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더위, 우울

더위가 밀려오면 몸이 느슨해진다. 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더위를 잘 견디고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추위를 잘 견딘다는 말을 들은 흔적이 몸에 있다. 하지만 루인은, 루인의 주변 사람들은 그 반대다. 겨울에 태어난 사람들은 추위에 약하고 여름에 태어난 사람들은 더위에 약하고. 더위에도 약하지만 루인이 경험하는 우울증의 상당 시간은 여름이었다. 지금에야 그 시절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구나, 했던 중학생 시절의 첫 우울증도 여름이었고 대체로 여름이 겨울보다 더 심했던 것 같다.

지난 주 들은 “처음 만나는 정신분석2” 강의 내용 몇 가지를 떠올린다. 연애는 부모와의 관계를 반복하는 것이라는 말, 우울증은 대상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고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한, 그 대상을 상실해서 대상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자기 학대에 가깝다는 말.

그렇다면, 루인은 왜 루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루인도 관심이 없고 연애란 감정을 감지할 수 있는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도 관심이 없는 걸까. 이른바 우정이라고 말하는 정도의 감정, 물론 친구들마다 나누는 감정의 정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언제나 그 어느 선을 아슬 하게 타고 노는 경향이 있다. 루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괜히 감정을 줬다가 거절당할까 두려워서 무관심한 걸까. 아니면 루인도 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어릴 때 부모와는 어떤 관계를 가진 걸까. 어떤 관계가 이런 식으로 일정 이상의 감정에서 도망치도록 하는 걸까. (하지만 꼭 부모 탓일까. 프로이트는 중산층’이성애'”정상”가족의 모델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런 설명에 따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틀 중의 하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재밌기는 하다.)

혹은, 재미있게도, 각별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닮아 있다. 한글 자음이니셜은 순서만 조금씩 다를 뿐 완전히 똑같다. 예전에 읽은 한 책에선 유전자의 60% 정도가 개인을 결정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런 것도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걸까. 유전자 모양이 이런 자음처럼 생긴 걸까. 혹은 상실한 후 충분히 애도하지 않아서 루인과 동일시한 그 이름이 아직도 예민한 촉수로 감각하는 걸까.

며칠 전부터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감정이 떨어지면서 우울해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정도인 걸 봐선 아직은 무난하게 견딜 만 한가보다. 하지만 요즘 듣고 있는 여이연 강좌는 “안티고네와 주이상스”고 주디스 버틀러를 하다보니 우울증이 자주 등장한다. 우울증은 대상의 상실로 인해 왜 우울한지 조차 알 수 없는 것. 괜찮은 의사를 소개 받아 약물치료라도 받을까 하는 갈등을 살짝 했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제라는 것은 사실 상 감정을 느낄 수 없게 하는 것. 우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도 기쁨도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게 하는 것. 그렇다면 무엇을 치료하는 것일까? 하긴,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웃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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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조안 W. 스콧 – 젠더와 정치에 대한 몇 가지 성찰

제목: “젠더와 정치에 대한 몇 가지 성찰” [여성과 사회] 13호
저자: 조안 W 스콧Joan W. Scott (배은경 옮김)
발행처: 서울: 창작과비평사
발행일: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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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인의 설명
: 스콧의 책 [Gender and the Politics of History]에 실린 글의 마지막 장을 번역한 글. 물론 좋은 번역이 아니라서 읽고 있으면 번역문을 번역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페미니즘에서 기존의 젠더 논의가 젠더 자체를 질문하기 보다는 젠더의 효과만을 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글이다. 즉, “남성”과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묻기 보다는 그것은 이미 있다고 두고 “남성과 여성은 어떻게 다른가?”와 같은 질문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젠더가 어떻게 역사적 과정에서 발명한 개념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꽤나 유용하고 재미있는 글이지만, 여전히 ‘이성애’-양성을 중심에 두고 있는 한계는 분명하다. 스콧은 젠더 자체를 질문하고 싶어 하지만 “남자”로 태어나면 반드시 “남성”이 되어야 하고 “여자”로 태어나면 반드시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가정 자체를 질문하진 않고 있다. 근대 이후 젠더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의미를 지녔는가 하는 지점을 질문하고 있을 뿐이다. 트랜스/젠더 논의와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계로 작동하는 건 바로 이 지점. 이런 한계는 참고문헌을 확인해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한계가 있긴 하지만 스콧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마구마구 들 정도로 재미있는 글이다.

친구에게 네일아트를 해주다

친구랑 점심을 먹으며, 차를 마시며 네일아트를 해줬다. 후후후. 예전에 한 번, 해달라는 말을 했었고 오늘 매니큐어 등을 챙겼고 어색한 아마추어 티를 풀풀 내며 해줬다.

헤헤. 즐거운 건, 친구가 좋아하고 손톱을 보면서 기뻐하는 표정 때문이다. 조금은 지쳐있는 친구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건, 루인이 더 즐거워지는 일이다. 완벽하게 몸에 들진 않지만(그러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받는 사람이 즐겁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잖아.

그러며 농담을 나눴다, 아예 이걸로 돈벌이를 할까? 하고. 흐흐. 홍대 앞을 지나다보면 길에서 작은 책상 같은 걸 펼쳐두고 목걸이나 귀걸이를 파는 것처럼. 흐흐. (이봐, 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