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하기

다른 이유로 썼다가 그냥 묻어버린 글. 하지만 그 일부가 그냥 묻어버리기엔 아까워서.
최초 쓴 내용에서 얼마간의 편집과 수정은 당연한 것.

하리수 이후, 트랜스젠더란 말이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지만, 하리수 이후에야 트랜스젠더가 한국에 존재하기 시작한 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일테면 인류가 시작한 이래로) 성전환자들은 존재했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흔히 “가시화해야 한다”, “비가시적”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건 오만한 발언이라고 느낍니다. 없었다가 갑자기 나타났거나, 비가시적이었다가 가시적으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항상 존재하고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주장해왔지만 이제야 ‘거슬리기’ 시작한 셈입니다. 자신임을 주장하는 건, 자신을 고정된 정체성으로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그리는(mapping) 작업입니다.
고통을 전시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말하고 고통을 말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전하는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이 만큼 고통 받고 있고, 차별, 폭력, 위협 속에 살고 있다는 재현을 통하지 않고도 요구하고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리수 이후 트랜스젠더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모르는 언어라고 느낍니다. 좀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이 원하고 상상하는 모습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성전환자의 모습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환자들(혹은 ‘우리들’) 개개인이 어떤 식으로 협상하고 있는지를 말하려 합니다.

우울

그러니까, 우울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기 때문에 “우울해~!!!”라고 말한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건 없다. 그저, 또 그러나보다, 하면 그만이다.

며칠 전 한 신문에 실린 “쭝씨(Zung) 우울증 자가 척도”란 것이 있어서 해보았다. 50점 이상이면 우울증 증세를 보임, 60점 이상이면 중증 이상의 우울증 증세를 보임, 70점 이상이면 약물을 포함한 즉각적인 치료를 요함, 이라고 했다. 결과는, 기분이 좋았을 당시엔 81.25, 지금 다시 하니 87.50이 나온다. 헉.
(물론 이 조사는 ‘이성애’를 기분 좋은 일로 간주하는 문제점이 있다.)

단지 만성우울일 뿐이다. 별거 아니다. 습관처럼, 하나의 성격처럼 굳어버린. 지도교수는 논문 오래 끌다간 우울증에 걸릴 거라고 했는데, 설마 지금보다 심각할라고. 어쨌든 100점이 나올 일은 없다고 믿는다.

정확하게 기억하기론 중학교 때부터 우울증이 심각했다. 지금에 와서 말하자면, 그때 정말 심각했구나, 할 수 있다. 물론 루인의 경험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대체로 이런 검사표들에 따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럼, 그런 시기들에 검사를 하면 100점이 나올까? 아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안다(고 착각한다). 그 시절들에 쓴 일기는 다시 읽고 싶지도 않고 읽을 수도 없다. (지금 깨달았는데 그 시절엔 어쩌면 조울증이었는지도 모른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은 지금의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Nina Nastasia는 언제나 위로이다.)

아침이다. 아침이라 그렇다. 우울증이 아침에 더 심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뿐, 별거 아니다.

개강, 논문.

바쁘게 지내려고 하면 바쁠 수도 있고 그런 시간 속에서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결코 떠날 수 없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떠날 수도 있다.

이제는 쓰지 않지만 한땐 글 쓰는 걸 좋아했다. 뭐든 끄적이며 글을 쓰던 시절. 하지만 그렇게 쓴 글들이 담겨있는 노트가 고3 때만은 부재하는데 그때는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느냐 만은 수능을 볼 때까진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정말 그랬다. 다시 글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루인으로선 별스런 일은 아니다.

카페인 중독이라 커피를 마시면 하루에 10잔 정도를 마시지만 그만 마셔야겠다고 다짐하면 그 날로 단 한 잔도 안 마신다. 평소에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이지만 단 한 번 화를 내면 그걸로 끝이다. 즉 정말 화가 나면 상대방을 다시는 안 보기 때문에 상대방은 루인이 화가 났는지 조차 알 수 없겠지만, 때로 그 이유도 알 수 없겠지만, 그렇게 단절하면 세상엔 그런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이런 식으로 글을 적으면 마치 더 이상 [Run To 루인]에 글을 쓰지 않기 위한 사전포석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 없다. 이곳을 떠나다니.

지난주에 개강했지만 학점교환으로 다른 학교에서도 수업을 듣다보니 오늘에서야 비로소 개강을 완료한 느낌이다. 개강을 완료하다?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두 과목의 강의계획서를 받고난 느낌은 이번 학기도 신나겠다는 것. 사실 이번 학기엔 세 과목 듣는다. 강의계획서가 따로 없는 개인연구가 그 하나.

지난 주 지도교수를 찾아갔을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간에 휴학하지 않고 4학기 만에 이수하지 않을 거면 찾아도 오지 마라.

이건 거의 협박이었다. 루인은 일 년 정도 휴학해서 참고문헌 읽으며 논문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선생님은 그러지 말고 4학기에 끝내라고 하셨다. 시간을 끌수록 우울증에 걸리고 긴장이 떨어지고. 하지만 무엇 보다고 주제를 좁히고 너무 완벽하게 가지 말라는 의미이다.

선생님이 대충하시는 성격이냐면 전혀 아니다. 학생들이 선생님 수업을 안 들으려고 할 정도로 엄격하고 꼼꼼하신 분이다. 그리고 그런 분에게서 4학기에 끝내란 말이 나왔다. 그러니까 제대로 쓰면서도 석사학위 논문이니까 박사학위 논문을 염두에 두지 말고 쓰라는 의미다. 흑. 어렵다. 이런 말은 비단 지도교수에게만 들은 말이 아니라 루인과 논문 관련 얘기를 나눈 거의 모든 선생님들에게서 들은 말이다. 박사학위가 아니다. 석사학위다.

맞다. 루인은 “석사학위네”란 말을 듣지 않는 글,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을 품고 있다. 그냥 가능성만 말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은 욕심. 선생님들은 이런 욕심이 결국 더 나아갈 수 없게 하는 방해물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하시는 말이고 루인은 이 안에서 더 나가려고 욕심을 부리고 있다.

아, 떠오른다. 면담하던 날 선생님이 하신 말씀: 나는 자꾸만 나아가라고 재촉할 테니 루인은 그 안에서 더 완벽하려고 노력해라.

이번 학기엔 논문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하기로 했다. 2학기인데 논문 준비 중이다. 뭔가 웃기고 이상하다. 원래는 졸업하고 1~2년 지나서 완성할 계획이었는데. 이러다 정말 입학하고 휴학 없이 4학기 만에 쓸 분위기다. 하지만 어떻게든 한 학기 휴학을 제안할 예정. 책 읽을 시간은 줘야하지 않느냐고!!! 책을 읽어야 논문을 쓰지 않느냐고. 학기 중에 읽는 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고.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