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책, 몸의 변화

어제 오랜만에 숨책에 갔다. “갔다”는 말은 다소 부적절한 표현이고 일일 알바를 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사실 그다지 갈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헌책들과 놀 여유가 없어서 2달 넘게 안 가고 있는데, 아르바이트라니. 하지만 아르바이트라서 갔다-_-;;; 농담이고, 알바 기회를 빙자해서라도 한 번은 가고 싶었다. 그리고 가야할 이유가 필요했다.

갔지만 몸은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토요일, 두 개의 회의와 하나의 세미나가 있었는데, 회의 중 하나는 밤샘을 작정하고 끝장회의로 계획했었고 정말 새벽 4시 경에야 끝난 회의였다. 玄牝으로 돌아와 눈을 붙인 후 9시에 일어나 11시에 친구를 만나고 청첩장을 받았다. 루인의 친구 중에선 가장 빨리 결혼하고 아마 유일한 결혼일지도 모른다. 친구가, 아직도 결혼할 의사가 없느냐고 물어서, 아직은 없다고 그랬다. 중학생 때,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여전히 비슷한 자기 선언 속에 살고 있지만, 조금은 다른데, 그땐 “평생 않겠다”고 말했고 지금은 “아직은 그럴 의사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식의 변화는, “아직은”이라는 말이 “평생”이라는 말보다 더 정확할 수 있겠다는 느낌 때문이었지만, 이런 말이 더 단호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내일 일은 알 수 없지만, 언제까지 “아직도”일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나저나 입고 갈 마땅한 옷이 없어서 걱정이다. 정장도 없거니와 얌전하게 입을 만한 면바지 한 벌 없다. 죄다 청바지고 그것도 상당수가 힙합스타일이다;;;;; (그런데, 결혼식에는 옷을 어떤 식으로 입고 가야하나요? 아시는 분 좀 가르쳐 주세요ㅠ_ㅠ)

아무튼 이런 몸으로 알바를 갔으니,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잠깐 졸았으면 좋았을 것을, 손님이 있을 때 살짝 졸았다. 흐흐흐;;;;;;;;;;;;;;;

하고 싶은 얘기는 살짝 다른 건데, 두어 달 만에 만난 주인장이 루인에게 해준 말은 “살이 빠지고 어려진 것 같다”였다. 요즘의 유행코드에 맞는 말들이니까 좋아할 법한 말들이다. 기분이 나빴다는 얘기가 아니라 좋았는데, 그것이 마른 것을 선호하고 동안을 선호하는 그런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는 의미다(물론 이런 의미로도 안 좋았다면 거짓말 크크크;;;). 지난 8월 초부터 몸의 변화를 실험하고 있는데, 미약하나마 그것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런 몸의 변화는 9월 즈음부터 느끼고 듣기 시작했는데, 매일같이 만나는 루인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냥 재미있다고 느꼈다.

스팸설정의 어려움

스팸 리플이나 스팸 트랙백에는 종종 포르노그래피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 루인의 짜증은 포르노라서가 아니라 스팸이라서이다. 포르노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애초 찬/반의 문제도 아니거니와) porn은 스팸으로 등록하는데 별 갈등이 ‘없다.’ 문제는 sex.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sex가 주민등록번호 인증을 요구하는 언어라는데 광분하는 루인으로선 이 단어를 스팸으로 설정하기 어렵다. 맨 날 사용하는 언어가,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인 인간이 섹스를 스팸으로 등록하다니! 누군가가 혹은 루인이 이 단어로 트랙백을 보낼 수도 있는 상황인데! 아흑, 그래서 기묘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ㅠ_ㅠ

라디오스타: 라디오 청취자들을 위한 헌사

[라디오스타] 2006.10.13.금요일. 6회, 21:40, 6관 9층, I-12

영화와 놀다가 이준익 감독은 게이가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았다. 푸훗. 이러다 모든 영화감독을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로 만드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p

굳이 따지자면 영화를 읽을 시간이 없었다. 수업 준비와 회의 및 세미나 준비, 25일에 있을 발표준비(한글논문 2개, 영어논문 7개, 영어책 2권을 요약해서 선생님에게 발표해야 한다, 후후후) 등등으로 영화를 읽으러 간다는 건 사치에 가까운 상황. 그럼에도 지난주부터 영화를 읽고 싶다는 욕망이 몸을 태웠고 결국 아트레온으로 향했다.

영화를 읽으며 이 감독은 게이가 아닐까 싶었다. 아닌 척 하지만 최곤(박중훈 분)과 박민수(안성기 분), 영월중계소의 국장과 음향기사, 이렇게 둘의 관계는, 후후후. 직접 읽으면 알 수 있어요. 🙂

이 영화가 재미있었던 건,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선물 같은 느낌 때문이다. 라디오 청취를 좋아하는 루인에게 이 영화는 같이 놀 수 있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라디오천국” 같은 느낌을 준다. 더구나 이 영화에서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은 루인이 가장 좋아하는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을 바꾼 것이고, TV에서 안 하는 건 아니겠지만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청취자와의 전화연결, 그리고 청취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의 대처 등등. 아, 뭐라고 할 수 없는 이 느낌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노브레인의 열연. 후후. 비틀즈를 비롯해서 유명 락밴드를 분장하는 장면도 장면이지만, 이 영화에서 손꼽을 장면 중 하나는 [Abbey Road] 표지 디자인을 패러디하는 부분이다. 비틀즈를 분장하고 나와선 최곤과 박민수를 따라가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이 순간 표지 디자인을 패러디하며 재현한다. 그 장면에 넘어가라 웃었는데, 혼자 웃고 있더군;;; 아니면 혼자 너무 웃은 것인가ㅡ_ㅡ;;;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준익 감독이란 사람, 영화는 참 잘 만든다고. 사실 지금의 감흥으로는 이 영화를 다시 읽고 싶은 유혹을 마구마구 느끼고 있다. 물론 이 감흥은 이 영화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라디오청취자로서의 감흥에 기대는 면이 크다. 보이는 라디오처럼 이 영화는 그런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