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걸즈: 실망과는 다른 만족감

피곤했다.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약속한 분이 사주는 것이었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나면 아무리 즐거운 사람이라도 헤어진 후엔 피곤함을 느낀다. 그런 피곤함이었다. 그래서 그냥 玄牝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하지만 루인이 가려고 한 극장에선 마지막 상영이었기에 보기로 했다. 표를 끊고 상영까지 한 시간도 더 남았다.

극장으로 들어가, 쉴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까 어쩔까 조금 망설였다. 책상처럼 앉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책을 폈지만 피곤함에 책이 잘 읽힐지는 자신 없었다.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었다. 영어 번역본과 한국어 번역본을 모두 펼치고 읽다가 신경질이 나서 한국어 번역본을 덮었다. 번역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영어 번역본은 잘 한 걸까? 그럼에도 영어 번역본을 선택한 건, 영어일 때 더 재미있는 해석이 가능한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나게 글을 읽다 보니 어느새 입장 시간이 다가왔다.

[스윙걸즈] 2006.03.29(수). 21시 40분.
※스포일러 없음!

이 영화에 엄청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극장에서 접하는 홍보용 필름이 너무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팜플릿을 챙겨 읽으면서도 너무너무 기대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늦은 시간에 영화관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 기대였다. 그리고 기대는 너무 높았다. 그래서 실망했다.

그랬다. 실망스러웠다. 솔직히 홍보용 필름에서 보여주는 내용이 영화 스토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야기만 따지만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기대가 너무 컸다는 것이 중요하다. 실망은 기대가 있을 때 생기는 법. 만약 별다른 정보 없이 별다른 기대 없이 이 영화를 즐겼다면 너무너무 만족스럽다는 얘기를 했겠지.

이런 묘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재밌었고, 묘한 만족감과 깔깔 웃는 와중에 피곤함은 싹 가셨다. 스윙걸즈 밴드의 유일한 ‘남성’인 나카무라의 등장이 좀 짜증나고 거슬렸지만(불편한 지점이 있다) 그래도 좋았다. 음악은 유쾌하고 영화는 (연기의 어색함이 종종 거슬렸지만) 즐거웠다. 말도 안 되는 만화적 구성도 재밌었다. 아니다. 이런 말들은 단지 불필요한 부연설명일 뿐이다.

또 즐기고 싶다.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면도칼, 자해, 왼쪽 귀 그리고 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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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여러 해 전, 면도칼을 목걸이 삼아 걸고 다닌 적이 있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옷 속에 숨겨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면도칼의 까칠하고 차가운 느낌이 몸에 닿으면 역설적이겠지만 오히려 온 몸을 뚫고 나올 것 같은 가시 같은 날들이 조금은 무뎌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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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열 명 정도의 깡패나 “적”에게 둘러싸여 있고 손에 칼이 있으면 누군가를 위협하며 방어를 하기 마련이다. 물론 아무리 칼이 있다고 해도 혼자선 이길 수가 없다.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고 히죽, 웃으며 팔뚝을 긋고 뿜어 나오는 피를 혀끝으로 살짝 맛보는 행동. 실은 이런 행동이 더 위협적이다.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없어 자신을 가해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들은 이런 장면을 통해 더 큰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가해할 수 있다면 상대방은 더 아무렇게 가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자해는 자아도취(자뻑)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고 타인을 공격하지 못하는 내사introjection가 타인이 아닌 자신을 공격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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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현기증과 메스꺼움을 느꼈다. 아프지는 않았다. 아니 아무런 느낌이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현기증과 메스꺼움을 느꼈다. 가게를 나선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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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인은 양쪽 귀의 청력이 다르다. 전화를 받으면 왼쪽으로 받고 음악을 한쪽 귀로만 들어야 할 상황이면 왼쪽귀로만 듣는다. 왼쪽의 청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오른쪽의 청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아마도 대여섯 살 정도로 기억하는 나이 즈음, 오토바이에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다. 이성애혈연가족이 모두 있었지만 모두들 절묘하게 피해서 루인에게로 부딪혔다. 앗싸! 요즘 같으면 병원으로 간다, 보험금 받는다 하겠지만, 당시 부모님은 오토바이 운전자를 그냥 돌려보냈다. 루인만 혼났다. 제대로 안 보고 다닌다고. 크크크. 그렇게 교통사고는 잊혀질 뻔 했는데 그러질 않았다. 이후 초등학생 6학년이 끝날 때까지 그 사건의 흔적은 몸에 남아 있었다. 오른쪽 귀에 핏덩어리가 굳어서 돌처럼 들어 있었다. 이성애혈연가족들은 루인의 귀에 이런 이상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사건이 나고도 7, 8년이 지나서야 병원에 갔다. 큭큭. 병원에 가서야 알았다. 핏덩어리가 굳어서 돌덩어리처럼 들어있다는 걸.

소리에 민감한 루인에게 왼쪽 귀는 너무도 소중하다. 좀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귀이기 때문이다. 왼쪽 귀를 막으면 오른쪽 귀만으론 잘 못 듣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론 지금까지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는 셈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원했다. 왼쪽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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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지고 싶어서, 신나려고 귀를 뚫었는데 玄牝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몸앓이를 했다. 이런 흔적들이 떠올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많이 어지럽다.

신나는 언어 강의

어제, 수업이 끝나고 신나는 몸으로 연대로 향했다. 입금을 하고도 갈 수 있을지 애매했는데 다행이었다. 이히히. 앞 쪽에 자리를 잡고 정희진 선생님이 오길 기다렸다. 두근두근, 긴장해서 화장실엘 몇 번이고 가고 싶었지만 참으며 기다렸다.

“거짓말=말(언어)”라는 인식에서 시작하는 강의는 시작부터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위치(시간과 공간이 교차하고 문화적 맥락이 교직하는)에 따라 언어의 내용이 달라지기에 모든 언어는 번역이며 원본이 없다는 말은 몸에 팍팍, 와 닿았다. 자신을 어떤 언어로 설명할 것이며 누구의 의미로 해석할 것인가가 루인이 고민하는 중요한 지점이기에 자신의 언어로 말 할 수 있길 바란다는 말은 상당한 “위로”였고. 선생님의 표현처럼, 고통은 그것을 설명할 언어가 없고 혼자만이 겪는 그래서 피해경험자임에도 가해자로, 원인 제공자로 느끼는 상황일 때 발생하는 것.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발화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다는 건 자원/힘이며 권력이 되기도 한다.

다른 많은 내용이 매혹이었지만, 특히 “섹시한 언어”라는 표현이 너무 좋았다. 루인이 에로틱(이라릭? 크크)한 자극을 줘, 라는 말로 변태할 수 있는 자극을 표현한다면 선생님은 “섹시한”으로 표현했다. 크크. 감정이 곧 정치이며 에로틱한 자극이야 말로 감정을 일으키는 발로이기에 루인이 좋아하는 표현들이다. 그래서 어제 강의는 정말 에로틱(이라릭? 크크: 어제 강좌 들은 분은 알 듯)했고 섹시했다.

쓰고 싶은 말은 넘치지만, 시간이 애매해서, 여기까지.
(참, 끝나고 사람들이 사인을 받기에 덤으로 루인도 받았다. 강의를 하고 피곤하실까봐 망설였는데 사람들이 여러 명 받고 있어서 그냥 그 줄에 끼어들었다. 이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