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 Supermassive Black Hole

믿을 수가 없어ㅠ_ㅠ
어떻게 이렇게 멋진 곡일 수가 있는 거지?
엉엉.

오랜만에 Muse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싱글 정보를 접했다. 오옷. 혹시나 무료 다운로드인가 했는데, 유료 결제더군. 카드가 없는 관계로 혹시나 하며 구글에서 검색했더니, 냐햐햐햐. ;;;;;;;;; 뭐, 나중에 국내반에 영국수입반으로도 살 테니 너무 뭐라지 말아요-_-;;

설레는 몸으로 약간의 망설임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플레이 했는데, 엉엉엉, 지금 무한반복 중.

이번 앨범 기대치 급상승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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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섹슈얼리티/이반queer 자료창고

어제, 여이연에서 한 박통의 콜로키움을 듣고, 트랜스/젠더/섹슈얼리티 아카이브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심지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선 지금의 루인에게 트랜스 아카이브가 특별히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이기에 학교 도서관을 통해 관련 정보에의 접근권이 용이한 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아카이브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조차 없었다. 아니, 아카이브가 뭔지도 몰랐다-_-;;; 진짜다. 요즘 기획 중인 행사가 있어서 여성문화예술기획의 아카이브란 곳에서 영화자료를 찾았지만 아카이브의 뜻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냥 자료목록을 올려두는 곳이려니, 할 뿐.

그런데 어제 콜로키움에서 박통은 자신이 속해있는 한국레즈비언권리연구소에 아직은 열지 않은 아카이브를 곧 열어서 사람들이 ‘레즈비언’관련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는 얘길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땐,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이 바람은 어제 잠들기 전부터 부풀어 올라 급기야 오늘은 도메인을 사고 서버를 사야지, 라는 쪽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자료의 정보만 올릴 것인지, PDF파일이면 자료도 올릴 것인지, 파일을 올린다면 분명 불법이 되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루인이라고 모든 자료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도서관이란 통로를 통해서 제한적인 수준만 접할 수 있지만 이 정도라도 어디야. 더구나 처음 트랜스/젠더/섹슈얼리티를 고민할 땐,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를 몰라 난감했었다. 다행히 두 편의 멋진 글이 있었기에 그 글의 저자들이 쓴 다른 글, 참고문헌으로 나온 글들을 찾아가며 읽을 수 있었지만,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항상 있다.

자료 접근도가 그나마 있다곤 해도 그렇다고 현재의 방식이 만족할 만 한 건 아니다. 매번 새로이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물론 한동안 혼자 노는 카페에 관련 자료를 모아두기도 했지만 이 일도 몇 달째 방치 중이다.

욕심은 PDF파일까지 업로드할 수 있는 그런 자료창고(“다락방”이란 이름도 괜찮을 것 같다, 트랜스다락방? 트랜스놀이방? 트랜스놀이터?)를 만드는 것. 물론 이럴 경우 용량의 문제도 문제려니와 저작권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자료 접근도가 제한적이란 점에서 어떤 자료가 있고 그 자료를 어느 사이트에 가면 유료로 결제하고 볼 수 있다고 적는 것도 좀 그렇다. 절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뭐, 결국 논문이나 책의 서지정보를 적는 수준에서 그치겠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사실 아쉬움을 품기엔 다른 일만으로도 만만치 않다. 자료가 상당히 많고 루인이 아는 건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뭐, 물론 논문 혹은 책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건, 루인의 해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서지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ctrl+c, ctrl+v 정도의 작업이긴 하지만(사실 이 작업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다), 분류의 문제가 있다. 어디까지를 트랜스 이론의 범주에 포함할 것인가의 문제. 루인의 배경이 페미니즘과 이반queer, 트랜스에 겹쳐있기 때문이다. 일테면 조안 스콧Joan W. Scott이란 사람의 글은 누가 읽어도 괜찮으며 트랜스 언어를 모색하며 많은 아이디어를 주기 때문에 지나치기 어렵지만 스콧은 페미니스트이다. 혹은 재니스 레이먼드라고 대표적인 트랜스혐오 페미니스트의 책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포함해야겠지?

이런 저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는 욕심을 품고 있다. 기말논문이 끝나면 일주일 정도 작정하고 매달리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하지만 예전에 홈페이지를 만들다 실패한 전력이 있으니 홈페이지론 못하겠고, 그렇다면 블로그로 만들까? 어차피 “분류”를 누르면 목록이 나타나니까, 괜찮을까? 그래도 게시판 형식으로 만들어야 할까? 으으. 이러다 그냥 조용히 지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공상과 기대와 망설임 속에서도 도메인을 검색하다 놀랬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도메인은 누구도 등록하지 않고 있지만, 그냥 찾아본 곳은, 으으으. (말을 못 잇고 있음.)

그냥 이런 부풀어 오르는 기대로 설레고 있지만, 정말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대형포털 사이트에 카페를 만들고 그곳을 이용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문제라면 이 경우 접근성이 훨씬 제한된다는 것. 하긴.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루인 블로그를 찾아주는 검색사이트에 엠파스나 네이버는 없다. 라이코스도 루인을 찾지만 네이버나 엠파스엔 없다. 이 말은 개인블로그로 했을 때, 구글이나 다음, 야후 등으론 찾아올 수 있어도 엠파스나 네이버로는 못 들어오고, 네이버카페로 했을 땐, 오직 네이버로만 검색해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뭐, 무슨 상관이람. 이것까지 고려하면 머리 아파요. 흐흐. ;;;;;;;;;;; 다만 이렇게 공개적인 자료실이 있어서 누구나 쉽게 자료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섹슈얼리티

어제, 바쁜 와중이었지만, 그래도 안 갈 수가 없었다. 주제도 주제거니와 오랜만에 여이연에 놀러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으면 여이연과 엄청 친한 것 같지만 그저 작년 여름, 겨울 강좌에 참가한 것이 전부. 하지만 여이연 사무실이란 공간이, 아늑한 다락방같이 편하고 몸에 들어서 괜히 친한 척 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큭큭. (여이연 책은 안 말하고 공간이 좋다고 말하는 이 엉뚱함이라니. 히히.)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 건, 어제 강의가 준 복잡한 감정들 때문이다. 한 편으론 너무너무 좋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아팠기 때문이다. 이 아픔도 복잡하다.

우선, 좋았던 일들. 사실 대체로 좋았기에 뭐가 두드러지게 더 좋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부러웠던 건,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 ‘레즈비언’이 쓴 ‘레즈비언’ 학위 논문이 있다는 것, 등등. 무엇보다 의견이 일치하든 안 하든 커뮤니티를 꾸리고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너무도. 그 부러움은 박통이, 트랜스젠더는 아직 커뮤니티가 없다는 말을 듣고 더 심해졌다. 아직 커뮤니티를 만들만큼 사람이 없는 걸까? 아니다. 사람은 많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건 사람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카페(인터넷 카페 말고)는 있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인 예전의 끼리끼리(지금의 한국레즈비언상담소)도 4명인가로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사람 수가 문제가 아니다. 계기의 문제이지.

1970년대 있었던 택시운전사면서 ‘레즈비언’들의 모임에서 트랜스가 있었다는 얘기는 놀라운 정보. 왜냐면 ‘레즈비언’ 단체/활동가들이 그 모임을 설명할 때면 항상 ‘레즈비언’ 모임이었다고만 쓰지 트랜스가 있었다는 얘긴 안 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해석에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은 루인의 바보 같음이 드러난 순간이기도.

지겨움의 문제도 몸에 팍팍 와 닿는 얘기였다. ‘레즈비언’ 관련 글을 청탁 받을 때면 종종 “레즈비언의 이중 억압”을 쓰게 될 때가 있다고 한다. 사실, 쓰는 사람의 입장에선 ‘지겹다.’ 다른 할 얘기 얼마나 많은데, 언젯적 논의를 지금 또 청탁 하냐고. (제발 직접 찾아서 공부 좀 하라고!!!) 그런데 아는 사람(‘이성애’자)이 그 글을 읽고, 아직도 “이중 억압”과 관련한 글을 쓰느냐고, 지겹다고 말했다고 한다. 발끈. 물론 글을 쓰는 당사자도 ‘지겹지만’ 당사자의 지겨움과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지겨움은 다른 내용이다. (루인의 경우) 세미나를 할 때면, 몇 주 전 혹은 바로 전 주에 한 얘기를 다시 할 때가 있다. 트랜스나 이반queer 얘기일 때, 특히 그렇다. 가장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용어얘기만 몇 번인가를 말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모른다.’ 하지만 지겨워한다. 며칠 전, 석사학위 논문을 트랜스/젠더/섹슈얼리티/이반으로 할 것 같다고 중얼거리며, 하지만 용어 설명으로 글을 시작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국내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관련 학위 논문은 두 편 혹은 세 편 가량(제목 검색으론 더 나오지만 루인의 기준으로는 두 세 편정도). 하지만 이 논문들 모두 트랜스젠더란 무엇인가, 원인은, 등등의 ‘지겨운’ 얘기로 시작하고 있다. 사실 더 놀라운 건, 논문 제목은 분명 트랜스젠더인데 참고문헌에 트랜스 이론 논문이나 책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거의 유일한 트랜스젠더 참고문헌은 김비의 책과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트랜스관련 설명글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야 하는 거, 지겹지만 동시에 안 할 수도 없다. 혼자 있을 때조차 젠더를 경험하거니와 몇 년 혹은 몇 십 년을 반복해서 얘기해도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또 같은 얘기 안 할 수가 있겠느냐고. 그래서 상대방의 “지겹다”는 얘기는 분노를 일게 한다. 당사자의 ‘지겨움’과 주변 사람들의 지겨움은 그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

아픔은 복잡하게 찾아왔다.

얘기를 하는 와중에, 자기혐오 얘기를 했다. 한 20년은 “레즈비언”으로 살았다고 추측하는데, 그럼에도 ‘레즈비언’들이 미팅을 할 예정이란 식의 얘기는 못 듣는다는 말, 아직도 (루인식으로 표현하면) 자기혐오가 있다는 말에 아팠다. 루인 역시 자기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을 했음에도 트랜스 얘길 할 때면 많이 망설이고 머뭇거린다. 특히 전공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는 얘기가 나올 때면, 더 심해진다. 이런 지점들이 있다(이 지점은 [메종 드 히미코]에서 끝내주게 그리고 있다). 이른바 “호모포비아”와는 다른 자기혐오. 그 혐오를 매일 같이 경험하고 있기에 아프게 다가왔다.

이와는 다른 아픔이 있었다. 이른바 ‘레즈비언’ 페미니즘과 트랜스 사이의 갈등. 아니 갈등이라기보다는 몇몇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이 보여준 트랜스 혐오 발언들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지. 본인은 트랜스포비아가 아니라고 했지만 루인은 의심하고 있다. 박통은 한채윤씨를 제외하면 한국 ‘레즈비언’ 중 자기보다 트랜스젠더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MTF든 FTM이든 트랜스들과 상담을 자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상담을 자주 하고 잘 하는 것과 포비아가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본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양성애나 트랜스젠더를 “침입자”로 간주하는 마지막 발언은 아팠다. 불편했다. 그러며 기대한다. 나중에 박통이 바라는 공동체를 꾸리고 루인이 석사학위 논문을 트랜스/젠더로 쓰고, 어떻게 트랜스 커뮤니티가 생겼을 때, 신나는 논쟁이 생기길.

이런 바람이 헛되리라 몸앓지 않는다. 박통은 한국에선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 사이의 갈등이 없고 그건 미국에서의 일이라고 했지만, 루인은 어제 바로 그런 말을 하는 자리에서 갈등을 느꼈다. 한국에 ‘레즈비언’과 트랜스 사이의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트랜스들의 커뮤니티가 ‘부족’하기에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대체로 즐거운 자리였다. 단, 여성철학을 공부한다는 질문자, 매우 싫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자기 멋대로 재단하는 권력이라니. 자기가 바라는 식으로 짜 맞추려는 폭력이라니. 그 사람은 너무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