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드님의 글, “연애의 조건“을 읽고 루인의 글을 다시 읽다가 글을 참 성글게 썼구나, 했다. 그러니까, 루인은
다만 이상형은 아니고 조건이 있을 따름인데, 주지하다시피 루인과 같은 채식주의자(vegan)여야 한다. 언젠가 장난삼아 쓴 글에서도 밝혔듯, ‘하늘이 점지한 인연’이라도 채식주의자가 아니면 헤어지겠다는 것이 루인의 입장일 정도로 완고하다. 관련해서 별로 안 좋은 기억이 몸에 남아 있기 때문.
이라고 썼다. 그러며 키드님이 든 [폭풍우 치는 밤에]란 비유에 깔깔 웃었는데, 너무 절묘했기 때문이다. -_-;;; 흐흐.
개인은 누구나 자기 트라우마를 통해 세상을 해석한다는 ㄹㅇ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참이라고 가정하면[웬 뜬금없는 수학과의 논제 증명 방식? ;;;], “관련해서 별로 안 좋은 기억”이라는 문장은 너무도 많은 걸 함축하고 있다. 그 기억 혹은 경험이 연애의 조건을 채식주의자로 한정하도록 했다. 다만 그 기억 혹은 경험을 다시 쓰기가 꺼려지는 건, 마치 그 상대방을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기 때문. (그리고 왠지 관련해서 한 번은 쓴 것 같은데 못 찾겠다. 지금 쓰는 방식과 과거에 쓴 방식을 비교하면 재미있을 텐데.)
연애는 아니지만 사귀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밥 먹자고 자주 루인을 불렀지만 그렇게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은 루인과 같이 있으면 맛있는 것을 못 먹는다고 끊임없이 뭐라고 했었다. 그 맛있는 것이란 고기나 유제품 등을 이용한 음식들을 의미. 당연히 루인처럼 성격이 나쁜(!, 성격 나쁜 건 인정하지만 고칠 의향이 전혀 없어 문제인;;; 크크크) 아해는 한동안은 그냥 루인 잘못이려니 참았지만 한계에 도달했을 때, 더 이상 연락을 받지 않았다. 더 이상 그 사람은 루인의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며 언제나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만 등장하는 인물로 바뀐 것.
사실 그 사람은 루인이 그런 말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관계를 엮어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했다. (물론 루인이라고 그 사람에게 마냥 착했던 건 아니다. 착하다니! 루인처럼 까칠한 인간이 착할 리가!)
며칠 전 한 술자리(루인에게 이상형을 물어본 그 자리)에서 채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사람(ㅈ)이 “연애를 하면 힘들겠다”는 의미의 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ㅇ)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각자 시켜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답(ㅈ)이 “음식을 먹으러 간다는 건 단지 같은 식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음식을 즐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지적이 꽤나 정확하다고 느꼈는데(루인에게 “같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의 의미 역시 이 지점이기도 한데), 같이 식사를 한다는 건 단순히 하나의 식탁에서 같이 먹는다는 의미를 넘어 어떤 음식을 공유하고 그것과 관련한 혹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채식(주의)자/vegan인 루인은 루인과 식성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음식문화는 극히 제한적이다.
일테면 루인은 순대 삶는 냄새를 너무도 싫어하는데, 루인이 채식을 갈등하던 시기에 가장 견디기 힘든 냄새가 순대 삶는 냄새였고 그 냄새가 채식을 결심하게 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여전히 순대 삶는 냄새를 싫어해서 순대집이 근처에 있으면 길을 돌아갈 정도. 그런데 어느 날, 사귀는 사람이 순대나 순대국을 먹고 싶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굳이 루인과 순대국밥집에 가고 싶다고 느낀 것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느낀다. 그건 정말 순대나 순대국이 먹고 싶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와 관련한 다른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기에 그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음식과 관련해선 이런 지점들이 너무도 많은데, 사람들과 만나면서 루인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건 사람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고깃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루인을 매개해서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얘기를 한다는 점이다. 같이 있는 자리의 사람들만 좋으면 고깃집에 가는 것도 그다지 망설이지 않는데(스트레스야 꽤나 받아도), 사람들의 과도한 고민/관심은 오히려 루인이 뭔가 굉장히 잘못한 것 같아지고 동시에 루인 때문에 안 해도 되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지만 채식 식당과 같은 관련 정보는 전혀 모르고 별로 신경도 안 쓰는데(루인의 주식이 괜히 김밥이겠느냐고, 흐흐) 루인을 생각해서 누군가 채식식당을 알아오고 그러면 고마움과 미안함과 편치 않음이 동시에 몸을 타고 돈다. 루인을 만나며 상대방이 채식 혹은 음식과 관련한 고민을 새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상대방이 루인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_-;;;(이토록 뻔뻔한!) 동시에 자꾸만 루인이 뭔가 잘못한 것만 같은 느낌. 괜히 루인 때문에 안 해도 되는 고민을 시켰다는 미안함.
더구나 루인의 채식은 무엇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데, 식당이나 음식을 선택할 때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무엇은 먹고 무엇은 안 먹는 지로 환원하면, 그때의 감정은 좀 더 복잡하다.
그래서 연애의 조건으로 루인과 같은 “채식주의자”였음 한다고 적었다(사실이기도 하고). 물론 그 사람은 정말로 채식주의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어떤 소통이나 관련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지만, 그 관계 맺음이라는 것이 엄청난 대화를 요구하고 그 과정이 애인이라는 관계에서 요구하는 것(혹은 그런 관계에 가지는 환상)이라기보다는 동지나 친구 관계에서 가능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가장 절친한 친구와도 밥 먹으러 가길 꺼려하겠느냐고. 루인이 지나치게 정치적인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관계 맺기가 상당한 긴장과 논쟁을 요구하는데, 비록 애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긴장과 논쟁에서 루인만큼이나 스트레스 받는 걸 느꼈고, 애인이 채식주의자라면 이런 스트레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엮어갈 수 있겠구나 했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떠오른 느낌. 루인 저 인간 연애에 환상이 있는 거 아냐? 흑흑. 이러나저러나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는 거.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