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12.17:00 아트레온 4관, 1층 K-5 [필름 인사이드 특별 강연]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수업이 아니었다면 이 강연은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화요일 수업을 휴강하는 대신 이 강연을 듣기로 했고 선생님께서 표를 끊어 주셨다.
이 강연의 재밌는 점은, 비디오카메라가 페미니즘 운동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 1960년대 당시, 페미니즘 사상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영화가 좋을 거라고 했지만 영화를 제작한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들고 다닐 수 있는 비디오카메라가 나왔고 이를 통해 비디오카메라만 있으면 언제든지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발표자인, 프랑스에 있는 시몬느 드 보브와르 영상센터의 니꼴 페르난데 페레Nicole Fernandez Ferrer는 농담으로 비디오카메라의 개발이 페미니즘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다. 물론 1960년대 1970년대 당시 찍은 다큐멘터리는 세련된 형식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말하면 그걸 그대로 찍는 정도. 다큐멘터리하면 떠올리는 나레이션이라던가 어떤 설명 같은 것도 없이 그냥 누군가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재미있는 내용도 많다.
일테면, ‘동성애’ 차별 반대 운동을 하는 시위 현장을 찍으며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담은 부분을 보여주는데, 그 사람들의 반응이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다. “동성애는 인간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다”, “교육이 문제다”, “유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동성애를 허용하면 안 된다”, (왜냐고 물으니)”그냥 좀 이상하다” 등등. 1970년대라는 설명만 하지 않는다면 2006년을 살고 있는 한국이라고 해도 믿을 법 하다. 피임과 낙태 허용을 요구하는 시위는 사실, “급진적”이라고 느꼈는데, 지금의 한국에서 이런 시위가 가능할까? 물론 1970년대의 프랑스와 2006년의 한국을 동일한 위치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고 운동의 방법이 많이 바뀐 상황에서 피임과 낙태 허용을 요구하는 가두시위가 없다고 해서 지금의 운동 방식이나 사회가 더 보수적이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혹은 그래서)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런 운동은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이 일어난 초기였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운동은 항상 초기에 가장 “급진”적이다.
(“급진”적이란 표현을, 별로 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때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데, 사용의 맥락 때문이다. 보통 “넌 너무 급진적이야”란 말은 “너무 극단적이야”란 말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곤 하는데 이런 말들은 맞는 것 같거나 틀렸다고 하기엔 왠지 자신이 “보수”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이기엔 싫을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거슬리는 목소리를 배제하기 위한 ‘세련’된 방식일 뿐이다. “급진”이나 “극단”의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통한 1970년대 프랑스의 페미니즘 운동의 변화상을 짚고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인 강의였다. 다만 때로 2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의 내용 중 1~2분 정도만을 보여줬는데, 왜 그 부분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그저 궁금함으로 아쉬움으로 남기며 자리를 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