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권의 주간지를 샀었다. 매주 사고 있는 씨네21. 작년 말부터 정희진 선생님이 글을 쓰고 있어서 3주에 한 번 사다가 날짜 계산하기 귀찮아서 매주 사고 있다. 정희진 선생님 글이 있는 호가 아니면 만화 정도만 열심히 읽는 달까. 그런데 이번 호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란 칼럼에 실린 글의 주제가 대법원의 법적성별정정 관련한 내용이었다. 한겨레21도 샀다. 기사에 이번 성전환자의 법적성별정정과 관련한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간한국도 샀다. 일전에 적었듯 특집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대체로, 자신의 진보성을 과시하고 싶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매체마다 대법원의 성별정정 관련 판결에 관심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루인 좀 다른 바람이 있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고 여러 날이 지나서일까, 여성단체 혹은 페미니즘운동단체 몇 곳을 돌아다녔지만(한국의 모든 단체를 다 돌아다니기엔 귀찮아서;;;) 이와 관련한 성명서를 안 내고 있다는 점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제목처럼 섭섭함일까? ‘동성애’ 관련 단체를 돌아다녀도 비슷했다. 친구사이 정도만 환영성명서를 냈을 뿐이다. LGBT를 내걸고 있는 단체들 역시 관련 글은 안 보인다.
사실 이건 루인이 이들의 접점에 위치하기에 생기는 감정일 테다. 오직 트랜스에만 관심이 있다면 달랐겠지? 하지만 오직 트랜스로만 위치할 수 있을까?
여성단체 혹은 페미니즘운동단체에서 관련 논평이 없다는 점은, 사실 ‘동성애’단체에서 없는 것보다 더 섭섭한 감정을 느꼈다.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기대를 했던 것일까? 페미니즘이 전제하는 “여성”이 사실은 생물학적 “여성”(생물학적이란 표현 자체도 문제고 이런 구분도 문제지만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건 지금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빈약함으로 이런 이상한 표현을 빌릴 수밖에 없어서다)이지만, 그렇다면 ftm들의 상황은 관련 있는 것 아냐? 사회문화적인 “여성”이라면 mtf들 역시 관련 있는 것 아냐? 어느 쪽으로든 이번 법원 결정은 여성단체나 페미니즘운동단체와 관련 있는 사항임에도 침묵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관심을 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감정은 복잡하다. “모든 여성”이라고 말하면서도 언제나 특정 “여성”만을 말하는 방식에 불편함을 느낀다. “여성”은, 젠더/성별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고 말하면서도 생물학적 결정론을 동시에 주장하는 모순은 “운동전략”일지는 몰라도 그 전략으로 트랜스나 이반/퀴어,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들은 배제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많은 논쟁거리를 던짐에도 불구하고 이 침묵은 “여성”과는 상관없다는 의미를 함의하는 것일까?
‘동성애’ 혹은 이반단체의 대체적인 침묵도 마찬가지다. 모든 트랜스가 이반이나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크로스드레서/이성복장착용자의 상당수가 ‘이성애’자 이지만, 루인은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만 말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LGBT를 내거는 단체에서도 대체로 침묵하고 있다. 트랜스”여성”‘레즈비언'(혹은 ‘게이’나 ‘양성애’, S/M 등)이나 트랜스”남성”‘레즈비언'(혹은 ‘게이’나 ‘양성애’, S/M 등)은 배제한다는 의미일까.
그러니까, 배제하고 있다고 확언하거나 관심 없다고 단정 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왜 침묵하고 있는지 혹은 관련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침묵에 섭섭함이라고 단순히 말할 순 없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