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제8회 퀴어문화축제

지난 금요일 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사무실에 갔다가 제 8회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포스터와 무지개영화제로도 알려진 SeLFF 포스터를 몇 장 받았다. 다음 날인 토요일 오전에 연구실에 와선 연구실 문에다 두 종류의 포스터와 엽서를 붙이곤 아주 좋아하고 있다. 문화제 포스터엔 “THIS IS QUEER”라고 적혀 있고, 영화제 포스터엔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SEXUAL”이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 사무실 문 앞에 설 때마다 뭔가 즐거운 기분이랄까. 후후.

물론 이 사무실은 여성학과 사무실이고, 사무실에서 공부를 하거나 조교업무를 보는 이들이 모두 이러한 주제를 고민하는 건 아니다. 제한적인 의미에선 루인만 고민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 의견을 묻지 않고 루인 멋대로 포스터들을 붙인 건,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비공식행정조교라는 권력을 남용했달까. 루인이 연구실에 가장 오래 머문다는 측면도 있고.

하지만 포스터 자체도 너무 예쁘니까. 괜찮을 거야. … 괜찮겠지? ;;;

두 장의 포스터는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이건 SeLFF의 포스터는 아니지만 이미지는 같아서..
홈페이지에서 포스터 이미지를 못 찾았기도 했고;;

행사의 자세한 일정은 여기로

이건 일정표.
클릭하면 더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음.

다짐

그 나뭇잎은 흔히 얘기하는 나뭇잎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벚나무에서 핀 둥그런 모습이 아니라, 마치 찢어진 것만 같은 모습. 하지만 그 모습이 누군가의 손에 찢겨 나갔다기보다는 처음부터 그렇게 자란 것 같다. 그 나뭇잎에게, 코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까지 다가가서 인사를 한다. 안, 녕. 그 나뭇잎이 좋다.

아프지 않기.
다치지 않게 항상 조심하기.
그리고… 지레짐작하지 않기.

나뭇잎에게 인사하며 다짐한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글쓰기: 위가 아프고 속상하고.

잘 쓴 글을 읽으면 위가 아파. 시기심이 아니라 루인도 그렇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생겨서. 그 사람은 별로 힘도 안 들이고 한 번에, 휙, 잘도 쓰는 것 같아. 괜히, 타고난 재능은 따로 있나, 구시렁거리기도 해. 그래서 괜히, 또, 글을 써. 고치길 반복하지.

글을 잘 쓰고 싶어. 글만이, 언어만이 루인이 가진 거의 유일한 힘이니까.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어. 그냥 한 번에 휘갈겨 써도 위가 아플 수 있는 글. 하지만 잘 안 돼. 초고를 쓰고 나면 언제나 엉성해. 그래서 문장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하지. 문단 배치도 바꾸고, 그러다 지우고 다시 쓰기도 해. 몇 번을 고쳐도 불만족. 좀 잘 쓰고 싶은데 고칠수록 불만만 쌓이면, 속상해. 왜 이렇게 글을 못 쓸까.

이번 주 내내 글과 관련해서 깨지고 있어. 개별연구 시간엔 예전부터 계속해서 지적받은 사항을 여전히 지적 받고 있어. 출판회의 땐 글의 목적이 모호하기에 과감하게 버릴 부분은 버리고 성격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단 말을 들었어. 또 다른 글은, 어정쩡하기만 해. 이렇게 깨지고 있으니 속상하냐면, 그렇진 않아. 사실 기쁘기도 해. 글을 써서 이렇게 신나게 깨진 것도 참 오랜 만인 걸. 그리고 비록 논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듣는 논평이라고 해도, 신나는 논평은 논평할 만한 글이긴 하단 걸,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건 그 만큼 애정을 갖고 있단 걸 의미하니까.

대책 없이 이런 낙천적인 해석을 해도,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해. 아니, 속상해. 이 정도 밖에 못 하나 싶어서 그냥 관둘까 싶기도 해. 하지만, 속상함이 변태할 수 있는 힘이란 걸 믿어. 믿는 수밖에 없잖아. 믿을 건 불안과 걱정뿐이고, 불안과 걱정만이 변태할 수 있는 힘이니까.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서투른 자신의 글을 읽을 때면 속상해. 더 잘 쓰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