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여이연 세미나가 끝나면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오산. 오히려 더 바쁘다. 아니다. 바쁜 건 아니다. 그저 두 가지 일을 더 하기로 했다.

정확한 명칭을 밝힐 수 없는, 실태조사팀에 들어갔고 발족준비위에 들어갔다. 현재의 여유 없음은 실태조사팀으로 기인한다.

녹취를 풀고 있는데, 그게 힘들다. 녹취 푸는 작업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그 내용들이 자꾸만 회피하고 싶게끔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루인의 목소리도 아니다. 하지만 이 겹침과 간극의 긴장이 녹취 푸는 작업을 하다가도 다른 곳으로의 회피를 종용한다.

당분간은 이럴 것 같다.

각설탕: 울 준비는 되어 있다

[각설탕] 2006.08.12.토, 아트레온 09:00, 4관 7층 F-5

※스포일러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어쨌든 그 비슷한 건 마지막 부분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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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소설 중에 정확하진 않지만(=인터넷을 하고 있지만 검색하기 귀찮다는 얘기다, 검색하기 귀찮다는 말은 쓰고 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란 소설이 있다. 이 말을 떠올리며 살고 있다. 뭐든 울음을 자극할 만한 것만 접하면 눈물이 나오는 상태. 울증인지도 모르지만 작은 자극에도 눈물이 고이는 요즘이다.

[각설탕] 광고를 접했을 때, 그래 이 영화를 읽으며 실컷 울어야지 했다. 얼마 전 [오로라 공주]를 읽으며 펑펑 울었듯, 이 영화를 읽다보면 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울 기회만 찾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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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길, 극장 밖은 너무 밝았고(아트레온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알 듯) 눈이 부셨다.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했고 서로의 얼굴 쳐다보는 일을 꺼렸다. 마치 암묵적 합의라도 한 것 마냥, 서로 예의라도 지키는 것 마냥, 얼굴 특히 눈을 바라보길 회피했다.

다들 눈이 부어있었으리라… 화장이라도 했다면 낭패였을 상황.

이 영화는 그저 흔한 얘기를 통해 감동을 주는 “감동영화”일 뿐이다. 그리고 루인은 이 영화를 다시 즐기고 싶은 바람을 품고 있다. 아, 정말이지 12시 세미나를 앞두고 아침 조조에서 눈물 잔뜩 쏟고 가는 기분이라니. 정말 최고라니까.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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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예상치도 않았지만, 이 영화에서 양성차별을 다루는 지점이 있는데, 시은을 홍보포스터 모델로 사용하는 장면은 거의 압권. 물론 감독은 이를 양성(혹은 젠더)의 측면에서 다루기보다는 그저 시은의 성공에 따르는 고난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런 측면을 명확하게 다루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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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도 연기를 잘하지만 시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김유정과 천둥이도 정말 연기 잘한다. 임수정을 중심으로 한 연기가 아니라 임수정과 천둥이 둘이서 엮어가는 두 명의 중요 배우가 나온다는 것이 정확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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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관련 기사 두 개 링크
[기획] 당신이 모르는 <각설탕>에 대한 몇 가지 알짜정보
[포토] 사진으로 보는 <각설탕>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를 읽다보면 종종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두 번째 기사에 나오는 어린 시절의 천둥이가 조는 장면. 시은이 속상해하며 얘기를 하는데 천둥은 코를 골며 자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 놀랄 정도의 연기라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 진짜 잠들어서 급하게 콘티를 바꾼 것이란다. 흐흐.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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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영상과 관련 뉴스, 그리고 리플만 읽어도 다시 울음이 난다.

다세포 소녀: 아쉬운

[다세포 소녀] 2006.08.11.금. 아트레온 09:00, 3관 5층 G-17

첨엔 별 기대가 없이 만화를 접했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다세포소녀]란 만화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한 번 볼까,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의외로 재밌을 법한 지점들을 발견했다. 크로스드레스가 나오고 트랜스/젠더가 나오고 이반/퀴어가 능청스레 나오는 만화라니. 물론 설정이 모호한 지점들이 있고 불편한 지점들도 있지만 바로 그런 측면에서 흥미로운 지점들도 있었다.

보고 나면 남는 느낌들. 종종 재밌고 종종 지루하고 전체적으론 뭔가 미진한 느낌이랄까.

감독이 너무 소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화에서의 그것만큼은 아니어도 감독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나갔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텐데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머뭇거리다 주저앉는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매력은 여기서 떨어진다. 영화를 읽는 내내 든 느낌은 조금만 더 나갔으면 끝내주는 컬트영화가 되었을 텐데, 였다. 감독은 “소수의 팬들이 열광하는 그런 마니아적 영화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루인은 차라리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 재밌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코드들이 소수의 마니아적 성향이라는 인식 자체가 감독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아쉬운 점은 만화에선 꽤나 비중 있게 나오는 두눈박이가 영화에선 비중이 너무 적다는 점. 그 많은 사람들 치고는 많을지도 모르지만 루인은 안소니와의 관계를 좀 더 보여주길 바랐고 두눈박이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고 난 이후 어떻게 갈등하는지를 좀더 읽고 싶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 영화에서 최고의 캐릭터는 왕칼언니가 아닐까? 흐흐. 열광해요~~ 꺄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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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를 읽고 나서 갈등했다. 심심찮게 드러나는 불편함과 그 불편함이 묘하게 재밌기도 한 지점. 그러다 다시 든 갈등은 이렇게 과잉이 넘쳐나는 영화에서 어떤 해석방식이 가능할까, 였다. 트랜스인 두눈박이를 설명하는 장면 중 하나에서는, 트랜스를 좀 아는 것 같은 느낌과 꽤나 무지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왜 이렇게 과잉으로 재현하는 영화에서 이런 갈등을 해야 할까 하는 또 다른 고민을 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은 유보적이다. 하지만 한 번쯤 봐도 재밌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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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예쁘다. 너무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