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죠아요” : 뮤즈 2007 내한 공연

뮤즈(Muse) 내한공연 live in Seoul 2007
일시: 2007.03.07. 20:00
장소: 잠실실내체육관
좌석: 스탠딩 나구역 입장번호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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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다 못 읽은 버틀러(Judith Butler)의 “Performative Acts and Gender Constitution: An Essay in Phenomenology and Feminist Theory”(Women, Knowledge, and Reality, Ann Garry and Marilyn Pearsall eds. Boston: Unwin Hyman, 1989)를 아침부터 읽었다. 조교업무가 가끔씩 있었지만 다섯 시까지는 다 읽을 수 있었다.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 읽고 싶어서 다 읽어야 했다. 읽으면서 너무너무 좋았다. 재간둥이 버틀러_ 하지만 귀에서 흐르는 음악 때문에 종종 비명을 질렀다. 뮤즈. 너무도 달콤한 매혹의 음악들 때문에 온 몸에 간지러움이 퍼지는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이랬는데, 더 심해지고 있었다. 종종 너무 좋아서, 너무 두근거려서 온 몸을 방방 구르기도 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4시 40분 즈음이 되었을 때, 길지 않은 버틀러의 글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이젠 슬슬 출발 준비를 했다. 가방은 미리 챙겨온 작은 것으로 바꾸고, 필요한 몇 가지만 챙겼다. 가능한 부담 없이 가서 신나게 놀고 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방이 크면 방방 뛰기 힘드니까.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공연하는 날을 축하한다는 듯이. 하얀 눈이 내리고 설렘에 두근거림에 종종 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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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리자 꽤나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얗게 덮여가는 중… 이전의 기억은 다 잊고 오늘만 기억하라는 의미일까. 하얀 눈을 맞으며 잠실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향하는 길에 뮤즈의 옷과 가방과 뺏지를 두 세트 샀다. 옷은 공연장에 가기 전부터 사려고 작정 했었고, 가방은 너무 예뻐서이기도 하지만, 뮤즈기에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가방이 안 예뻤어도 샀을 테다. 뮤즈니까. 뺏지는 두 세트를 샀다. 한 세트는 보관용, 한 세트는 사용하는 것으로. 가방도 옷도 돈만 많았다면 보관용으로 하나씩 더 샀을 지도 모른다.

스탠딩 입장을 위한 대기실로 갔다. 농구연습장 같은 곳. 번호대로 줄을 섰다. 도착한 시간은 6시 20분 즈음. 인터넷 공지로 입장 시간은 7시.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입장 시간이 연기되었다는 공지를 했다. 공연도 늦어질 거라고 했고. 하지만 상관없었다. 실제 입장 시간은 8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하지만 조금의 불평도 없었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모두 공연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도 공연의 일부이기에 더 좋았다. 충분한 기다림과 몸의 준비 시간.

인터넷 공지를 통해선 스탠딩 석을 구분하는 바리케이트를 없앤다고 했다가 다시 설치한다고 하더니, 결국 다시 없앤다고 했다. 실제 가보니 스탠딩 석을 구분하는 장벽이 없었다. 뮤즈 측에서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사랑해요 공연준비 측에선 사실 상당히 신경 쓰일 일이지만 스탠딩 석에 있는 입장에선 너무 좋은 일이었다. 물론 각자 살아남기 위해 일정 정도의 질서를 유지했고, 종종 앞에 있던 사람이 뒤로 빠지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선 애매한 중간보다 뒤에서 더 잘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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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시 30분에 시작한다는 공연은 다시 15분 정도를 더 기다려 시작했다. 아아.. 불이 꺼지고 “Take A Bow”로 공연을 시작했을 때, 그 열광적인 소리들. 뮤즈가 등장하기 전에도 종종 열광적인 소리를 질렀었다. 스탭의 등장을 뮤즈의 등장으로 착각하며.

사실, 스탠딩 입장번호가 한참 후반부이다 보니 무대가 잘 안 보였고, 그래서 무대보다 대형스크린을 통해 공연을 봐야하는 상황이다 보니 공연장에 있다는 실감이 안 나기도 했고, 신경 쓰이기도 했다. 무대를 보고 싶다는 바람이 관람을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연을 진행할수록 무대를 바라보는 요령이 생기며 더 잘 보이기 시작했고, 더 이상 이런 것에 신경 쓰는 몸도 아니었다. 음악 소리에 미친 듯이 반응하는 몸이었다.

“New Born”의 피아노 전주가 시작했을 땐, 정말이지 소리를 지르겠다고 해서가 아니라 몸이 자동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긴. 앨범으로 들을 때에도 장소 불문하고 “New Born”의 피아노 전주엔 소리를 지르니까. 공연을 진행할수록 다리가 아파오고 팔이 아프고 목이 쉬려 했다. 그래서 조금씩 쉬면서 구경하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곡이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손가락으로 “I Love You”를 표시하며 양손을 뻗었고 온 몸으로 방방 뛰었다. 아 정말이지 다리에 알이 베길 것만 같았는데도, 아니 알이 베기기 시작했는데도 몸은 뛰고 있었다. 겨울 잠바를 입고 있었기에 더웠고 온 몸이 땀이었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뛰는 와중에 누군가가 물을 뿌렸고 그 물이 얼굴에 날아왔지만, 다른 때 같으면 싫었을 상황이 이땐 좋았다. 그냥 신났다.

이렇게 공연을 진행하는 와중에, 후반부가 될 즈음,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이대로 죽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이었다.

정규 공연이 끝나자 시작했다. 그러며 부른 곡은 “Soldier’s Poem”. 앵콜로 이 곡이 제격이다는 느낌을 받았다. 앨범을 사서 이 곡을 들었을 땐 살짝 뜨악한 느낌이었는데, 앵콜로 부르니 정말 좋았다. 그리고 정말 이 곡이 마지막일 까봐 걱정이었다. 다른 한 편으론 끝이었으면 했는데, 팔이며 다리며 안 아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서 있기도 조금 버거운 상황이었다. 이 곡이 끝나자 “Invincible”을 불렀다. 아아, 너무 멋져ㅠ_ㅠ 앨범에서도 연결되어 있는 곡인데 라이브에서도 같이 부르다니… 흑흑흑. 다음 곡은, 왜 안 불렀을까 싶었던 “Time Is Running Out”이었고 열광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마지막 곡은 “Knights Of Cydonia”. 이날 뮤즈의 공연은 종종 연주/변주곡을 몇 번 했는데(다른 곳에서도 자주 하지만), “Knights Of Cydonia” 역시 변주로 시작했다. 그러며 이 곡의 멜로디가 흘렀을 때 그 감정이란! 이 곡을 들으며 더 감동받았던 건, 대형스크린을 통해 가사를 조금 보여줬는데 “You and I must fight for our rights. You and I must fight to survive.”라는 가사때문. 이렇게 보니 새삼스러웠고, “survive”라는 말이 몸에 콱, 박혔다. 생존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말(물론 이때의 싸움이 반드시 무기 등을 통한 전쟁이나 폭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 말을 읽으며, 들으며 뭔지 모를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이 가사를 부르고 나면 강렬한 기타 연주를 하는데, 이미 지친 몸이었음에도 이전보다 더 뛰었다. 그냥 몸이 뛰고 있었다. 손을 뻗으며 열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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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공연이 끝났다. 다시 한 번 앵콜을 외쳤지만 스탭들이 장비를 철수하기 시작했다. 떠나기 싫은 몸으로, 아쉬운 몸으로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돌아섰다. 나가는 와중에도 다시 한 번 돌아서기를 반복했다.

그러며 중얼거렸다. “오늘 공연을 본 힘으로 일 년을 버틸 거라고. 오늘 공연을 보며 얻은 힘으로 일 년을 살아가겠다”고.

Pat Metheny Group은 매년 정기적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팬들도 매년 연례행사처럼 당연히 찾아 간다고 한다. 그러니, 뮤즈, 당신들도 매년 한 번은 꼭 오라고. 그래서 연례행사처럼 만나자고…

어제의 공연은 정말 끝났지만 사실 끝나지 않았다. 아침 학교 혹은 사무실에 오는 길에 뮤즈를 들으며 방방 뛰려는 몸을 느꼈다. 특히 “You and I must fight for our rights. You and I must fight to survive.”라는 가사가 끝난 후의 기타연주 부분에선, 길이지만, 뛰어야 할 것 같았다.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이 힘으로 일 년을 살겠어. 그러니 당신들, 꼭 내년에도 와야 해. 아니, 올해 또 오라고. 일본에 자주 가니까, 가는 길에 들려도 좋아. 꼭 오라고. 또 갈 테니. 몇 번을 와도 몇 번이고 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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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공연 중에 매튜가 한 말. 의례적으로 “감사합니다”와 같은 말이야 다른 여타 외국 밴드들도 하는 말이지만, “기분 죠아요”(발음을 고려한 표기법;;;)라고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 말은 정확하게 루인의 몸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매튜가 할 수 있는 한국어의 범주가 이 정도라는 점에서 이 말이 가장 정확하게 당시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라면, 그것은 정확하게 루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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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녹음을 했는데, 녹음 상태가 엉망이라 열광의 환호성만 들리고 음악은 거의 안 들리네요. 흑흑흑. 하지만 종종 들을 것 같아요. 그리울 때마다 환호성만 들리는 파일을 들으며 좋아하겠지요. 아울러 조만간에 다방에 공연리스트에 따라 선곡해서 올리겠어요. 으흐흐.

오늘이다: 뮤즈!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아서 소리를 지르곤 한다.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또 들으며, 행여나 무슨 곡인지 기억이 안 나는 일이 없도록 애쓰고 있고.

신나게 놀거야.
마치 이 날을 기다린 것처럼, 이 날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느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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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스탠딩이면 어쨌거나 입장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아님 결국 스탠딩 입장순서표처럼 입장해야 하는 건가요?

책이 나오긴 나오려나

작년 말부터, 아니 작년 가을부터 책 나온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말이 쏘옥 들어갔다. 책을 기획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바쁘고 그러다보니 책을 위한 글쓰기를 비롯해서 여러 작업의 진행 속도가 더뎠다. 그러다 최근 다시 모임을 가졌고, 책에 들어갈 글 몇 편의 초고들이 편집장에게 넘겨졌다. 기획팀은 서울여성영화제 때 책을 출판하고 싶어 하지만 편집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했다. 그러며 대신 그 시기에 홍보 팜플렛을 뿌리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 책엔 두 편의 글을 실기로 했다. “번호이동 혹은 성전환”과 “정체성 명명과 경계지대”

“번호이동 혹은 성전환”은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에서 주민등록제도의 의미를 질문하는 글이다. 주민등록제도 당시에 왜 하고 많은 방식 중에서 성별이분법을 핵심적인 기준의 하나로 설정했는지와 같은 질문의 대답은 후속작업으로 돌렸지만-_-;; 트랜스젠더에게 신분증이라는 것이 신분을 증명하는 제도가 아니라, 신분을 배신하거나 부인하는 제도라는 것을 말하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변경이 단순하게 기존의 국가체제에 편입하는 것으로 말할 수 없음을 얘기를 하고 있다. 당연히 아직도 글은 미숙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면 괜찮다고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그 정도면 무난하지 않겠느냐, 기획 의도는 살리고 있지 않으냐란 의미이지 잘 썼다는 의미는 아님을 알고 있다.

“정체성 명명과 경계지대”는 게이, 크로스드레서 그리고 mtf 트랜스젠더 사이의 긴장 관계를 다루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글이다. (책에는 부치와 ftm/트랜스남성 사이의 긴장을 다루는 글도 있을 예정이다.) 하지만 인터뷰와 루인의 경험을 재해석하면서 긴장관계가 있다 없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얘기하고 있다. 정체성을 명명한다는 것이 사실은 어떤 규범적인 틀을 만들고 그리하여 게이는 이러이러하고 크로스드레서는 이러이러하고… 라는 식의 획일적인 모습을 만드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 동시에 게이나 크로스드레서였던 mtf 트랜스젠더의 경험이나, 게이 트랜스젠더 혹은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는 존재할 수 없는 부재로 만들어 버림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런 논의는 조금도 새롭지 않지만(Jacob Hale을 비롯해서 몇몇 관련 논의들이 쉽게 떠오를 수도 있다) 새롭거나 재밌게 여기는 맥락이 루인의 주변엔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루인의 이런 설명이 자칫 “이성애” 트랜스젠더보다는 퀴어 트랜스젠더를 더욱더 선호하는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1998년도에 나온 루빈(Henry Rubin)이나 2000년에 나온 나마스테(Vivian Namaste)와 같은 몇몇 트랜스섹슈얼/트랜스젠더들은 트랜스젠더 이론이 퀴어 이론이 수용할 수 있거나 선호하는 방식으로 발달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은데, 기묘하게도, 트랜스젠더 이론을 다루는 책 한 권 발간되지 않았고 관련 논의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임에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퀴어라는 어떤 범주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트랜스젠더를 설명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트랜스젠더를 끊임없이 젠더 이분법에 문제제기하는 존재로 여기고 싶어 하고. [따로 쓸 내용이지만, 트랜스젠더는 젠더를 초월한다는 말이나 젠더를 강화한다는 말이나 사실은 같은 내용이다.] 사실, 루인 역시 퀴어와 트랜스젠더가 겹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이런 식의 설명은 퀴어와 트랜스젠더는 어쨌든 따로 구분해서 존재한다는 걸 전제한다는 점에서 모순어법이지만, 이는 루인은 언제나, 기존의 언어체계에서 모순어법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전히 모든 트랜스젠더는 “이성애자”라는 식의 인식이 팽배하기에, 이 글의 내용을 끊임없이 주장할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이런 분위기들 때문에 마냥 편하지는 않다.

다른 한편 이 책에 실릴 글의 저자들을 따졌을 때, 이른바 “당사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7명 중 두 명이다. 이런 구분이 상당히 코미디처럼 작동하고 있다. “정체성 명명과 경계지대”라는 글의 초고를 처음 가져가서 들었던 논평 중엔 “루인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란 내용도 있었다. 이 말은 의도하건 하지 않건 루인이 트랜스임을 상기한다. 물론 루인의 글을 읽다보면 루인이 트랜스임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긴 하다. 경험해석에서 출발하는 걸 좋아하는 루인은, “○○○”라는 글에서 어떤 경험을 해석했다면, 얼마 뒤에 쓴 “☆☆☆”라는 글에선 같은 경험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이렇게 경험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너무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일테면, 루인이 낯선 사람과의 자리에서 조용한 것은 어쨌거나 “남성”으로 자랐기에 “과묵”한 것일까, “여성”이기에 “차분”하고 “다소곳”한(웩!) 것일까?] 젠더를 둘러싼 해석 역시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당사자”라는 건, 종종 비판을 불가능하게 하는 아주 불편한 것이기도 하다. (“당사자”라는 식의 표현 자체가 코미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지점이 문제이다. 기획팀이 이런 문제에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런 지점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 없다. 다른 한 편으론 루인 역시 이런 지점을 이용하는 측면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아무튼, 어쨌거나 책이 나오기는 나오려나 보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이는 바라지 않고 나오기 직전까지 충분히 퇴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출판 직후에 쓰는 새 글은, 책에 실은 글을 비판하는 그런 글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