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기운과 죽은 듯이 자다

어제 아침부터 두통이 심했다. 잠을 잘못 잔 것은 아니었다. 방 안이 쌀쌀했지만 그저 몸이 조금 무거운 두통이려니 했다. 잠깐, 가스가 세나 하는 몸앓이를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런 악몽은 다시 바라지 않았다.

학교 사무실에 앉아 스팀을 통해 뜨거운 열기가 품어 나오는데도 담요를 덮었다. 몸살 기운이었다. 감기기운은 없지만 살짝 으스스한 상태. 두통약을 먹고 또 먹었지만 별 차도는 없었다.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가며 약을 샀다. 중얼거렸다. “아프면 안 돼. 내후년 2월까진 아프면 안 돼.” 라고. 악착같이 건강할 거라고 다짐했고 미미한 몸살기운이었지만 약을 먹었다. 힝. 그리고 약 기운에 취했다ㅠ_ㅠ

밤에 잘 때 약을 다시 먹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아프면 억울하니까. 약이 독한지 잠이 오는 약이라 먹고 자기에도 좋았다. 잠들려고 했을 땐 어김없이 가수면상태에 빠졌고 이후엔 죽은 듯이 잠들었다. 약 기운에 약간의 멍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고.

오늘, 개별연구 발표가 있는데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 속상했다. 울고 싶었다. 그럼에도 약속 시간에 임박해서까지 준비를 했다. 불만족, 불만족. 이 불만족이 루인을 성장케 하는 힘이지만, 이번 불만족은 너무하다.

(…)

끝나고 난 지금, 뭔가 허무하다. 허탈한 느낌이랄까. 한 학기 동안 한글 논문 5편, 영어 논문 20편, 영어 책 6권을 읽고 발제하고 발표했는데(사실, 개인연구를 하면 좀 편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시원하다기보다는 허무하고 맥이 빠지는 느낌이 더 크다. 발표를 하기 전에 밥도 먹었는데 심한 허기가 몰려온다.

사실 이렇게 분량을 정하며 처음 계획은 상세하게 다 읽고 논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고 어떤 식으로 논지를 펼치고 있는지, 개괄하는 수준에서 하기로 했다. 그런 것이 스스로 무덤을 파버렸고 논문은 다 읽었고 책은 개괄 수준 이상으로 끌어가려고 애썼다. 그러니 괜한 욕심이 만든 결과다. 그러면서 불만족은 쌓여가고 지금은 너무 허탈하고 허망하다. 그러니 어떤 성적이 나와도 부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쉬고 싶은 욕심과 뭔가 몰입할 것을 찾았다. 그저 조금 쉬고 싶기도 하다. 교보에 가서 다이어리를 사고 밤엔 영화를 즐겨야지. 그 전엔 [Run To 루인]에 글을 잔뜩 쓰고 논문 한 편을 읽어야지. 으아아~~~!!!! 마지막 구절에 소름 끼쳤다.

확실히 글을 쓴다는 건,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풀어낸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잘 쓰건 못 쓰건 글만이 루인을 구원할지니.

2006년 문답

이 시기 즈음이면 등장을 예상할 수 있는, 그래서 등장하지 않으면 섭할 법한 문답이에요. 오리님 블로그의 이 글에서 트랙백했어요. 🙂

1_ 2006년 초의 당신의 ‘결심’은 무엇이었나? 기억나는대로 적으시오.
무계획이 상팔자라고 아무 계획을 안 세웠지요. 하지만 아마도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얼른 적응하자고, 열심히 하자고 다짐 정도는 했을 것도 같아요. 딱히 뭔가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

2_ 2006년은 당신에게 어떠한 해였나? 한 단어로 답하시오. 부연 설명은 세 줄까지 가능.
꼬였어!
6월 3일 있었던 TG수다회를 기점으로 인생이 꼬였어요. 평생 운동단체에서 활동이라곤 안 할 것만 같던 루인이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관련 기획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세미나팀에서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는 학교만 다니겠거니 했던 인생, 어쩌다보니 그 구분이 가장 모호한 지점에서 살고 있는 루인을 발견했더래요. 후후. 그래서 좋아요.

3_ 2006년, 이것은 성공했다 5가지.
1. 예상보다 빠른 논문 진행. 다행히 지도교수를 잘 만나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6학기에 걸쳐 쓰려고 했던 논문을 4학기에 끝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지만요 -_-;;
2.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열심히 한, 트랜스관련 공부들. 만족이란 것이 가능이나 하겠어요? 다만 꾸준히 했고 그래서 인쇄매체에도 몇 편의 글을 실었다는 것으로, 미약하나마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어요.
3. 사주팔자의 예상을 피했어요. 후후후. 관재수가 있다고 했거든요. ㅡ_ㅡ;
4. 길에서 쓰러질 뻔 했지만 어쨌든 아직은 튼튼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 일 년 만 더 버티자!
5. 좋은 동기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 비록 학교는 다르지만 같이 수업들으며 친해졌고 그래서 언제나 고마워요 🙂

4_ 2006년, 이것은 실패했다 5가지.
1. 나름대로 하고 있지만 욕심을 채우지 못한 공부. 이건 언제나 불만족이죠.
2. 사주팔자의 예상을 피했어요! 시험운이 있다고 했는데 완벽하게 피해버렸죠. ㅠ_ㅠ
3. 끝없는 우울증의 바다에서 허우적 거리다. 조만간 수영이라도 배워야겠어요. 흐흐흐.
※더 쓰려고 하면 더 쓸 수도 있겠지만, 그저 무난하게 지나갔으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

5_ 2006년 1월 1일의 자신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노는 게 남는 거야! 후후후.

6_ 2006년이 가기 전에 남기고 싶은 말!
그 동안 어둠의 경로로 받은 일본 TV판 애니메이션 보고 싶어~~!!!!!! 그러니 논문 빨리 쓸 수록 애니메이션도 빨리 볼 수 있다! 푸훗. (이봐, 이봐!)

7_ 이 문답을 받아주었으면 하는 사람!
과감하게 즐겨찾기에 링크한 분들을 적고 싶었으나, 소심함이 갑작스레 돌아와서, 꼬리를 내려요. 흐흐. 하지만 해주시면 고마워요^^

연애를 둘러싼 상념들

최근 술자리나 어떤 모임 자리를 통해 유난히 연애와 관련한 주제로 얘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물론 루인의 경우 주로 듣기만 하는 입장이지만, 내년 1월 15일 마감인 논문의 주제도 연애다. 흐흐. 정확하게는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성의 관계”이지만.

며칠 전 참석했던 한 술자리에선 갑작스레 이상형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적잖아 당황하며 아무 말도 못하다가 그냥 없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굳이 따지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땐 떠오르지 않았고, 사실대로 말했다간 이미지가 굳어질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이상형이 있긴 있다. 얘기를 나누다보면 변태하는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사람. 루인이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인데, 문제는 얘기를 나누며 변태할 수 있는 사람은 연애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평생 친구로 삼고 싶어 하기에 연애가 성립하지 않는다. 쿠쿠. 결국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다만 이상형은 아니고 조건이 있을 따름인데, 주지하다시피 루인과 같은 채식주의자(vegan)여야 한다. 언젠가 장난삼아 쓴 글에서도 밝혔듯, ‘하늘이 점지한 인연’이라도 채식주의자가 아니면 헤어지겠다는 것이 루인의 입장일 정도로 완고하다. 관련해서 별로 안 좋은 기억이 몸에 남아 있기 때문.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다른 땐 못해도 이럴 때만은 주제 파악은 한다”고 대답하곤 한다. 이런 식의 대답은 상당히 복잡한데 자칫 정체성과 관련해서 자기혐오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누가 루인 같은 인간을 좋아하겠어요?”라고 대답한다. 사실이잖아. 후후후. 주제 파악은 하고 산다니까. -_-v

“주제 파악은 한다”는 말이 복잡한 이유는, 못 생겼다, 가난하다, 무식하다 등의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결혼 조건에 기준을 두고 있어서만은 아니다(듀오가 문제라니깐!). 이런 이유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한편으론 그저 이런 표현이 그럴 듯 했다. 왠지 설득력 있잖아. 후후.

하지만 근래에 들어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 지점은, 어제 인용한 헨리 루빈의 글 처럼 트랜스라는 위치 때문이다. (비슷한 글을 적은 것 같은데 못 찾고 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래서 그 사람에게 고백하려할 때, 루인은 루인이 트랜스임을 밝혀야 함과 동시에 ‘레즈비언’이면서 퀴어(queer)임도 밝혀야 한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한다. 일부 트랜스에게 동성애 혐오가 있는 만큼이나 일부 동성애자들에게도 트랜스혐오가 존재한다. 그래서 트랜스레즈비언이나 트랜스게이의 존재는 레즈비언 공동체나 게이 공동체에서, 그리고 트랜스젠더 공동체에서도 그렇게 수월한 건 아니다. 그런데 트랜스레즈비언이나 트랜스게이, 트랜스퀴어가 좋아하는 사람이 완고한 ‘이성애’자라고 자신을 믿고 있고 트랜스혐오와 동성애혐오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트랜스혐오와 동성애혐오가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부딪히기 전까진 누구도 알 수가 없는데 “그럴 수도 있지”, “그게 어때서”와 같은 평소의 반응은 루인에게 ‘쿨’하게만 보일 뿐 자신을 성찰하는 것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그게 어때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가족 중 누군가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혹은 “당신에게 고백한다면?”이란 질문을 던지는 순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멈칫하며 ‘그건 싫어’라는 표정을 짓곤 한다. 이런 반응을, “난 이성애자야”라는 이유로만 합리화할 수 없는데, “난 이성애자라서 그건 싫어”라는 반응은, 어떤 의미에서 “난 동성애자가 싫어”라는 반응보다 더 한 혐오발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자신을 합리화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커밍아웃을 통해 발생하는 관계에선 단순히 그런 식으로 의미가 발생하지 않는다. 고백했을 때, “난 이성애자라서”와 같은 반응은 “네가 트랜스라서 싫어” 혹은 “네가 동성애자라서 싫어”, “네가 퀴어라서 싫어”라는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과는 별도로 자신의 정체성은 모든 것의 원인으로 여겨지고 상당한 갈등과 고통의 원인이 된다. “난 이성애자라서 싫어”라는 말은 ‘쿨’함은 있어도 어떻게 관계 맺고 소통할 지에 대해선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고 현재로선 별로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의 반영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 이런 대답은 ‘명백한’ 트랜스혐오 발화와 별다른 차이를 가지지 않는다.

헨리 루빈의 글에 눈물표시 200만 개를 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 지점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낙인도 자기 부인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이 가지는 의미로 인해 모든 걸 망설이는 상황. 루인에게 연애와 그것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의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뭔가 결론이 이상하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