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09.(일) 아트레온 20:20, 2관 3층 D-17 :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 어둠의 경로: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은유나 비유는 기본적으로 약속에 바탕하고 있다. 평화와 아무런 상관없는 비둘기지만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고 한때 빨간색은 “빨갱이” 곧 친북이나 북한을 상징했다. 이런 상징은 실재의 존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비유나 은유의 대상으로 자리하는 순간 고정적이고 언제나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 “배신감”을 느끼거나 당황한다.
유머도 마찬가지라서 공통의 합의 없인 웃기 힘들다. 외국 영화에서 나타나는 코미디를 한국에선 왜 웃는지 알 수 없는 경우는 그래서다. [노스 컨츄리]란 영화는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지만 그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직장 상사를 비웃으며 “호모”라고 ‘동성애’ 혐오/공포발화를 유머랍시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루인은 이 영화에 좋은 감정을 가지기 힘들다. 트랜스 영화인데 채식을 (계급의 맥락과 상관없이)비난하거나 이반/퀴어queer영화인데 트랜스혐오를 드러내거나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영화들을 좋은 감정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도 마찬가지다.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겠다고 한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반지의 제왕]을 보다 좋아하게 된 올랜도 블룸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에서였다. 그리고 [캐리비안의 해적]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조니 뎁이 아니라 올랜도 블룸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참 재미없다. 1편에서의 블룸은 너무 ‘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망자의 함]을 보기 위해 본 [블랙펄의 저주]는 딱히 누군가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더라도 재미있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그저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는다는 기분으로 예매했을 따름.
영화를 보며, 느낀 점은, 아시아 혹은 제 3세계를 야만, 원시, 미개로 그리는 것에의 불편함, 불쾌함과 ‘엉성한’ 스토리의 지루함이었다.
#이제부터 스포일러 가득할 듯.
부족들이 나오는 장면은 “미지의 아시아(혹은 아프리카) 종족”에 대한 서구제국주의 시선의 전형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식인 풍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없어도 되지만 그나마 가장 재밌게 하려고 만든 장면이며 보는 내내 불편했던 장면이다. 이런 시선은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오는 보너스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영화는 영국-동인도회사와 해적 간의 다툼을 인도/아시아에서 치루는, 인도/아시아를 대리전쟁터로 여기고 있으며 좀 오버해서(과도하게 오버해서) 해석하면 식민지제국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는 혐의를 드러낸다(이런 느낌은 이와 관련한 해석의 맥락이 있어서이다).
‘플라잉 더치맨’의 데비 존스의 모습과 그 배는,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에, 특히 데비 존스가 배에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순간적으로 다른 영화를 보고 있나 싶을 정도로 진부. 뭐, 이를 재현한 기술력을 칭찬하자면 그럴 수 있겠지만, 특수 분장이나 CG를 공부하지 않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기술력을 ‘당연시’하는 루인으로선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나냐가 아니라 기발함 혹은 이야기 전개를 더 중시하는 편이다. (전개가 엉성하더라도 기발함에 더 비중을 두는 편이기도 하고.) 이럴 때, 이 영화, 좀 지루했다. 올랜도 블룸 보다는 조니 뎁이 더 매력적으로 나오고 집시 캐릭터(이름이;;;;;;;;;;;;;;)가 괜찮았다.
어쩌면 단지 루인의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지루했을 지도 모른다. 이른바 (한국형)블록버스터라고 불리는 영화 중에 재미있다고 느낀 영화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청연]도 블록버스터라고 할 때, 비교하자면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쟁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