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지 않기

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
체육시간이었고 그날은 수업을 교실에서 했다. 아마 시험기간이 가까웠기에 그랬겠지. 그날 수업 시간에 선생은 조선조 양반들을 비판(비난?)하며 한 사례를 들었다. 조선 후기,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한 양반이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양반이 그 모습을 보고 한 말, “아랫것들한테 시킬 것이지.”

체육선생은 그 만큼 양반들의 인식이 막혀있었음을 비판/비난한다고 한 말이지만, 루인은 그 양반의 말에 감동 받았었다. ;;;;;;;;;;;;;;;;

몇 해 전, 사주카페에 갔을 때, 그 집 주인이 루인에게 해준 말: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자리에 계속 앉아 있으세요. 길에서 시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은 팔자네요.

혹자의 지적처럼 루인이 이 말을 좋아하고 루인의 사주팔자를 설명하는데 자주 인용하는 건, 몸에 들기 때문이다. 루인의 몸에 안 들었으면 벌써 무시하고 지웠겠지. 크크크.

어떤 사람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할 테고, 어떤 사람은 그냥 한 자리에 앉아서 노는 걸 좋아할 테다. 루인은 후자에 속하기에 외국 여행 가겠다고 모은 돈을 여이연 다락방으로 여행 가는데 쓰겠다고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루인의 외출은 한 나절이 안 걸리고 여행은 하루가 안 걸린다. 늦은 밤 기차를 타고 새벽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오 무렵엔 벌써 돌아오는 기차에 앉아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요즘의 키워드: 스팸덧글.
크크크

오늘도 [Run To 루인]에 접속하니 어김없이 사랑스러운-_-;; 스팸덧글이 1000여개가 달려 있네요. 방가방가~ (꾸에에에~~)

스팸덧글 정리를 21일 이후에 할 예정이에요. 21일이 기말논문 마감이라 그때까진 살짝 바쁠 것 같아요. 맨날 바쁘다고 하는데 진짜인지는 루인도 살짝 의심스러운 상황…이랄까;;;;;;; 왠지 바쁜 지금을 즐긴다고 해얄까… 큭큭. 뭐, 그 사이에도 글은 계속 쓰겠지만요. 아무튼 스팸덧글들 사이에 있을지도 모를 덧글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답글도 21일 이후에 쓸게요. 아, 최근에 쓴 글의 덧글엔 답글을 달았어요.

여이연 여름 강좌

비가 많이 오던 어제 오후, 학부시험기간이고 시험조교 일이 있어 나갔던 길에 여이연 강좌를 신청했다. 7개. 총 9개의 강좌를 개설했는데 2개를 제외하고 모두 듣는 셈이다. 하나를 더 들을까 갈등하고 있다.

지난 화요일 마지막 수업을 하고 뒷풀이 자리에 갔을 때,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게 여이연 여름 강좌에 가느냐고 얘길 꺼냈다. 그러다 루인은 7개 들을 예정이라고 했고, 반응은 방학시작하고 새로 수업 듣는 거야? 였다. 후후후. 대충 계산하면 거의 한 학기 수업분량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시간으로 따지면 한 학기 수업과 거의 일치하거나 살짝 넘는다.

예전에 지나가는 글로 8월에 일본에서 하는 썸머소닉페스티발에 가고 싶다고 쓴 적이 있다. 굳이 일본이 아니어도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기에 여행경비를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하하, 올 여름은 여이연으로 여행 간다. 후후후. (작년 여름에도 그랬다;;;)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에선 루인이 여성학을 공부한 시간이 가장 적을 것이다. 학기 수로 아직 5학기도 안 된 셈이다. 물론 이런 구분은 기존의 학제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별 의미를 못가진다. 루인의 경험으론 이른바 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똑똑했고 이른바 수업을 들었다고 말하며 자기는 좀 안다고 하는 사람 중에 (루인의 기준으로) 무식한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도 고작 5학기 밖에 안 배웠으니 무식하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 아니라 이 말의 맥락이 학생이란 직업을 가진 루인의 현재 위치 때문이다. 물론 여성학을 몇 학기 배웠느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텍스트와 어떻게 노느냐가 관건이지. (석사나 박사 과정이면 좀 똑똑하고 많이 알 거란 환상은, 작년 가을, 학부생일 때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며 산산이 깨졌다. 그 충격에 대학원 진학을 관둘까, 하는 고민을 일으킬 정도였다.)

강좌 신청했다면서 이런 얘기가 튀어나온 건, 루인의 늦됨을 말하고 싶어서다. 언제나 남들보다 늦고 뒤처지지만 그래도 이런 루인이 좋다. 늦고 오래 걸리지만 그 만큼 다른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사실 더 중요한 수확이라면, 나이 강박이 덜하다는 것. 어떤 사람은 자신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말을 한다. 이 나이에 아직 석사논문도 못쓰고 있다면서. 그 사람은 루인보다 늦게 태어났다. 그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뭘 서두르느냐고 말한다. 천천히 하면 되지. 나이 40이 넘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또 어떠냐고. 정희진 선생님은 서른 중반에 석사 논문을 쓰셨다고.

상당히 힘들 것을 예상하고 있고, 하고 싶은 다른 계획과 같이 하다보면 학기 중의 일정보다 더 빠듯하리란 걱정도 있지만, 7개 강좌를 선택한 것은, 그 모두가 듣고 싶어서기도 하고(사실 9개를 다 듣고 싶다) 루인의 늦은 성장을 위한 소중한 발판이 될 거란 믿음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 는 믿음. 아니다. 이런 믿음 같은 거 없었다. 그냥 하고 싶었다. 그 뿐이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다보면 어떻게 될 거란 INFP다운 착각에 젖어 있을 뿐.

아무튼, 신청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이연이었다. 루인이 7개 신청한 거 보고 긴급회의에 들어갔다고, 결정하길 3개 강좌 이상을 신청하면 할인해 준다고. 첫 강좌에 가서 돈을 받기로 했다. 책 사야지. 냐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