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발생하는 언어들: 언어에 내재한 권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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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그래서 반복해서 말해야만 하는 사례 하나. 학부 시절, 중간에 휴학을 한 덕분에 9학기를 다녔었다. 그래서 몇 학기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했던 말, 4학년 3학기에요. 그럼 다들 웃었고 재미있어 했다. 이런 얘기를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했다. 그리고 분위기는 변했다. 그 친구는 2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언제나 4년제 대학 혹은 학벌과 그 위계를 아쉬워했다. 자기도 4년제이고 싶어 했고 종종 농담처럼 자신은 대졸이 아니라 고졸이라고 말했다(농담처럼 얘기했지만 농담이 아니다).

그 친구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 중 하나는 “대학교”란 말은 4년제에만 붙일 수 있고 2년제엔 “대학”이란 말만 붙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대학”이냐 “○○대학교”냐, 로 곧 몇 년제인지 알 수 있다고. 학벌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닫지 못하는 곳에 산재하고 있다. 명절마다 부산에 내려가는데 가기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학벌-공부를 잘 한다는 어떤 권력/권위를 느끼기 때문이다. 루인은 그런 것이 없다고, 서울에 다닌다는 것이 곧 공부를 잘 한다거나, 뭔가 대단한 건 아니라고 속으로 중얼거리지만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는 사촌이나 그 사촌의 부모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그런 말이 짜증이었지만 이내 깨달았다. 그렇지 않다고 중얼거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학벌이며 특권의 증거라는 것. 루인은 토익, 토플 공부를 한 번도 안 했지만 이 역시 학벌이라는 특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루인은 루인이 다닌 학부가 대단하다고 느끼지 않지만, 과거의 어떤 풍문을 안쓰럽게 붙잡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서열 같은 것이 있을 때, 그리고 서울에 소재하고 있을 때, 결국 토익/토플을 공부하지 않아도 루인의 영어 실력은 바로 그런 학벌에 의해 충분히 보증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토익/토플 공부를 안 한다고, 안 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종종 그 사람의 특권 과시이다. 학벌이, 그 사람의 토익/토플 성적이 몇 점이든 상관없이 그 모든 걸 담보해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신촌에 나갔다가 연고전을 알리는 파란 색 현수막을 봤다. 또 다시 학벌/특권 과시인가? 아니면 “정상성” 과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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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혹은 이제 군대에 입대할 사람들이, 군대 경험이나 군 입대를 낭비로 얘기하는 것이 “그들”에겐 푸념일 수 있고 정말 “낭비”일 수 있지만 듣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선 그것은 자신의 권력 과시일 수도 있다고 느낀다(물론 “그”가 누구냐에 따라 이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문제가 쉽게 건드리기 힘든 성역이기도 할 때, 대한민국 헌법이 “남성”만을 “국민”으로 간주할 때, 예비역의 군대 관련 발화들은 종종 특권 투정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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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누군가가 자신이 아들이었다면 과외도 받았을 테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유학을 했을 테고, 등등의 얘기를 했었다. 비단 그 “누군가”의 그 이야기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어려움’을 들을 때마다(특히 여성학 수업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복잡한 위치에 빠진다. 그 말의 맥락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루인에게 그 말은 특권 투정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런 말들을 할 수 있는 젠더적인 특권들-즉 트랜스젠더가 아니기에 가질 수 있는 어떤 특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가 가지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트랜스젠더가 아니기에 가지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다르고, “남성”(혹은 “여성”)으로 간주되지만 자신은 “여성”(혹은 “남성”)이라고 말하는 트랜스젠더들에게 트랜스젠더가 아닌 이들과 공유할 수 없는 하지만 때론(꼭 그렇지는 않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유하고 싶은 어떤 경험들이 부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말들이 특권처럼 다가온다. 그런 얘기들에서 애시 당초 배제되는 상황에서 그 말의 맥락은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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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모두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고통이나 ‘어려움’이 그것 자체에서 배제된 이들에겐 특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트랜스젠더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불편함을 말하는 목소리들은 종종 예비역 병장들의 군대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고료: 만화책과 제본

지난 9월 초에 한겨레21에 글을 썼었고 그래서 고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오후 늦게, 통장 잔액을 확인하다 좀 많다 싶어서 “최근거래내역”을 확인하니 고료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우하하. 예상했던 금액보다도 조금 더 들어와 있어서 꿈에 부풀었다. ‘뭐할까, 옷을 살까? 책을 살까? CD? DVD?’ 뭐, 이런 즐거운 상상과 스티키핑거스에서 호두파이나 애플파이를 사먹을까, 하는 등등의 신나는 상상.

사실, 어제 아침은 유난히 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얼마 전의 악몽을 되풀이하는 건 아닌가하는 불안과 수업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정한 상태와 겹치고 몇 년 전의 “냉장고 상상”을 되풀이하고는 상태였다.

역시나 만성우울에 습관인지 좀 괜찮아 졌는데, 오호호, 예상 이상의 금액으로 들어온 고료! 이런 저런 상상을 하고 있다가, 불쑥 깨달았다. 제본! 지난 월요일에 6권의 영어책을 제본 맡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 찾으면 얼추 10만원은 나올 듯,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즐거운 상상은 산산조각 났다. 흐윽.

물론 제본이 우울한 상상은 아니다. 책을 사거나 CD를 사는 것만큼 제본해서 책을 읽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래서 과거의 일에 현재의 수입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현재의 수입으로 미래의 소비를 상상하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인데, 이렇게 쉽게 미래의 소비가 결정되다니! 흑흑.

꼭 이래서는 아니지만, 폐업하는 비디오 겸 만화 대여점에서 34권짜리 만화책을 샀다. 몇 번 들렸을 때마다 없었는데, 어제 그냥 우연처럼 들려서 물었더니 있다는 것. 우헤헤. 너무 좋아서 망설임 없이 샀다. 이미 스캔본으로 5~6번은 읽었고, 몇 번인가 전질을 구매하려고 했지만 품절이나 절판된 권이 있어서 못 사고 있었는데, 으헤헤, 들고 오는 길에 팔이 아팠지만 즐거웠다.

바쁘지 않은 듯 바쁜 & 키드님 다방

뭐랄까, 요즘 일정을 보면 대략 네 가지: 기획단 멤버로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회의+준비. 발족준비위 회원으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회의+발족 준비. 트랜스/젠더 스터디 모임 회의 및 세미나가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대학원 수업 세 개.

이렇게 적으면 무척 바쁜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이번 주는 바빴을까.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시선엔 바쁘게 보였을까, 그냥 빈둥거리면서 [Run To 루인]을 방치하는 것으로 보였을까. 굳이 남의 시선은 왜 신경 쓰는 걸까.

그냥 혼자서 오바하고 있는 거 안다. 세상에서 루인만 가장 바쁜 척 하고 있다. 그럼에도 [Run To 루인]에 글을 쓸 수 없었다는 것이 그다지 부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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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침이면, 애드키드님의 “다방”에 가서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누린다. 아침, 사무실에 와서 메일을 확인하면서 음악을 듣는 기쁨. 듣고 있으면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런데 요 최근 들릴 여유가 없었는데, 정말 ‘즐거운’ 음악을 듣곤 좋아라 무한반복 중이다. The Verve – The Drugs Don’t Work 가사를 알고 들으면 더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노랜 차마 가사를 같이 못 보겠다 싶을 정도로 좋다. =_= 이 곡 말고 Weezer의 O Girlfriend도 무척 좋아해서 무한반복해서 듣곤 했다.

사실, 하나의 곡을 계속해서 듣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키드님의 다방에 들어가면 같은 곡을 몇 번이고 듣고 있는 루인을 깨닫는다. 아, 루인도 tistory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면서, 그러면 맨날 Nina Nastasia나 Cat Power를 올리려나, 하는 불안을 함께 품는다. 크크크.

힙합과 락과 팝과 가요에 재즈나 클래식이 혼재하는 다방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상상에 혼자서 비실거리며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