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강연 메모

이제 강의 하나만 더 하면 되려나… 간담회와 학회 발표가 각각 남아있긴 하지만…
사실 오늘 키워드는 시스섹시즘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것과 관련한 이야기는 적었다. 나의 입장에선 강의 내용 자체가 시스섹시즘이었지만 듣는 입장에선 다른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마지막에 짧게 시스섹시즘을 이야기하는구나 싶었을 것도 같다(그런 평가도 들었고). 결국 내가 전체 내용을 조직하며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며 다른 말로 망한 거지. ㅠㅠㅠ
좀 더 아쉬운 건, 오늘 발표 내용을 밑절미 삼아 여성학회 학술대회 때 제대로 발표할 계획이었다. 트랜스혐오를 키워드 삼아 시스섹시즘을 전면 내세우는 논의를 하고 싶달까. 하지만 강연 내용을 그렇게 구성하지도 못 했다. 전반적으로 좀 엉성한 구성이라 참가자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두 가지 정정.
기억이 긴가민가한데 시스섹시즘 용어와 관련하여 그 설명이 있는 블로그를 여행자로 말하려 했는데 행성인으로 잘못 말한 듯하다. 여행자 블로그(http://blog.naver.com/queerrainbow)에 가면 젠더퀴어와 관련한 좋은 용어설명이 있으니 참고하시기를.
[이곳에 오시는지 아닌지 몰라서 적기 조금 애매하지만.. 혹시 다른 분이 관심을 가지실 수도 있으니까] 아울러 강의 끝나고 한 분이, 강의 때 언급한 김지혜 선생님의 프리실라 논문을 물으셔서 한 학술논문검색 사이트에 있을 거라고 알려드렸는데… 확인하니 없었습니다. ㅠㅠㅠ 죄송합니다. 저는 다른 경로로 읽어서 미처 확인을 못 했네요. 논문이 게재된 학회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하니 출판은 한 것 같은데 공개를 안 한 것 같습니다. 올해 말 즈음 나오지 않을까 하고요.

정크비건이고 꿀비건이 하는 이상한 소리

어떤 자료를 찾다가 00과자가 비건인지 아닌지 확인해달라는 글을 봤다. 성분으로 봐선 비건 같았다. 우유, 계란 등을 사용한 시설에서 제조했다지만 그런 건 비건쇼핑몰에도 흔하다. 그래서 별 문제 없는 비건이려니 했다.
첫 댓글은 나의 예상과 달리 백설탕을 문제삼았다. 백설탕을 정제하는 과정에 뼈가루를 이용한다고 했다. 응? 설탕 정제에 뼈가루를 이용한다고? 그래서 유기농 비정제 설탕만 사용해야 한다고? 무슨 말이지? 설탕 정제에 뼈가루를 사용한다는 말 자체가 사실인지를 확인했다. 관련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더 정확하게는 귀찮아서 대충 찾았다. 그러고 나면 제조시설 공유를 문제 삼았다. 또 다른 댓글에선 비건은 단순한 음식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의 행동이라고 했다.
이런 일련의 반응을 읽고 나니, ‘그럼 나는 비건 안 할래’란 말이 튀어나왔다. 정크비건이고 꿀비건인 나는 사실 꿀(!)비건이란 사실부터 에러다. 비건의 엄격한 정의엔 꿀도 먹으면 안 된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꿀의 단맛을 좋아해서 종종 먹곤 한다. 비염을 관리하려고 프로폴리스도 먹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편식이다.
정말로 나는 채식보다는 편식에 가깝다. 어찌보면 나는 지금까지 표현의 편의를 위해 채식이라고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채식하면 건강하게 챙겨 먹는 사람을 많이 떠올리지만 정크푸드와 비건을 합친 정크비건 식생활을 자주 하고 있으며 채소 중에서 안 먹는 종류가 상당하다. 올해 상근하면서 비온뒤무지개재단 및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퀴어문화축제 활동가와 점심을 같이 먹고 있는데(점심 식사를 제공하고 돌아가면서 식사 당번을 하고 있다) 나로 인해 채식인의 이미지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백설탕 운운하는 글을 읽으니 그냥 엄청난 편식인으로 설명을 바꿀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물론 정크비건, 꿀비건이란 표현이 어쩐지 좋아서 계속 비건이라고 말하고 다니겠지만.

퀴어이론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퀴어이론 맥락이나 어떤 언어를 전제하고 글을 쓰면 언제나 듣는 말이 어렵다, 못 알아듣겠다, 알아듣게 써라. 대중이라고 가정하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면 듣는 말이 왜 한국엔 아직도 퀴어이론을 깊이 다룬 글이 없냐, 왜 계몽적 글밖에 없느냐. (시기를 달리해서 나는 같은 사람에게 이런 요지의 반응을 접한 적도 있다.) 죽으란 소리다. 더 정확하게는 한국에서 퀴어이론을 하지 말라는 소리고 하려면 학문이 아닌 수준에서 하란 뜻이다. 한국의 퀴어이론은 학문수준이 아니란 평가를 할 수 있는 근거의 글만 쓰란 소리다.
나는 이런 식의 반응에 깊은 분노와 빡침과 화와 울분과 적대가 있다. 1990년대부터 LGBT/퀴어 관련 글을 여러 사람이 써왔다. 반응과 이해는 1980년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있는 글도 찾아 읽지 않으면서 무슨 글이건 어렵다고 떠들고 이론이 없다고 떠든다. 이론을 구축하려 들면 모르겠다고 하고 읽지도 않는다. 어쩌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