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2007.04.06. 14:50, 아트레온 6관9층 H-5
이 영화를 읽겠다고 결정한 건, 이 영화를 둘러싼 상당한 논쟁이 있다는 걸 알아서였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읽으러 가기 전에 몸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다. 그 어떤 폭력적인 상황이 나와도 놀라지 않겠다는 다짐.
그나마 이런 사전 준비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얘기를 하려고 하면 너무 많고 무시하려면 아예 무시할 수도 있는데, 간단하게 메모만 남기면(서울여성영화제 기간이라 감상문을 쓸 시간도 없다는 ;;;)
1. 이 영화, 기본적으로 지루하다. 이제 끝나가려나 하고 핸드폰시계를 봤는데(영화관에서 이런 적 처음이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인데 한 시간이 지난 상태. 으악!
2. 지금 이 시대에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랬다. 이런 놀람이 바로 이 영화의 논쟁점이기도 할텐데, 소위 정치적인 올라름 운운하며 비판하는 각종 혐오가 이 영화엔 가득하다.
3. 거의 모든 전쟁영화는 “게이”영화인데,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두 쌍의 커플도 나온다. 소위 “게이코드”라고 불리는 말도 안 되는 어떤 코드도 동원한다면, 크세르크세스와 300명의 스파르타 군인들 모두, 딱 게이다, 싶었다.(이런 식의 판단은 지금 루인도 쓰고 있지만 사실, 재수없다.) 이 영화의 분열지점이기도 한데, 동성애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내지만 그런 발화를 통해 자신들의 게이 욕망을 유지하고 있다.
4. 영화가 끝날 즈음, 코미디 영화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정도가 지나치면 웃음 밖에 안 나온다. 그런데 단지 이런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과대망상들은 어떻게 할 거야? 이 영화의 코미디의 정점은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스파르타의 왕이 죽은 장면을 비추는 화면. 그 장면을 읽는 순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자세와 표정이 떠올랐다. 그 순간 이 영화는 장르상 코미디로 변했다. 스파르타의 왕은 단지 스파르타의 왕이 아니라 서구 기독교 정신이라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서구가 아닌 지역에서 온 모든 것은 야만이고, 이런 야만에서 서구이성을 지켜야 한다는 엄청난 강박들. 아, 이 과대망상 어쩔거야.
5. 만약 이 영화와 관련한 어떤 소식들 없이 이 영화를 읽었다면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은 완전히 달랐을 지도 모른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죽인다”는 식의 내용이 있다는 정도는 알았기에 망정이지(대충 이런 내용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영화를 시작하며 곧 바로 나올 줄은 몰라, 타격을 받긴 했다), 아니었다면, 정말이지… 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