로 공개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을 듯. 청탁해준 이에게 너무도 미안할 따름. 다행인지 홈페이지에도 아직 안 올라 와 있음. 후후.)

2007.03.22. “스팸의 정치경제학웹진 다산인권에 쓴 다세칼럼 (역시나 활가대회 참가의 영향을 무시 못함.)

2007.04.03. 연세대학교 “성과 인관관계” 수업 특강

#진행 중인 일
-WIG에서 작업 중인 책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에 글 두 편.
-활동으로 적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몸-섹슈얼리티 세미나를 지난 1월 말부터 하고 있음.
-5월에 있을 인권영화제에 자막 감수 및 영화 리뷰, 영화 후의 토론회 정도를 하기로 언약. 확정한 건 아님.
-4월 말이나 5월 어느 날, 또 다른 수업에 특강이라는 명목으로 갈지도 모름.

#
불러만 주시면 어디든 가고, 원고 청탁만 하시면 다 씁니다.
… 푸핫. 케케.

말하기 방식

장면 하나.
지난 월요일 섹션포럼 때였다. 보통은 행사장에서 사진을 찍을 때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편인데(적어도 루인이 참가했던 곳에선 대체로 그랬다는 거.. 하지만 그곳의 맥락은.. 흠… ;;), 그날은 그런 말도 없이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서 신경이 상당히 날카로워진 상황이었다. 사진담당자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책자로 얼굴을 가리기 바빴고, 포럼장에서 만난 지인과 사진이나 카메라 촬영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물론 첫 발표가 있은 후, 사회자가 내부자료로만 사용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게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황에서, 토론 시간, 질문자로 손을 들고 일어 섰을 때, 비디오 카메라를 루인에게 향하자, “카메라 찍지 마세요”라고 아주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촬영을 안 했으면 하거든요”란 식으로 좀 더 무난한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순간 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내부자료로 사용한다고 했을 때, 사실 이 말 자체를 별로 신뢰할 수 없었다. 요즘 시대에 내부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자료가 있기는 해?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아웃팅의 문제때문도 아니었다. 사진이나 비디오 속에 루인이 잠깐 등장했다고 해서 “저 사람은 루인이고 트랜스다”란 식으로 알아 볼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다. 더구나 아웃팅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기 때문에, 아웃팅 자체가 범죄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 다른 자리에서도 사진 찍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데(그래서 현재 가지고 있는 사진은 증명사진 뿐이다) 이건 사진이나 비디오 화면 속에 나오는 루인의 모습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카메라 속의 모습을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고 못 견딜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루인이 질문하려고 일어났을 때 카메라로 찍으려고 한 분에겐 죄송했다.

장면 둘.
어제 또 다른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지난 강의실 강의 이후 받은 두 번째 메일인 셈이다. 근데 이 메일이 좀 재밌다. 자신이 학부 졸업 논문을 쓰는데 그것과 관련한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혼자서도 쓸 수 있겠지만 그래도 당사자의 얘기를 직접 들어 보고 싶다, 수고스럽겠지만 서로의 오해를 벗어나기 위한 작은 시도로 봐달라, 협조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전 댁과 풀어야 할 오해가 없거든요”라고 보냈을지도 모른다. 물론 정말 이런 식으로 보내진 않겠지만, 루인이라면 아주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다. 케케. -_-;;; 대신 이 메일을 읽으면서, 이 사람의 맥락을 짐작하려고 했다. 만약 위에서 인용한 두 문장을 쓰지 않았다면 그저 무난하게 답메일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걸리지 않는 구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리고 때론 메일을 못 받은 것처럼 답장을 안 보낼 수도 있지만, 오늘이나 내일 즈음 답장을 보내야지 하고 있다.

예전에 친구가, 자신의 조교생활을 얘기해줬던 적이 있는데, 그때 꽤나 재밌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신부님의 조교를 하는데, 신부님들은 서로에게 메일이나 연락을 할 때, 혹은 토론 시간에 얘기를 할 때, 일테면 “존경하는 신부님의 말을 소중하게 잘 들었습니다…”란 식으로 공손하고 겸손한 수식어를 사용해서 두어 문장을 얘기한 후에야 반론을 시작한다고 했다. 어제 메일을 받고 이 얘기가 떠올랐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법대라고 했다. 웃기다고 느꼈던 말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인데, 적어도 루인의 관계 범위에서 공문이 아니면 이런 식의 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교 업무를 수행하며 공문을 보낼 때나, “협조 바랍니다”란 식으로 쓸 뿐, 다른 소통관계에선 사용하지 않는 언어들. 그렇다면 이런 식의 말투는 법대라는 어떤 배경과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모든 법대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공간에 있다보면 어떤 식의 말하기 방식에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고, 어떤 배경에서 오래 지내다보면 체화되어 마치 자신의 습성처럼 여겨지는 행동들이 있기 마련이다. 학부에서 수학을 공부한 루인은, 어떤 책에서 수학공식이 나왔을 때 별로 당황하지 않는데, 이는 루인이 수학을 잘하고의 여부가 아니라 어쨌거나 수학과 어느 정도 익숙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반응일 뿐이듯. 마찬가지로 메일을 보낸 사람도 그런 어떤 분위기에 익숙해서 이렇게 메일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다.

물론, 루인은 메일을 보낸 사람의 요구 사항/질문사항들을 모두 배신할 예정이다. 또한 이것이 루인의 말하기 방식이기도 하니까. 케케. ;;;

반지 혹은 봉인

지난 월요일, 저녁 7시. 서울여성영화제[Wffis]의 부대행사인, 섹션포럼 “퀴어 레인보우: 성 정치학, 그 사이에서“에 참석했다. 이 포럼에 가려고 다른 영화 일정을 모두 조정했을 정도. 기대했던 건, 발제문에 대한 궁금함이 아니라(발제문은 이미 예전에 받았으니까) 토론자들의 논평과 플로어 토론이었다. 뭐, 결과적으론, 의도하지 않게 내부자 토론이 되고 말았지만;;; (루인의 만행이었음 -_-;; )

아무튼 포럼이 끝나고 나오는 자리에서, 예전에 한겨레21에 쓴 글을 읽었다며 말을 걸어온 분이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초면이고 어떤 의미에선 초면이 아닌데, 다른 사람을 통해 그 분의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 비록 매개해서 알게 된 분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초면도 아니면서 구면도 아닌 분과의 만남. 소개를 하고 잠깐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반지를 선물 받았다. 그날 루인이 그 자리에 참석할지의 여부를 몰랐을 테니, 그저 순간적인 판단이었을 듯.

반지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지난 2월 달이었나. 다른 때보다 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때, 반지를 하나 사야겠다고 했었다. 그러며 몇 곳을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것이 없어서 관뒀던 흔적이 몸에 있다. 반지를 사야겠다고 한 건, 일종의 봉인이자 자기 다짐의 표시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엔 그런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믿을 수 없는 인터넷 운세에 흔들릴 정도로 취약했던 그 시기에, 반지를 맞춰서 몸의 어떤 상태를 봉인해버리고 싶었다. 결국 마땅한 반지를 못 구했고 부산에 내려가고 하다보니 어물쩡 지나갔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반지를 선물 받았고, 그래서 망설임 없이 손가락에 끼웠다.

사실은 그땐 몰랐는데, 왜냐면 반지 사이즈가 딱 네 번째 손가락에 맞았기에 그랬는데,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의 반지는 약속의 의미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너무도 적절한 것이기도 하다. 우울증적 대상을 향한 약속일 수도 있고 우울증적인 자신을 봉인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결국 자기 약속이면서 동시에 자기 봉인인 셈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금에 와서 무엇을 약속하려는 것이며, 무엇을 봉인하려는 것인지 의아하다. 약속이나 봉인이나 결국 같은 말이고, 굳이 봉인을 하지 않아도 몸은 어떤 의미에서 봉인된/한 상태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