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서생: 퀴어같은…! 능청스러움의 미덕

2006.03.03. 아침 9시-조조: 2,500원

01. 아침 9시에 즐기는 영화가 좋다. 매일같이 하는 일이 있는데 9시 영화를 보면 그런 일상에 별다른 영향을 안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루인의 심리적 통금은 저녁 5시. 이 시간 즈음 나스타샤와 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음란서생]도 아침 9시를 선택.

02. 스포일러 없는 감상문이 가능하랴.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며, 이 영화의 능청스러움에 박수를 보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이 능청스러움에 있다고 느꼈다.

오랜 포르노그래피의 논쟁에서 루인의 잠정적인 결론은, 음란은 좋지만 폭력은 반대한다는 것. 포르노를 표현의 자유 운운하면서 무조건 옹호하는 건, 누구에게서의 표현의 자유냐는 질문(표현의 자유는 애초 아무 말이나 다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해당 하는 것이 아니라 발화의 자유가 없거나 억압받고 있는 사람을 위한 권리이다)과 폭력을 음란으로 여기는 문화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스너프 필름처럼 ‘여성’을 죽이는 것을 음란하다며 이를 금지하는 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 세상에 차별/폭력이란 없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하다. 그래서 [음란서생]이란 제목을 접하고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지극히 진부하다. 그것도 많이 진부하다. 이 정도 음란이면 다른 영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음란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이 영화를 접하면서 가졌던 불편함은 마초 같은 ‘게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그런 불편함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게이’영화에선 클리토리스란 단어를 듣곤 먹고 있던 음식을 토하는 장면을 통해 여성혐오를 드러낸다. 이 영화도 그런 지점에서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물론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이반queer영화라고 자처하지 않지만.

루인은 이 영화를 접하는 내내 세 ‘남성’의 ‘동성애’ 욕망을 느꼈다. 윤서(한석규 분)와 광헌(이범수 분), 황가(오달수 분) 사이의 사랑 이야기라고. 서로를 향한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여성’을 “거래”하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다. (그래서 읽기에 따라 상당히 폭력적인 영화다.) ‘이성애’적 상상력 혹은 그런 “지저분한 소설”은 서로를 향한 욕망을 기존의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드러내는 일종의 가면이라고 해야 할까. 젠더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성애’ 결혼을 강제하는 것은 ‘남성’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장인과 사위 간의 (‘남성’ ‘동성애’적)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즉 젠더에 기반 한 이성애 구조는 ‘남성’ ‘동성애’ 욕망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다. ‘게이’ ‘남성’에 대한 혐오는 간접적인 방식이 아닌 직접적인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영화는 이렇듯, ‘남성’간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여성’을 매개하고 있음을 너무도 잘 그리고 있다. 남성들끼리 성행위를 실습(?, 연습?)하는 장면은 이를 잘 드러낸다. 욕망하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없기에 금기를 지키는 척 하면서 표현하는 것이다. 후반부에, 윤서를 구한 광헌을 죽이려는 부분에서 윤서가 절실하게 광헌을 살리려는 모습은 둘(혹은 셋) 사이의 애정이 “단순한 우정” 이상임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들은 음란함이 누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며 마초적인 ‘게이’들이 표현하곤 하는 ‘여성’혐오나 굳이 ‘게이’가 아니어도 극장에서 흔하게 접하는 영화에서 쉽게 접하는 음란함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마지막 장면이라고 느끼는데, 여기서 능청스러움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섬으로 간 윤서가 새로운 줄거리를 얘기하는데 그 내용이 S/M+게이 관계다. (이때의 S/M은 어느 정도 편견을 가지고 묘사하는 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윤서, 광헌, 황가의 능청스러움이 재밌었다. 그러면서 영화에서의 음란은 ‘이성애’적 음란이 아니라 금기를 깨고 ‘동성애’적 욕망을 발화하는 그 찰라, 라고 느꼈다. 비’이성애’에 대한, 이반에 대한 혐오로 읽힐 수도 있을 법한 이 장면들이 별로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고 금기에서 벗어난 발화의 능청스러움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인 정빈(김민정 분)은 근래 들어 접한 영화 중 드물게 짠하게 다가왔다. 슬펐다. 다음엔 정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우선은 여기까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영화라는 점에서 볼 만한 영화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오늘따라 몸이 좀 산만해서 글을 쓸 상황이 아니다. 태터툴즈 클래식에서 0.961로 바꾸려다 실패했는데 그 순간 글을 쓰고 싶은 몸이 사라졌기 때문;;; 담에 다시 쓰고 싶다. 한 번 더 즐기고.

이런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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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가서 드라이를 맡기는 세탁소가 있다. 주인은 중년으로 여겨지는 두 명. (중년이란 나이 대는 정말 어중간하고 애매모호해서 사실 상 알려주는 정보가 없다시피 하다.) 이 중 한 명에게 별로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는데 예전에 루인이 드라이 맡긴 담요를 깔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라는 한 마디 말도 없어서 몸 상했었다. 그런데 오늘, 드라이 맡긴 옷을 찾으러 갔다가 그간의 불편했던 감정을 일순간에 바꿀 장면을 목격했다.

루인은 거스름돈을 받을 때, 지폐의 경우, 동일한 모양으로 받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두 세워진 앞면인 식으로. 오늘 그 중년이 그랬다. 4,000원을 거슬러 주면서 지폐를 루인이 좋아하는 식으로 정리해서 주는 것이다. 꺄릇. 앞으로 좋아질 것 같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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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랑 회의를 통해 종이매체 발간 일정을 잡았다. 이 일정을 유지한다면 3월 말 즈음 책이 나올 예정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이랑블로그에 있는 글을 중심으로 발간하기에 새로운 글을 읽는 재미는 없겠지만 대신 정성이 들어간 종이책을 읽을 수는 있다.

이번에도 별다른 비용 없이 이랑들의 노동으로 만든다. 한 장 한 장 프린터로 인쇄하고 스템플러로 일일이 직접 다 찍고. 인쇄소에 맡기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대신 시간과 노동 비용이 그 만큼 든다. 하지만 인쇄소를 거치지 않고 시간과 노동을 들여서라도 직접 인쇄해서 만드는 것의 장점은 언제든 더 찍을 수 있다는 것.

이번에 새 종이매체를 완성하면 2월 달에 할까 했던 책 분양도 함께할 예정. 헌책방인 숨책에서 산 책 중에, 일부러 또 샀거나 모르고 또 산 책들이 몇 권 있어서 분양하는 것. [Run To 루인]에서도 예전에 한 번 한 적이 있다. 그땐 사실상 이랑만이 대상이었지만 이번엔 누구나 환영. 이랑 종이매체와 책을 함께 우편으로 보낼 계획이다.

3월 말에서 4월 초 즈음이 될 듯.

※숨책에서 산 책이기에 깨끗한 새 책이 아니라 헌책. 오래된 흔적과 누군가의 손때가 남아 있는 책이 상당수! 예외도 몇 있긴 하지만.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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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알바를 할지도 모른다. 생활비가 간당간당하다 싶으니까 이렇게 또 해결할 길이 생긴다. 물론 내일이 아니라 다른 날로 바뀔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알바거리가 생겼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로인해 내일하는 여이연 콜로키움은 못갈 것 같다. 실은, 가고 싶었는데 알바자리를 사양하지 않았다. 단지 생활비 때문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도움을 주고받는 소중한 관계라서 콜로키움을 포기한 격이다. 물론 알바가 연기되면 콜로키움을 가겠지만 콜로키움을 포기한다고 해서 후회할 일도 아니다. 그곳과의 관계는, 루인에게 그렇게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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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키드님 블로그에서 [브로크백 마운틴] 관련 글을 보고 불이 붙었다. 작년인가, 이 영화 관련 기사를 접할 때 마다 꼭 봐야지 했으니까. 이런 기대가 영화와 노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 영화와 관련한 정보는 사실 상 없는 편이다. 줄거리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일한 정보는 “동성애 영화”라는 정도. 하지만 내일 아침에 즐길 영화는 이 영화가 아니라 [음란서생]. 9시 조조가 이 영화라서. 일요일 즈음부터 [브로크백 마운틴]이 9시 조조니까 일요일 아침에 영화와 놀러갈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약 한 달만 있으면 서울여성영화제가 열린다. 으하하. 한때, 극장에서 볼 일 년 치 영화를 이때 다 본다고 할 정도로 이 기간엔 극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작년에도 10편정도 본 듯. 올해는 시간이 더 많이 생기니 더 많이 볼 것 같다. 으하하. 궁핍모드로 전환이다. 영화를 볼 자금이 필요하니까.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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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주로 주문하던 곳과는 다른 곳에서 다크초콜릿을 주문해서 오늘 받았다. 우울할 때 하나씩 먹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맛있다.

다크초콜릿을 먹으면 좋은 점 중 하나는 그 맛으로 인해 입맛이 떨어져서 밥을 안 먹게 된다는 것… 엉?

두근두근 걱정

3월의 첫 날이 노는 날(! -_-;;;)이라, 참 다행이다. 그렇지 않고 2월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3월을 시작해야 한다면, 정말… 이란 몸앓이를 했다. 어제, 아주 조금 비가 내리던 길을 걸으며.

늦잠을 잤다. 딱히 피곤할 것도 없는데 며칠 째 밤 11시만 넘어도 졸음이 밀려왔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는 덴 지장이 없었는데 오늘은 긴장이 풀렸는지 늦잠을 잤다. 핸드폰 액정을 보니 9시를 몇 분 남겨둔 상황. 늦은 아침을 먹고 읽다 만 책을 마저 읽고, 오늘부터 삼, 사십 여일 가량 걸릴 예정의 [Queer Theory]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한동안 뭘 시작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시간을 보냈다.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일이 개강이라고 해서 수업이 있는 건 아니다. 수업은 월, 화 이틀이고 조교 출석체크도 수요일이라 목요일이 개강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이 없는데도, 조급함을 느끼고 있다. 2년 전, 처음으로 여성학 수업을 신청하고 개강을 기다리던 그때처럼.

페미니즘을 여성학이란 수업을 통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딱, 2년 전이다. 물론 그 전에도 책은 조금씩 읽었지만, 잡식에 체계적이지 않은 독서습관으로 그냥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렇게 읽다가 수업을 통해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고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여성학 과목을 신청했다. 걱정은, 수업 듣는 사람들 중 루인이 가장 무식할까봐, 였다. 성적이야 신경을 안 쓰는 편이기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어렵거나 루인 혼자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면 어떻게 하나로 수강 취소도 고려했었다. 평소 물을 잘 안 사마시지만 그날은 물을 한 통 샀고 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다 마셨다. 긴장하면 생기는 버릇이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대학원에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 2년 전의 그런 몸으로 긴장하고 있다. 작년 가을, 비록 중간에 그만두긴 했지만, 몇 주간 대학원 수업을 청강 했기에 어느 정도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고 각오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걱정과 두려움으로 긴장을 놓기가 어렵다. 결국은 어떻게 놀 것인가의 문제이지만, 좀더 팽팽한 긴장 속에서 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족한, 너무도 부족한 영어 실력이야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어떻게든 따라간다고 하면 되겠지만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한 걱정이 사실 더 크기도 하다.

무식한 건, 남들보다 모르는 건 이제 그다지 걱정이 아니지만―이제 좀 안다가 아니라 모르는 건 수업을 통해 배우면 되기 때문이다― “바보”가 될까봐, 걱정이다. 즉, 불편한 상황에서 침묵하지는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불편한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곤 한다. 누군가가 배려해주겠지, 하는 알량한 기대를 가지고. 하지만 누구도 루인을 대신해서 말해주지 않으며 배려해주겠지 하는 기대는 착각일 뿐임을 안다. “타자성”을 침묵한다는 건, 결국 죽음과도 같은 일임을,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재단되도록 내버려 두는 일임을 안다. 알지만, 여전히 침묵한다. 바로 이것이 두렵다. 어떻게 발화를 시작할 것인가. 침묵하면 하루 종일 속상하고 화가 나서 몸이 아프지만 발화하면 때로 괜히 발화한 건 아닌가 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발화하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침묵하고 발화하지 않음을 후회하는 것이 더 아프다는 것도 이제는 조금 안다.

처음으로 발화하기가 어렵다. 어디서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다짐하고 발화하겠다고 준비를 하는 날은 분명 목이 쉬고 준비한 물을 금방 다 마시겠지만, 첫 시작이 중요하다. 타인의 폭력 앞에서도 헤벌쭉 웃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M_ +.. | -.. | 이때의 “바보”는 당연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의 그런 것일 뿐, 당사자는 그 상황에서 협상 중에 있다. 발화하는 것이 좋은지 침묵하는 것이 좋은지 혹은 다른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좋은지로.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