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정치적 올바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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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저의 말이 당신[루인]에게 상처가 될까봐 질문하기가 조심스러워요”, 라는 말을 듣는다. 이런 말에 대한 루인의 반응은, 이 글을 읽고 있을 분들의 상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참 착하다. 루인은 범생이라니까… 😛

그러니까, 그런 말에 대한 루인의 반응은 간단하다. “루인이 상처 받을까봐 걱정인 것이 아니라 어떤 질문으로 인해 자신이 가해자가 될까봐 걱정인 것 아닌가요?”

누구도 대화를 시도하기 전까진 그 말이 상처가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상처가 되면 또 어때. 상처를 주고받는 것에 너무도 과잉 반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엔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왜들 그리 상처를 주고받는 일에 강박적인지.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과정 이후, 이와 관련한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는 것, 그것이 더 문제라고 느낀다. 질문자는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질문을 받은 사람은 왜 그것이 상처인지를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없을 때 상처가 되지 어떤 말을 했다고 무조건 상처가 된다고 느끼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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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치적인 올바름”이란 말은 언어가 아니라고 예전에 많이 적었는데, 최근의 고민을 살짝 덧붙이면.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란 건, 상대방의 입장에 따른 “정치적인 올바름”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판단하는 “정치적인 올바름”이다. 즉 자신의 입장에서 “정치적인 것”을 구성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올바름”을 결정한다. 그러니 “정치적인 올바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화의 과정에서 그다지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그것이 “정치적인 올바른” 질문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질문을 받은 사람에겐 폭력일 수 있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 같아 질문하지 않은 것이 너무도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결론은 같다. 뭐든 질문을 던지는 대신 그런 질문을 통해 대화를 하는 것. 어떤 사람이 동성애 혐오 발화를 하건 트랜스혐오 발화를 하건,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했는지 그 맥락을 듣고 싶다. 사과가 전부는 아니다.

몸살 기운과 죽은 듯이 자다

어제 아침부터 두통이 심했다. 잠을 잘못 잔 것은 아니었다. 방 안이 쌀쌀했지만 그저 몸이 조금 무거운 두통이려니 했다. 잠깐, 가스가 세나 하는 몸앓이를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런 악몽은 다시 바라지 않았다.

학교 사무실에 앉아 스팀을 통해 뜨거운 열기가 품어 나오는데도 담요를 덮었다. 몸살 기운이었다. 감기기운은 없지만 살짝 으스스한 상태. 두통약을 먹고 또 먹었지만 별 차도는 없었다.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가며 약을 샀다. 중얼거렸다. “아프면 안 돼. 내후년 2월까진 아프면 안 돼.” 라고. 악착같이 건강할 거라고 다짐했고 미미한 몸살기운이었지만 약을 먹었다. 힝. 그리고 약 기운에 취했다ㅠ_ㅠ

밤에 잘 때 약을 다시 먹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아프면 억울하니까. 약이 독한지 잠이 오는 약이라 먹고 자기에도 좋았다. 잠들려고 했을 땐 어김없이 가수면상태에 빠졌고 이후엔 죽은 듯이 잠들었다. 약 기운에 약간의 멍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고.

오늘, 개별연구 발표가 있는데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 속상했다. 울고 싶었다. 그럼에도 약속 시간에 임박해서까지 준비를 했다. 불만족, 불만족. 이 불만족이 루인을 성장케 하는 힘이지만, 이번 불만족은 너무하다.

(…)

끝나고 난 지금, 뭔가 허무하다. 허탈한 느낌이랄까. 한 학기 동안 한글 논문 5편, 영어 논문 20편, 영어 책 6권을 읽고 발제하고 발표했는데(사실, 개인연구를 하면 좀 편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시원하다기보다는 허무하고 맥이 빠지는 느낌이 더 크다. 발표를 하기 전에 밥도 먹었는데 심한 허기가 몰려온다.

사실 이렇게 분량을 정하며 처음 계획은 상세하게 다 읽고 논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고 어떤 식으로 논지를 펼치고 있는지, 개괄하는 수준에서 하기로 했다. 그런 것이 스스로 무덤을 파버렸고 논문은 다 읽었고 책은 개괄 수준 이상으로 끌어가려고 애썼다. 그러니 괜한 욕심이 만든 결과다. 그러면서 불만족은 쌓여가고 지금은 너무 허탈하고 허망하다. 그러니 어떤 성적이 나와도 부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쉬고 싶은 욕심과 뭔가 몰입할 것을 찾았다. 그저 조금 쉬고 싶기도 하다. 교보에 가서 다이어리를 사고 밤엔 영화를 즐겨야지. 그 전엔 [Run To 루인]에 글을 잔뜩 쓰고 논문 한 편을 읽어야지. 으아아~~~!!!! 마지막 구절에 소름 끼쳤다.

확실히 글을 쓴다는 건,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풀어낸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잘 쓰건 못 쓰건 글만이 루인을 구원할지니.

2006년 문답

이 시기 즈음이면 등장을 예상할 수 있는, 그래서 등장하지 않으면 섭할 법한 문답이에요. 오리님 블로그의 이 글에서 트랙백했어요. 🙂

1_ 2006년 초의 당신의 ‘결심’은 무엇이었나? 기억나는대로 적으시오.
무계획이 상팔자라고 아무 계획을 안 세웠지요. 하지만 아마도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얼른 적응하자고, 열심히 하자고 다짐 정도는 했을 것도 같아요. 딱히 뭔가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

2_ 2006년은 당신에게 어떠한 해였나? 한 단어로 답하시오. 부연 설명은 세 줄까지 가능.
꼬였어!
6월 3일 있었던 TG수다회를 기점으로 인생이 꼬였어요. 평생 운동단체에서 활동이라곤 안 할 것만 같던 루인이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관련 기획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세미나팀에서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는 학교만 다니겠거니 했던 인생, 어쩌다보니 그 구분이 가장 모호한 지점에서 살고 있는 루인을 발견했더래요. 후후. 그래서 좋아요.

3_ 2006년, 이것은 성공했다 5가지.
1. 예상보다 빠른 논문 진행. 다행히 지도교수를 잘 만나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6학기에 걸쳐 쓰려고 했던 논문을 4학기에 끝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지만요 -_-;;
2.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열심히 한, 트랜스관련 공부들. 만족이란 것이 가능이나 하겠어요? 다만 꾸준히 했고 그래서 인쇄매체에도 몇 편의 글을 실었다는 것으로, 미약하나마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어요.
3. 사주팔자의 예상을 피했어요. 후후후. 관재수가 있다고 했거든요. ㅡ_ㅡ;
4. 길에서 쓰러질 뻔 했지만 어쨌든 아직은 튼튼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 일 년 만 더 버티자!
5. 좋은 동기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 비록 학교는 다르지만 같이 수업들으며 친해졌고 그래서 언제나 고마워요 🙂

4_ 2006년, 이것은 실패했다 5가지.
1. 나름대로 하고 있지만 욕심을 채우지 못한 공부. 이건 언제나 불만족이죠.
2. 사주팔자의 예상을 피했어요! 시험운이 있다고 했는데 완벽하게 피해버렸죠. ㅠ_ㅠ
3. 끝없는 우울증의 바다에서 허우적 거리다. 조만간 수영이라도 배워야겠어요. 흐흐흐.
※더 쓰려고 하면 더 쓸 수도 있겠지만, 그저 무난하게 지나갔으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

5_ 2006년 1월 1일의 자신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노는 게 남는 거야! 후후후.

6_ 2006년이 가기 전에 남기고 싶은 말!
그 동안 어둠의 경로로 받은 일본 TV판 애니메이션 보고 싶어~~!!!!!! 그러니 논문 빨리 쓸 수록 애니메이션도 빨리 볼 수 있다! 푸훗. (이봐, 이봐!)

7_ 이 문답을 받아주었으면 하는 사람!
과감하게 즐겨찾기에 링크한 분들을 적고 싶었으나, 소심함이 갑작스레 돌아와서, 꼬리를 내려요. 흐흐. 하지만 해주시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