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드 히미코: “변태”로 기억하거나 변태하거나

2006.03.07. 화. 오후 5시 40분. 5,000원 씨네코아 4관 [메종 드 히미코]

01. 오랫동안 망설이다 어제 오후, 수업이 끝나자 곧바로 지하철을 탔다. 영화가 몇 시에 끝나도 상관없었는데 그 전날 어제 날짜로 올릴 새 글을 미리 써뒀기 때문이다-_-;;(미리 쓰고 날짜를 수정해서 어제 공개했다, 쿨럭;;) 저녁에 일이 생기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玄牝에 돌아와 나스타샤를 켜고 새로운 글을 쓸 시간이 애매해지기 때문. 너무 늦게까지 나스타샤와 노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니까. 종종 걸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걸어 씨네코아까지 갔다. 저녁 외출을 별로 안 좋아하는 루인이기에 [메종 드 히미코]와 즐기겠다는 다짐을 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조제, …]를 그다지 좋게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영화관의 좌석에 앉았다.

02. 영화관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사람은 “변태”들이 나오는 웃기는/재밌는 영화로 기억할 테지만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 변태할 것이라고. 영화관에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들으며 이런 확신을 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끝내주는 영화다.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셨지만 보실 의향이 있다면, 이 글을 피해주세요. 스포일러투성이 랍니다.

[#M_ 읽기.. | 접기.. |
영화가 시작하고 흑백화면으로 몇 장의 클로즈업한 사진을 접하며, 짜릿한 흥분에 빠졌다. 이건 게이 영화가 아니라 트랜스 영화잖아! 영화를 보며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일본에서의 게이는 ‘남성’동성애자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반queer/비’이성애’자/트랜스 등 이른바 ‘이성애’-젠더에서 벗어난 사람 모두를 지칭한다는 것. 호모나 게이, 트랜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는 것. 그래서 이 영화는 “동성애” 영화로 홍보할 수도 있지만 루인은 트랜스 영화며 끝내주는 이성애 영화라고 느꼈다.

이 영화를 “동성애” 영화로 부르는 건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느낀다. 히미코와 하루히코(오다기리 죠 분)의 사랑은 “동성”간의 사랑이 아니라 이성간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루히코는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어떻게 명명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이야기 전개로는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있다. 히미코는 ‘여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사랑은 동성애일까, 이성애일까. 세상엔 본질적으로 변할 수 없는 ‘남성’과 ‘여성’ 뿐이라고 강제하는 ‘이성애’-젠더 사회에서 히미코는 ‘남성’일 수도 ‘여성’일 수도 없으며 하루히코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자신을 명명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들의 모든 사랑은 이성애다. (이때의 이성애는 작은 따음표’ ‘가 없는 이성애며 루인은 모든 사랑은 결국 이성애라고 몸앓는다.)

이 영화의 가장 급진적인 정치학은 “남자” 주인공, 사오리(시바사키 코우 분)의 존재로 인해서다(이 문장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스포일러!). “여자와 자 본 적이 있느냐”며 그 느낌을 묻는 사오리의 혼란스러움, 사오리가 “남자”임을 깨닫고 당황하는 하루히코의 모습, 처음엔 자신의 자식임에도 못 알아 보다 나중에야 깨닫는 히미코의 모습(“아들”이라고 알고 있는데 “딸”이 나타났으니까) 등은 성정체성/젠더 정체성에 대한 많은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다. 가장 아닌 척하고 이반혐오를 가장 많이 드러내는 사오리지만, 이건 바로 자신이 이반/트랜스이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시선이 때때로 등장인물들을 대상화하는 이유 역시, 카메라의 시선과 사오리의 시선이 거의 일치해서이다. “메종 드 히미코”에 사는 사람들과 괴리를 느끼고 낯설어 할 땐 “메종 드 히미코”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화하지만, 어울려 있을 땐 대상화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거의 없음을 느꼈다. 이런 사오리의 시선으로 전개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또한 관객의 시선과 만나면서 또 다른 균열 지점을 만든다. 대상화하는 카메라의 시선에 따라 “변태”로 비웃거나(영화와 노는 내내 이런 비웃음과 끔찍해 하고 징그러워 하는 소리를 들었다), 카메라의 대상화하는 시선을 깨닫고 불편해하거나, 사오리의 시선과 카메라의 시선이 일치하면서 생기는 ‘유머’에 웃거나. 루인은 세 번째, 킥킥, 웃었다. 사오리의 대상화하는 시선은, 알고 있지만 직면하고 싶지 않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사실-자신도 또한 “메종 드 히미코”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음을 직면해야 하는데서 생기는 두려움/공포 때문이다. 이럴 때 대상화하는 시선은 상대에 대한 대상화가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을 직면하기 싫어하는 자신에 대한 대상화-자기 조롱의 시선이기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별다른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킥킥 웃으며 아픈 것과 불편한 것은 다르다). 감독, 너무 멋져♡

03. 물풍선을 던진 꼬마가 하루히코에게 혼나는 장면, 하루히코와 (사오리가 근무하는)페인트 회사 사장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아아, 너무 뻔하게도 꼬마와 사장 둘 다 “게이”임을 알았다. 꼬마의 표정은 이미 반한 표정이고, 페인트 회사 사장 역시 하루히코에게 반한 상태였기에 하루히코가 농담 삼아 던진 말에 잔뜩 긴장했고 큰 소리로 하하하, 웃었던 것이다.

하루히코가 사오리에게, 사오리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페인트 회사 사장이 부럽다고 말 한 이유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고 느꼈다. 섹스를 했다 아니다, 가 아니라 자신은 사오리가 “남성”임을 알고 놀란데 반해 페인트 회사 사장은 그렇지 않았다. 사장은 ‘이성애’자로 불림에도 불구하고 당황하지 않았는데 반해, 하루히코는 이반으로 정체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하는 자신의 모습-자기혐오/이반혐오를 직면했기 때문이다. 사오리가 그 말을 듣고 운 것도 같은 이유이지 싶다. 사오리 자신도 이반/트랜스지만 언제나 “메종 드 히미코” 사람들을 “변태” 취급하고 대상화하는 시선으로 바라봤으니까. 그래서 이 장면이 너무도 아팠다. 이 곳, [Run To 루인]에도 몇 번인가 썼듯, 가장 힘든 건, 자신이 이반/트랜스라는 자기 정체성을 깨달으며 가지는 자기혐오다. 그래서 자신에게 하는 커밍아웃이 가장 힘들며 자신에게 커밍아웃을 하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가 힘들다. 이런 자기혐오/이반혐오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장이 부러울 수밖에 없고 “부럽다”는 말은 하루히코에게도 사오리에게도 너무 아픈 깨달음이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도 이 지점이다.

04. 이 영화에 등장한 캐릭터 하나하나가 너무도 좋았고 절실했으며 한 마디 한 마디가 루인이었다. 영화관을 나서며 반드시 DVD를 사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리라고 다짐했다._M#]

이글루스와 SK…합병?!?!?!?!?!?!? 심란하다

이틀 만에 나스타샤와 접속하고 평소대로 돌아다니다 당혹스러운 소식을 접했다. 가장 처음 접한 곳은 스노우캣 블로그(에서 읽은 “egloos”)고 곧바로 이글루스로 가서 확인하곤, 이른바 메가톤급 핵폭탄이 떨어졌다는 진부하고도 폭력적인 문구를 떠올렸다. 태터툴즈를 사용하기 전에 이글루스를 사용했고 항상 자동로그인상태로 지금도 이글루스의 이오공감을 즐기기 때문이다. 즐겨 찾는 블로거의 상당수도 이글루스 사용자고.

블로그란 걸 모르던 시절 사용하던 포털 사이트(네이버 아님-_-;;)의 블로그와 한동안 혼자 노는 카페에서 놀던 때를 거쳐 새로이 블로깅을 시작하고 지속적으로 블로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해 유예 기간 동안 머문 곳이 이글루스기에 애틋함으로 남아 있다. 더 이상 이글루스를 사용하지 않기에 강 건너 남의 얘기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SK에 합병이라니!

루인이 너무너무 싫어하는 곳이 싸이월드(스토킹을 당했으니 이곳이 좋을 이유가 없다, 이뿐 아니라 미니홈피/싸이월드가 싫은 이유는 백만 가지라도 댈 수 있다;;;)인데, SK라니…. 이런 루인만의 이유는 별도로 하고라도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나 네이버의 블로그나 그게 그거인 루인에게(도대체 미니홈피와 네이버 블로그 운영방식에 있어 차이를 알 수가 없다, 서로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글루스가 SK로 넘어가면 왠지 싸이월드의 페이퍼처럼 될 것 같은 불안도 생긴다. 일테면 어느 날 갑자기 이제 이글루스의 사용자가 많지 않으니 페이퍼로 이동해주세요, 라던가 페이퍼처럼 이글루스를 운영한다던가, 하는.

아…, 뭐라 할 수 없이 심란하다. 백업하지 않고 비공개로 전환한 글들 모두 백업해야겠다. 합병 이후 운영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기에 지레짐작하기 보다는 기다려봐야겠지만, 당장 탈퇴하고 싶은 심란한 몸인 건 어쩔 수가 없다.

ctrl+c, ctrl+v … 그러시던가.

Nina Nastasia가 다른 앨범에 참여한 곡이 있어, 행여나 국내 사이트에서 찾아 들어 볼 수 있을까 하며 블로그를 검색하다 놀라운 곳을 발견했다.

글이 왠지 너무도 익숙해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문장이 너무 어색해…. 혹시나 해서 2003년 가을, 몇 달간 사용했던 블로그에 접속해서 찾아보니, 아하하, 제목부터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퍼간 글이었다. 아아, 부끄럽잖아요ㅠ_ㅠ…………………………………………………..여기

글을 퍼간 사람도 무려 2004년 어느 여름이라 지금 와서 뭐라고 하기도 그렇다. 루인의 (아주 오래된, 그리고 루인이란 닉을 쓰지도 않던 시절의) 글을 그대로 퍼 간 것이 유쾌하진 않다고 해도 마냥 기분 나쁜 것도 아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군요”라고 중얼거리면 그만. 지금 이곳, [Run To 루인]에 쓴 글이 어딘가 고스란히 퍼간 사람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물론 루인의 글을 그 누가 퍼가랴. ctrl+c, ctrl+v를 통해 자기가 직접 쓴 글인 냥 행세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좀 더 편하게(폼나게?) 소통할 수 있는 글이거나 무난한 내용이거나.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루인처럼 자신이 이반/비’이성애’자/트랜스임을 떠들고 있는데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글을 퍼서 자기가 직접 쓴 글인 냥 행세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크크. 더구나 글의 내용이 그다지 좋은 게 아닐 진데(얼마 전, 이랑 중 한 명에게서 루인이 예전에 쓴 글 중 한 편을 처음엔 무슨 소리야, 했다가 나중에야 고개를 주억거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퍼가기 무난한 글이 아니란 얘기다) 루인의 글을 퍼간다는 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길이 아니라 욕 먹으려고 작정하는 길이지 않을까(ctrl+c, ctrl+v를 통해 자기 글인 냥 행세하는데 욕먹는다면 안 하니만 못하다). 큭큭.

아, 아무튼 루인의 글을 퍼가서 레폿에 붙이든(그럴만한 내용이나 되려나;;;) 마침표 하나까지 고스란히 퍼가선 자기가 직접 쓴 글인 양 행세를 하든, 별 상관이 없는데 결국 그렇게 생산한 글은 그렇게 한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를 못가지기 때문이다. 괜찮은 아이디어는 적당히 숨겨서 나중에 자신의 논문(작품)에 사용하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루인은 별로 그렇지 않은데, 뭐든지 떠벌리고 다니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루인의 아이디어가 루인만의 독점적인 지식이라고 몸앓지도 않거니와 그 아이디어를 전개할 수 있는 사람은 루인 뿐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방식과 그것을 구성하는 내용에 있어 다른 사람과 루인은 다른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루인도 잊고 있던 예전 블로그의 글을 퍼간 블로그를 발견하다니, 재밌는 일이다. 이봐요. 앞으로 퍼갈 땐, 좀더 잘 쓴 글을 퍼가 주세요. 나중에 발견하면 민망하고 부끄럽거든요. 정희진 선생님의 글처럼 빼어나게 잘 쓴 글이라면 몰라도 루인처럼 서툰 문장의 글을 퍼가는 건, 퍼간 당신이 욕먹을까봐 걱정이에요.

※이 글 어딘가에 불펌한 그곳 주소를 숨겨뒀지요. 흐흐. 숨은 그림 찾기^^;;

[#M_ +.. | -.. | ctrl+c, ctrl+v는 각각 복사, 붙여넣기의 단축키다. 물론 루인의 블로그는 오른쪽 마우스 기능을 막아두었기에 소용없지만, 아는 누군가는 자신의 블로그를 이렇게 막아 두었음에도 창을 두 개로해서 그대로 옮겨 적었는지, 불펌한 글을 발견했다고 하니, ctrl+c, ctrl+v는 일종의 은유.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