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느끼지 않았을 때의 문제

재밌은 책을 한 권 읽고 있다. 하지만 읽으며 얼마간의 불편함을 느끼는데, 인류학적 보고서 성격의 책이라서 증언자들의 말을 저자가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과정 때문이다.

이런 불편함은 그러니까, 루인은 그냥 “종종 우울함을 느껴”, 라고 말했는데, 상대방은 “만성무기력에 빠져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할까. 젠더에 관한 글인데, 증언자들은 기존의 두 개뿐인 젠더에서 벗어난 다른 상상력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인데 해석자는 계속해서 ‘남성’ 아니면 ‘여성’ 어느 한 쪽으로 편입하고 있어 불편하다.

이런 이유로 루인은 2차 문헌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실제, 한 텍스트에 대한 루인의 해석과 (이른바 권위자 혹은 유명한 사람이라 불리는) 누군가의 해석 사이에서 괴리가 컸던 경험도 많다. 지금까지, 믿을 만하고 루인이 다른 텍스트를 접하고 느끼는데 도움을 준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뭐, 이 [Run To 루인]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해석은, 재미가 없거나 너무 단순하게 접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굳이 텍스트 해석이 아니어도 발생한다. 어떤 일에 대해 누군가에게 물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아닌 경우. 오늘도 이런 일로 혼자서 무척이나 화가 났었다. 중요한 자료였는데. 믿은 루인이 바보지, 하면서. 루인이 잘못한 것이 맞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담당자에게 직접 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결국, 또 한 번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나 할까. 물론 그 전부터 그다지 믿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다지 큰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유쾌한 일만도 아니다.

졸업, 단상/감상

졸업식장에도 갔다. 사실 졸업식이란 거, 참 번거로운 일이고 별 감흥도 일지 않는 일이라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날짜 지나서 졸업장이나 찾으러 가는 정도로 간단하게 하고 싶었다. 더구나 학부로 학생 신분이 끝나는 것도 아니니까-_-;;;

하지만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다. 반드시 오신다는 말 앞에서 마냥 싫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이 루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식장에도 갔다. 하지만 모자(학사모?)는 쓰지도 않았다. 날라 온 공문에는 모자를 써야한다고 했지만 루인은 모자를 너무 싫어하니까. 물론 행사를 듣지도 않았다. 이런 날 지지가 능력을 십분 휘했다(부피가 커서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하는 음악재생기기는 칠칠치 못한 루인의 행동으로 연결 선이나 이어폰이 어딘가 걸려서 자주 상했기에 목걸이형 mp3p는 꿈이었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즐겼다. 그러다 지겨워서 나왔다.

졸업식에서의 축사를 듣다 느낀 끔찍한 말은, 학적이라는 인종주의였다. 학적은 결코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것이라는 둥, 졸업한 학교를 자랑스럽게 여기라는 둥 대학이 한 개인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간주하는 발언들을 들으며, 학벌과 출신지역이 인종으로 여겨지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다시금 절감했다.

아, 특이할 사항은, 루인을 오프라인으로 아는 사람은 알듯, 사진 찍는 걸 무지무지 싫어하지만, 오늘은 여러 장 찍었다. 부모님과만 찍은 것이 아니라 같이 졸업하는 친구와도.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엔 사진기가 디카가 아니라 필카이고 필름을 루인이 챙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이런 이유만도 아닌데, 아빠가 카메라를 챙겨오기 전까지 제발 카메라가 없어서 사진을 찍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말에 엄마의 표정이 많이 섭섭한 듯 했다. 이 표정. 그리고 사진기에 삼각대(?)까지 챙겨온 아빠의 즐거운 표정. 이 두 표정 앞에서 사진 안 찍을래요, 할 수가 없었다. 루인과 부모님의 이런 복잡한 관계-서로간의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 속에서도 이런 날엔 그냥 가장 무난하다고 여겨지는, 누구나 한다고 말해지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어쨌거나 루인이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안다. 항상 속만 썩이고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걱정만 안겨드리니 이런 일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루인이 잔인하다고 느꼈다. 루인의 잔인함을 직면하고 싶지가 안아서가 아니라 잔인함을 표현할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냥 재미없는 낯설음을 흘러 보낸다.

제 14회 여이연 콜로키움

여이연에서
3월 3일 금요일 저녁 7시
현대의료는 여성에게 해방의 기획인가, 끊어야 할 족쇄인가“란 주제로
콜로키움을 한다고 하네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의료의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혀 있어요. 재밌을 것 같아요. 훗.

(은근슬쩍 광고전문 블로그로…;;;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