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생활이 힘들지는 않다. 힘들다고? 아니, 오히려 즐겁고 너무 좋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말, 맞다. 종종 이 말은 어쩔 수 없는 ‘진리’라고 느낀다.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너무 많아도 즐길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말, 좋은 말이다. 만약 별로 안 좋아하는 텍스트와 놀아야 한다거나 별로 안 좋아하는 일을 이렇게 징징거릴 정도로 바쁘게 해야 하는데도, 즐거울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루인은 언제나 하고 싶은 일만 하는 편이다. 학부 때 수학과를 선택한 것도 그것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지 누군가 권해서가 아니었다. 수학 담당이었던 고3 담임도 말렸지만, ‘이성애’혈연가족의 부모들도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선택했고 그래서 중간에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운 배움이었다고 느끼고 있다. 루인에게 수학을 배운 배경은 너무도 중요한 바탕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쁘다고 징징거리지만, 즐겁다. 재밌다. 핵심은 이것. 쾌락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다. 아마 쾌락을 느끼지 않았다면 이런 생활방식을 엮어가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냥 수업교제는 읽는 둥 마는 둥 하지 않았을까.
#
이런 생활 와중에 재밌는 걸 깨달았다. 수업 시간에 발화를 한다는 것과 수업 사람들과 친밀함을 느낀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
두 개의 수업을 듣고 있는데, 한 수업 시간엔 아무 말도 안 하는 편이다. 선생님이 시키면 간신히 말할까, 그냥 침묵. 하지만 그 수업은 재밌고 그 수업 사람들과도 친밀함을 느끼며 지낸다. 다른 학교에서 듣고 있는 수업이다. 반면 (루인의 입장으론) 꽤나 많은 발화를 한다고 느끼는 다른 수업에선 수업은 재밌지만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는 별다른 친밀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 서먹함을 느낄 정도다. 현재 등록금을 내고 있는 학교에서 듣는 수업이다.
이 차이는 여러 이유로 생겼을 테다. 친밀함을 느끼는 수업은, 조모임을 몇 번 했고, 수업 사람들과 저녁을 여러 번 먹었고 등등. 못 느끼는 수업은 그저 수업 시간에 접하는 것이 전부. 세미나든 수업이든 그것만으로 친밀감을 형성하는 건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단순히 오프라인의 모임이 친밀감을 형성하는 핵심인건 아니다.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루인에게의 핵심은 이것이다. 친밀함을 느끼는 수업은 커밍아웃을 했고, 그래서 종종 이런 얘기를 하고, 못 느끼는 수업은 안 했고, 공공연한 혹은 “세련된” 젠더혐오/공포 발언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