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한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루인은 그 동아리방에 언제나 상주하고 있는 구성원이었다. 수업을 제외하고 학교에 있는 모든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고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동아리 방에 있는 루인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루인은 서서히 그 공간의 일부가 되어갔고 그렇게 사람들은 종종 루인을 잊어갔다. 가끔은 루인이 없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게 루인과 그 공간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어갈 즈음, 루인은 그곳에서 떠났다. 그 이후의 소식은 루인도 모른다.
그 동아리가 루인에게 어땠냐고 물으면 양가적이다. 한편으론 좋았지만 그런 만큼이나 안 좋았다.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안 좋았느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아니다. 떠올리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몸에 향기가 없어서 누구의 기억에도 남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이렇게 풍경이 되어 조용히 사라져도 눈치 채지 못하는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조용히, 안녕, 하고 싶다.
익숙할 즈음 떠나는 것, 이런 이별이 가장 좋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문득. 언제나 그곳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배신하는 것, 그것만큼 유쾌하고도 서글픈 것이 없다. 루인 역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인간이다. 물론 어떤 안정적으로 기거할 공간을 바라지만 그런 만큼이나 어떤 집단에 고정적으로 소속되길 바라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 아르바이트 중 5개월이 가장 오래한 것이라면 말 다했지, 뭐. 어딘가 소속되고 그래서 관습적으로 일하는 것만큼 지겨운 일도 없고 그런 관습을 통해 평가 받는 것만큼 싫은 것도 없다. 루인은 루인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가서, 루인과 관련한 사전 정보도 없는 그런 공간에 가서, 루인을 설득하는 걸 좋아한다. 매 순간 걱정과 두려움이 교차하지만 그런 관계가 좋다. 이미 하나의 틀로 남아버리는 순간, 루인은 그곳에서 떠나길 바란다. 일정한 위치를 점한다고 느끼는 순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훌쩍, 떠나는 것.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안녕, 하는 것.
(이런 맥락과는 상관없이 유학도 나쁘지 않다고 몸앓고 있다. 물론 돈이 문제이지만. 돈이 없어 결국 한국에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만. 하지만 한국에 남아 계속 공부를 한다면, 지금 이 학교엔 있지 않을 것 같다. 루인을 모르는 사람들, 완전히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