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저런 얘기들

#
속이 쓰리다. 맞다. 술 마셨다.

푸훗. 거짓말이다. 캬캬. 루인이 술은 무슨. 원래 불규칙적인 식사를 하지만 최근 이런 불규칙이 더 심해졌고 그래서 위가 부담스러웠는지, 속에서 위산이 올라왔다. 후후.

#
내일이면 6000.

고마워.
(상상은 금물!)

#
추석이에요.
내일이면 부산에 가요. 추석 연휴가 끝나면 만나요 🙂

지정문답 바톤

처음엔 살짝 당황했어요. 정희진 선생님이라니. 아, 애드키드님 블로그에서 받았어요. 🙂

그나저나 재밌어요. 이 바톤을 받은 날인 어제 오후에 정희진선생님과 연관이 있을 법한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그나저나 걱정이에요. 요즘의 루인에게 정희진선생님은 좀 복잡하거든요.

1. 최근 생각하는 “정희진”
요즘의 정희진선생님은 예전만큼의 어떤 ‘열광’은 없는 편이에요. 한땐 루인에게 최고였지만 지금은 ‘한계’를 느낀달 까요.
물론 이런 ‘한계’는 정희진선생님과 루인의 위치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이기도 해요. 페미니스트로, ‘이성애-여성’으로 말하는 선생님과 트랜스젠더이자 퀴어queer인 루인의 입장은 (이것이 반드시 경쟁관계인 것은 아님에도) 상당한 기장을 유발하죠. 최근에 읽은 선생님의 글에서도 이런 긴장을 느끼고 있고(“치킨 게임“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죠) 강연 중엔 종종 불편함을 느끼기도 해요. 너무 많은 설명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고, 종종 퀴어나 트랜스젠더는 별도로 설명할 사항으로 여기는 경향 때문이죠.
과거엔 쾌락과 열광이 이런 불편함을 능가했다면 요즘은 불편함이 열광을 능가했달 까요.

2. 이런 “정희진”에게는 감동
그래도 여전히 정희진선생님의 글은 매력적이에요. 정희진선생님의 글은,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의제를 설정하고 질문구조를 다시 보려고 하는지로 읽으면 상당히 즐거워요. 논쟁 구도에서 전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3. 직감적 “정희진”
언어, 긴장 그리고 상상력.
선생님은 자신을 소심하다고 하시지만 루인에게 선생님은 상상력과 용기로 언어를 직조하는 분. 푸후후.

4. 좋아하는 “정희진”
글을 쓰는 정희진, 말을 하는 정희진, 길에서 만났을 때 아는 척 해주는 선생님. 후후.
(예전에 한겨레에서 했던 특강 때, 선생님이 “자기는 50번도 넘게 듣지 않았어?”라고 하셨는데, 그 사람이 루인이었다. ㅡ_ㅡ;; 물론 50번씩이나 들었다는 건 과장이지만;;;;;)

5. 이런 “정희진”은 싫다
청강할 때였는데, 무슨 내용을 설명하다가 “동성애자라면 ○○○○”라는 식으로 어떤 설명에서 퀴어나 트랜스젠더를 별도로 설명할 무엇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럴 때마다 당황한다. 물론 이런 모습은 비단 정희진선생님 만의 모습은 아니지만, 기대가 큰 만큼 당혹스러움과 ‘실망’이 큰 편이라 그런 거지만.

6. 세상에 “정희진”이 없었다면
어제 했던 얘기가, 페미니즘 인식론을 배울 수 있는 책이나 글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희진선생님의 책을 추천해서였다. 맞다. 루인의 인식론의 토대는 정희진선생님에게서 배웠다. 선생님의 글이나 책도 있지만, 청강이나 강좌를 통해 배운 건, 세세한 내용들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지점들-인식론. 그러니 지금의 루인이 있게 한 분. 뭐, 이렇게 적으니 루인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잖아;;;;;;;;;
질문을 다시 읽으니, “세상”이네.;;;;;;;;;;;;;;;;;;;;; 세상에 있어 정희진선생님은 그저 하나의 목소리. 그래서 세상에 “정희진”이 없었다면 우울하지 않았을까?

7. 바톤을 받을 5명 (지정과 함께)
애드키드님께 다시 보내고 싶은 질문이 있지만 흐흐 그냥 통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계급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06.10.01.일. 아트레온 6회 21:25, 2관 3층 D-17

극장에서 걸어 나오며, 루인이 영화평론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다행이라고 느꼈다. 종종 영화를 읽고난 후, 분석 같은 거 하지 않고 그냥 “재밌었다” 혹은 “별로였다” 정도의 간단한 언급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이 영화는 슬프긴 하지만 [각설탕]만큼 울 정도는 아니었다.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면 딱히 울리려고 작정한 영화도 아닌 듯 하고. 뭐랄까, 뭔가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뭐, 나쁘진 않다. (이 영화는 상당히 ‘착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읽기에 따라선 할 얘기가 상당히 많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는 루인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만한 영화였다.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낼 뻔 했다. 일테면 유정(이나영 분)이란 캐릭터는 루인이 이입하기 제격인 인물. 자살미수, 주변에 무감, 가족과의 불화 혹은 (무)관심 등등의 모습들에서 곧장 빠져들 뻔 했다. 그럼에도 자꾸만 밀어내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건 유정의 계급적 위치 때문이었다. 일테면 비록 교수(강사?)라곤 하지만 굳이 직업이 없어도 “엄마”의 재산을 통해 먹고살 수 있는 상태, 화가 나면 다른 사람의 새로 산 수입차를 부숴도 되는 지위. 이런 모습들은,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이런 모습들 때문에” 거리를 유지하게 했다. 영화에선 계급적 지위 차이에 상관없이 아픔은 공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글쎄다.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에 감응하는 맥락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글쎄”다.

그나저나 영화는 전체적으로 예쁘다. 화면을 잘 잡았고 종종 정말 멋진 장면들이 많다. 일테면 면회소에서 카메라는 유정만을 잡는데, 투명유리벽에 윤수(강동원 분)의 모습이 비춰서 서로가 마주보고 있음에도, 마치 서로 다른 자리에 있고 그래서 서로를 떠올리면서 예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장면이 멋진 건 나중에, 케이크 사진과 겹치면서 더욱 아프게 남는다. 그리고 막연히 “인기 있는 청춘스타”라고 여겼는데, 강동원과 이나영 의외로 연기가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