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즐거운 그리고 신나는: 루인에게 쓰는 편지

두어 달 전에 이곳에 쓴 글을 이랑블로그에도 올린다고 수정했다. 대략 두 달도 더 걸렸는데, 게을러서다.

어째서 커밍아웃의 즐거움보다 두려움을 먼저 배운 걸까, 하는 몸앓이를 하곤 한다. 루인만 이럴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간 접한 책이나 글 중엔, 커밍아웃의 즐거움,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커밍아웃을 한 이후 겪은 아웃팅이나,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 혹은 혐오증으로 인해 커밍아웃을 못하고 숨기고 산다는 얘기들이 많다. 특정 누군가에게만 커밍아웃을 했는데, 하지도 않은 혹은 하기 싫었던 사람들도 알고는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봤다는 사례. 회사나 단체에서 일하는데 커밍아웃 혹은 아웃팅으로 쫓겨났다는 사례. 가끔씩은 아웃팅을 협박하며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신문에 나기도 한다(이런 기사의 리플은 숨을 멈추고 읽는다). 커밍아웃을 고민하기 전부터 루인이 접한 정보는 이처럼 커밍아웃 이후의 부정적인 사례들이 대다수였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동성애’관련 기사의 절대 다수도 커밍아웃과 아웃팅의 피해사례나 공포와 관련한 것이다.

이런 루인은 무엇이 가장 두려웠을까. 루인에게 가장 힘들었던 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커밍아웃보다는 루인에게 하는 커밍아웃이었다. 루인은 루인에게 하는 커밍아웃이 가장 힘들었다. 왜? 예전에 한채윤씨가 “동성애는 서구에서 수입된 거라고 하지만 정말 수입된 건,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혐오증이다”라고 말해서 박수를 치며 좋아했던 흔적이 몸에 있다. 적어도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좋아하는 대상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 어느 쪽도 아니든 상관없었다. 그냥 좋아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연애가 허용되던 시절 이후(루인은 집이든 학교든 10대의 연애는 불량한 행동으로 간주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이성연애의 구조 속에 들어가면서 상대방의 젠더가 핵심이 되었다. “이성 친구 있니?”, “이성 친구 안 사귀니?” 등등의 이성연애를 정상규범으로 제도화하는 언설은 그렇지 않은 연애나 성정체성을 강제로 삭제하게끔 했다. 그리하여 이런 과거를 해석하는 일에 용기가 필요하고 잊혀진 과거를 발굴해야 했다. 10대들에게 이반이 “유행”이라는 식의 기사를 접하곤 하는데, “유행”이기 전에도 이런 감성은 풍부했다. 수입되었다면 수입된 건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간주하며 변태니 문란하니 하는 “동성애 혐오증”이다.

루인이 접한 글에서 아웃팅의 두려움이나 커밍아웃 이후의 부정적인 사례들이 많은 것은 이것과 관련 있을까. 혹은 (주류 언론의 경우) 이런 부정적인 사례를 유포함으로써 커밍아웃을 더욱더 힘들게 하거나 못하게 하려는 건 아닐까. 커밍아웃 이후 무조건 부정적인 일만 있는 것은 아닌데.

이건 루인이 주로 지내는 공간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니 루인의 이성애혈연가족들과 그 친족들은 [Run To 루인]을 모른다. 알리고 싶지도 않고(동거란 주제만으로 얼굴 표정을 바꾸며 경악하는 반응을 접한 적이 있다). 하지만 [Run To 루인]을 알면서 루인을 아는 사람에게라면 커밍아웃한 것이 오히려 ‘자유’롭고 훨씬 편하다.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고, 남의 이야기처럼 말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남의 사례인양 말하는 것만큼 불편하고 괴로운 일도 없다. 스스로를 기만하는 느낌이랄까. 루인의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들과 섹슈얼리티와 관련해서 얘기하며 남의 이야기인양 말하고 나면, 루인에 대한 불쾌함으로 며칠이고 앓는다. 말 할 수 없기에 숨겨야하지만 숨기기 때문에 그런 자신이 싫어지는 감정으로 분하고 화나고 억울하고 기분이 더러워지는 상태에 시달린다.

[Run To 루인]을 통해 커밍아웃을 한 후 가장 좋았던 건, 이런 “불편함”이 줄었다는 점이다. 모든 말하기는 협상하는 말하기이기에, 닿은 사람 모두에게 커밍아웃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소통하거나 공유하고자 한다면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이 현재의 감정이다. 이반queer이나 비’이성애’, 트랜스와 관련해서 글을 쓸 때, 커밍아웃을 한 상태에서 쓰는 것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쓰는 것은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 자기 삶을 남의 이야기처럼 쓴다는 것의 괴리, 글을 통해 들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 끊임없는 자기 검열 등에서 어느 정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은 커밍아웃만의 즐거움일 것이다. 아웃팅이 두렵다면 커밍아웃하는 것이 오히려 힘이 될 수 있다.

커밍아웃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커밍아웃을 해서 힘들었다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즐겁다는 얘기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커밍아웃을 하겠다, 안 하겠다가 아니라 커밍아웃 자체가 공포가 되지 않길 바라니까. 그래서 커밍아웃이 (얼마간의) 두려움 속에서도 좀더 즐겁고 행복한 일로 여겨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그러니까.

대학원생은 “학생”이 아니다

※자뻑이 좀 있으니 알아서 피하세요. -_-;;

어제, 오늘로 사실 상 대학원 첫 수업을 했다. 지난주엔 과목소개와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으니 이번 주가 사실 상 첫 수업인 샘이다.

많이 긴장했다. 대학원이기 때문이다. 학부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은 “학생”이 아니라고 몸앓는다. 초 중 고등학생이나 대학생과 같은 “학생”이 아니라 직업적 학생이라고. 그래서 직장에 다닌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어떤 의미에선 대학생도 “학생”은 아닐 것이다. “학생”은 교육제도나 주변의 강제적 분위기에 의해 억지로 다니는, 그래서 어린 애 취급당하는 학생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대학생도 “학생”이다. 고3이라는 말이 주는 각별한 의미와 수능시험 보는 날이 전 국민의 행사가 되는 상황에선 그렇다. 대학은 사회가 아니라고 간주하기에 취직을 해야만 비로소 사회생활을 한다고 말한다(이런 인식―대학은 사회가 아니라는 인식은 위험하다). 하지만 대학원생은 “학생”이 아니다.

물론, 현재의 경제적 상황(취업) 때문에 “임시방편”으로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학원은 “임시방편”이라기보다는 학업이라는 직장이라고 몸앓는다. 물론 이 직장은 월급을 받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매 학기 어마어마한 돈을 내고 다녀야 하고, 만족스럽지 않아도 청구할 수 없고 논다고 해서 성적만 나쁠 뿐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 직장이다.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루인 블로그에 와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테니까. 학부에서처럼 대충 설렁설렁 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공부라는 것이 직업이란 의미이다. 그래서 예전, 어느 게시판에서 읽은, full-time student(전업학생?)는 하루에 최소한 8시간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에 동감한다. 물론 루인은 전업학생이 아니지만 이것이 대충해도 된다는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조교는 전업학생에 준한다고 몸앓는다. 지금껏 한 알바 중에서 가장 “편하지”만 가장 적은 급여를 주기 때문이다. ←이유가 이상하게 들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바로 저 이유로 조교 알바는 사실 상 전업학생이게끔 한다.)

몇 해 전, “숨”과 얘기를 나누다 들은 얘기가 있다. 학부생이면 모르지만, 대학원생이 대충대충 공부하면, 그렇게 하려고 대학원에 들어갔느냐고, 그럴 거면 관두라고, 비판한다는. 그 말이 무섭게 남아있다. 물론 이 말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은 나태해 질만 하면 뒷골 오싹하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는 얘기다.

루인이 대학원에 들어간 것이 놀려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지식노동자로서 직장에 들어간다는 각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지식인이 아닌 지식노동자. 십 년 전에 낸 책 한 권으로 경력을 우려먹으며 대단한 권력이라도 있는 냥 착각하고 그런 권력으로 횡포를 부리는 지식인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앎으로 변태하는 것. 공부하지 않는 건, 회사에 취직해선 농땡이만 부리며 월급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이렇게 적으니 농땡이가 좋은데ㅋㅋㅋ-_-;;).

이런 다짐으로 시작한 대학원이기에 어제 첫 수업을 준비하며 많이 긴장했다. 혼자 무식하단 소리 들으면 어떡하지 하는 미련한 걱정부터 수업 때 한 마디도 못하고 쩔쩔매면 어쩌지 하는 걱정까지. 그런데 수업 첫 날인 어제, 선생님께서, 박사과정과 석사과정은 성적을 따로 낸다는 얘길 하셨다. 물론 전공마다도 구별한다고 했고(전공 특성상, 다른 전공과 연계해서 과목을 개설한다). 그 말이 너무도 큰 위로로 다가왔다. 그랬다. 어제 수업은 7명 중, 4명이 박사과정인데다 석사과정 3명 중 한 명은 3학기 생이니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나는 지점들이 있었다. 물론 박사과정이라고 반드시 석사보다 더 많이 안다거나 글을 더 잘 쓴다곤 할 수 없지만, 그간의 생활 속에서 몸에 더 익숙하고 그래서 좀더 능숙할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루인은 이 지점을 넘고 싶어 했다는 걸 깨달았다.

석사 1학기니까, 좀 못해도 괜찮아, 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고 박사과정들보다 못한다는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박사과정보다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음에도 박사와 대등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어제,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뭔가 위로 받는 느낌을 느끼며 루인의 욕심을 알았다.

자칫하면 잘난 척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지만, 학부 입학하고 6학기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쓴 소논문에 대해(5학기가 지나도록 레포트를 쓸 과목이 없었는데,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선생님은 대학원생 수준이라고 “칭찬”해주셨다. 루인은 이 말을 별로 안 좋게 떠올리는데 학부생들에 대한 학업 기대 수준이 그 만큼 낮았다는 의미인지, 대학원생들의 수준이 그 만큼 낮다는 의미인지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루인의 성적과 관련해서 얘기할 일이 있으면 학부 성적이야 시험 당일 컨디션이 좀 좋으면 잘 보는 거지 그걸 가지고 자랑하고 자시고 할 거 있냐는 식으로 말했다(최근 이런 말이 선생님들에게 상당한 실례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리고 루인은 간신히 3점을 넘겼다;;;). 다른 수업에선, 이미 신뢰하고 있던 몇 명과 함께 조 발표를 했는데, 그땐 선생님으로부터 자신이 지금껏 강사생활을 하며 가장 잘 쓴 발표문이라는 칭찬을 들었지만, 루인에겐 그냥 무덤덤하게 다가왔다. 고작 그 정도에 그런 말을 하시면, 절망적인 걸요. 하지만 다른 발표자들의 발표문과 문제제기를 읽으며 실망했던 기억도 간간히 있긴 하다. 그다지 신경 써서 들은 건 아니지만. 루인은 학부생들의 소논문/수업 발표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모르는데, 수업시간에 다른 사람들의 발표문에 관심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발표문에 흥미가 없는 건, 텍스트 해석일 경우, 다른 사람의 해석은 별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2차 문헌을 신뢰하지 않듯 루인이 직접 해석하지 않은 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은데 발표문을 참고해서 텍스트를 해석하거나 시험답안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욕심이 있기에 박사과정들과 대등하고 싶은 욕심을 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못한다는 얘긴 죽어도 듣기 싫은 건, 루인의 별자리 중 사자자리 특유의 자뻑 기질이 있어서라고 밖에 달리 더 할 말이 없다. (엉? 뜬금없이 왜 별자리로 빠져? 크크크) 오늘 듣는 화요일 수업에서, 갑작스레 담 주 발제를 맡게 되었다. 선생님이 무작위로 지명했고 수강 취소한 사람이 있어서 루인에게로 넘어왔다. 공동발제라 같이 하게 된 사람과 얘기를 하고 나서는 길에,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우면 자신에게 넘겨도 된다고 했다. 루인과 발제하게 된 사람과 그 사람은 아는 사이 같았다. 눈치로는 루인이 포기해도 될 분위기였지만 그냥 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한 학기에 두 번 이상할 발제라면 한국어 혹은 한국어 번역이 있는 논문을 하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타대생인 루인의 위치를 탐색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바보가 되는 방법은 너무 간단한데 누군가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침묵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가 배려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보가 될 뿐이다.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지 않으면, 피해나 불편을 감수하고 가만히 있으면 당연히 그래도 되는 냥 생각하기 마련이다. 배려심이 부족하다거나 폭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계가 아닌 지점에 대해선 누구나 무딜 수밖에 없다.

발제를 통해 그 수업에서 루인의 위치를 탐색하고 싶은 욕심, 다소 무리인 걸 알면서도 미루지 않고 하겠다고 한 이유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주는 글이 뜸할지도 모른다. 사실 대학원생이라는 직장인이 하루에 3시간 넘게 나스타샤(컴퓨터/인터넷)와 논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도메인 (+비공개 글)

작년부터 도메인을 살까 갈등하고 있다. 갈등한지 6개월도 더 되었으니 조만간에 결정할 것 같다. 크크.

고민은 현재, 블로그용과 자료실용으로 두 개의 계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의 만기일과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겹치면 생활비에 지장이 크니까. 하고 싶은 주소는 거의 확정한 상태고 현재까진 누구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문제는 어느 업체가 무난한지 모르겠다. 지금의 계정이 cafe24인데 가격이나 서비스에 있어서 괜찮을라나. 어차피 인터넷에 대해 잘 모르니 그냥 무난하면 좋겠다. (cafe24를 사용한 것도 아는 사람이 사용해서 선택한 것이지, 어디가 가장 좋은지 비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아울러 조만간에 시간이 되면, 이글루스에 쓴 글을 이곳으로 넘길까, 한다. 작업을 한다면 이 달이 끝나기 전에. 400편이 안 되고 이미지는 몇 개 없으니 몇 시간이면 될 것 같다. 그땐 리플을 닫아두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포털 업체에 사용 중인 혼자 노는 카페 자료도 자료실용 계정으로 옮길까 갈등 중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4,000 여개에 이르고 상당수가 자료를 업로드 한 것이라 용량이 부족할 것 같다. 아예 대용량으로 서비스를 변경할 지도 모르겠다. 이글루스와 SK “합병” 소식과 이후의 사태를 접하며 깨달은 건, 이것이다. 그리하여 메일 계정도 따로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있다. (하지만 도메인 서비스 업체가 안전하단 보장은 있는 걸까?)

그나저나 태터툴즈1.0을 사용해보고 싶어 안달이다. 그냥 관리자 툴이 어떤지가 궁금해서. 계정이 두 개이니 실험하면 되지 않으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괜히 실험했다가 자료실이 엉망이 될까봐 걱정이라(소심함의 전형-_-;;)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으흐흐. 스킨만 지금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주르륵 늘어져 있는 태그야 어떻든 설치를 해보겠는데, 힝.

[#M_ +.. | -.. |
어제 두 편의 글을 쓰고 오늘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지 했는데, 결국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원치 않는 논쟁에 빠질 수도 있고(논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상황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빠질지도 모를 논쟁을 할 시기가 아니라는 의미) 글의 내용이 자칫 잘못하면 인신공격처럼 읽힐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이 아니라는 뜻이다.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