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리즘 강좌: 묻지 않은 젠더

며칠 전, 공개강좌에 갔다 왔다. 강의 내용은 트랜스젠더리즘. 루인으로선 너무도 기대한 내용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참석해야지 했다. 수강 결과는 대체로 만족. 이제 몸앓기 시작한 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지점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테면 샌디 스톤의 글을 읽으며 도대체 왜 카사블랑카나 모로코가 나오는지 몰랐는데 강사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아직은 정확하게 개념을 잡지 못하고 있는 트랜스베스타잇transvestite과 트랜스섹슈얼, 트랜스젠더의 기원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언젠가 어느 글을 통해 읽게 되리라 기대하면서도 귀동냥이나마 미리 들으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날 강의 주제의 핵심은 “레즈비언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리즘의 경계 분쟁“이었기에 루인이 기대한 젠더에 관한 논의는 별로 없었다. 강사가 준비하고 기획한 내용과 루인이 기대한 내용이 달랐기에 아쉬움도 남지만 앞으로 텍스트와 놀며 도움이 될 내용들이 많았기에 수확은 컸다. (준비했지만 시간 상 못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강의 내용이 아니라 참석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몇 번의 당혹스러움 중, 첫 당혹스러움은 정체성의 다양성을 얘기하는 지점에서였다. 정체성과 관련해서 얘기를 하며 강사는 트랜스베스타잇, 트랜스젠더, 트랜스섹슈얼, 드랙퀸 등을 얘기했는데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하자 누군가 말했다. “다 말해놓고 또 있단 말예요?” 이 말을 듣고 많이 당황했다. 아니 그럼 섹슈얼리티 혹은 성정체성이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그리고 트랜스젠더 이렇게 넷 뿐 이라고 믿으신 건가요? S/M이나 메일 레즈비언(male lesbian), 피메일 게이(female gay) 등 말하지 않은 섹슈얼리티가 너무도 많았다. 대신 어떤 단체에선 80여 가지의 정체성 분류를 두고 있다는 얘기와 이에 대한 비판으로 넘어갔지만, 수강생의 ‘무심코’ 한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 말은 세상엔 ‘여성’과 ‘남성’ 둘이면 충분하며 그 이상은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필요 없거나 있어도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인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흰색처리;;)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지점들의 당혹스러움은 있었다. 하지만 이 당혹스러움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건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리티의 가장 기본적인 논쟁점인 젠더에 관한 논의 없이 강의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사는 젠더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젠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따라 강의 내용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강사의 해석과 루인의 해석이 달라 헷갈리기도 했다.

강의가 끝나고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페미니스트가 트랜스혐오 발언을 했다는 점과 트랜스의 다양한 정체성들이 주는 ‘놀라움’이었다. 전자는 사람들이 놀랐다는 사실에 더 놀랐고 후자는 좀 다르게 다가왔다. 한 번도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해가면서도 낯설었다. 정말 자신이 ‘여성’인지 혹은 ‘남성’인지 확신한다는 의미인거야? 툭 터놓고 말해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자신이, 지금의 젠더구조가 부여하는(주민등록증으로 강제하는) ‘여성’ 혹은 ‘남성’인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있음과 젠더가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해 묻지 않고서 젠더를 얘기하고 있음을 궁금한 것이다. 젠더는 단순히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으로서 여성다움, 남성다움”이 아니라 혹자의 표현을 빌면 컬트고 루인의 표현으론 집단광기이기 때문이다.

강의 내용을 젠더에 대한 질문으로 하지 않고 “분쟁”을 중심으로 이끌어간 건, 그래서 많은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강의를 통해 레즈비언 페미니즘과 트랜스 간에 있었던 논쟁뿐 아니라 둘 사이의 논쟁을 통해 발생하는 “젠더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까지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당시 어떤 분위기였기에 페미니스트가 트랜스 혐오 발언을 했는지, 도대체 왜 그런 발언을 했는가 하는 질문은 안 나오지 않았을까.

[#M_ +.. | -.. | 강의 중인지 질의응답시간이었는지 정확하겐 기억나지 않지만 얼마간의 ‘논쟁’이 있었던 내용.
만약 당신이 트랜스‘여성’(mtf, 즉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트랜스)일 경우, ‘여성’에게 당신이 ‘여성’임을 인정받는 것이 좋을까요, ‘남성’에게 ‘여성’임을 인정받는 것이 좋을까요. (여기서 ‘인정받음’은 그저 별다른 의심 없이 ‘여성’으로 여겨진다는 의미예요.) 강의에 있었던 사람들과 이곳에 오거나 루인이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게 다를까. 리플은 기대도 안 하니 물어보고 다녀야겠다._M#]

어떻게 말할 것인가: 권력자의 무관심, 고민 없음

스캇 펙이 쓴 [거짓의 사람들]의 내용 중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모가 아들에게 총을 준 사례가 있다. 총이라는 것이 가부장제와 젠더구조에선 ‘남성스러움’을 의미하기에 부모의 입장에선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총기 자살한 형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동생에게 총의 의미는 어땠을까. 이후 그 아이는 학교 성적이 떨어지고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는 문제아가 되었고 생활에 바쁜 부모는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귀찮은 표정으로 스캇 펙에게 아이를 맡겼다고 한다.

총기 자살한 형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동생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인 총은 자살명령이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어떻게 말 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자신에겐 별것 아닌 언어가 다른 사람에겐 잊고 싶은 상처를 환기시키는 폭력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떻게 소통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문제이다. 하지만 대체로 권력을 가진 자들, 그래서 별로 고민하지 않으며 인생을 ‘쿨~’하게 살 수 있는 자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편이다. “뭘 그거 가지고 화를 내?”, “별거 아닌 걸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반응 하냐?”라는 말과 함께.

애드키드님의 “배려“란 글을 읽으며 권력을 가진다는 건 별거 아니라는 몸앓이를 한다.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런 깨닫지 못함을 추궁당하지 않거나 오히려 지지받을 수 있는 것이 권력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러며 “관심 없음이 폭력이다, 생각하지 않음이 폭력이다”란 말을 떠올렸다(이런 맥락에서 어제 참가했던 한 강좌는 묘했다).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고통에의 감수성이다”란 말도 떠올랐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 것, 권력은 여기서 출발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민하기 위해선 자신이 가진 권력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하는 것과 연민이나 동정은 전혀 다른 감정이다. 상대방의 입장으로 고민하는 것은 자신을 상대화하는 것이지만 연민이나 동정은 여전히 자신을 권력자의 위치에 두는 것이다.)

어떻게 이야기하고 관계를 엮어갈 것인가는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첫 느낌: 단순한게 좋아

홈페이지 등 인터넷 사이트는 첫 0.05초에 판단을 한다는 기사를 며칠 전 접했다. (며칠 전 읽은 포털 사이트의 메인 기사라고 기억하는데 열흘도 더 된 기사다. 어떻게 된 거지? ;;;) 기사 내용을 읽으며 두 가지를 떠올렸다. 하나는 루인의 블로그, [Run To 루인]이고 다른 하나는 알바를 하는 곳의 홈페이지.

기본적으로 단순한 걸 선호하고 지향하기에 뭔가 복잡하고 이미지가 많은 디자인은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블로그든 홈페이지든 이미지가 많고 뭔가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으면 다시 가기를 꺼린다. 그곳이 어지간히 괜찮은 내용이지 않은 이상. 그래서 인터넷을 시작한 초기에 만든 아이디 중엔 simple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것을 선호한다고 하기 보다는 (루인의 입장에서)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이미지나 메뉴들이 있으면 피곤한 느낌을 받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블로거나 홈피 주인이 생산하는 내용들에 집중할 수 있는 디자인이면 족하지 “나는 이런 사람이야”를 과도하게 드러내려다 많은 이미지와 카테고리가 들어가 있으면 불편하고 산만하게 느낀다.

이미지가 많은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 중엔, 루인이 이미지(그림이나 사진 등) 난독증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미지든 그 속에 담겨있는 내용을 알아차리기에 한참이 걸린다. 일테면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의 표지를 보며 처음 느낀 건, 어두운 분위기구나, 정도였다. 그것이 해골에 꽃을 꽂고 있음을 알게 된 건, 한 달 가까이 지나, 우연히 신문기사의 설명을 읽고 나서였다. (여기서 “보다”의 문제가 발생한다.) 어릴 때부터 사진 보는 걸 별로 안 좋아했는데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봐야 별 감흥도 없고 그냥 루인이 찍혀 있으면 찍혀 있나보다 정도였다. 물론 이후, 한때 잠깐 디카를 사용하며 조금은 훈련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익숙한 건 아니다. 사진을 볼 일이 있으면 보긴 하지만 느끼기까지는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블로그 등 사이트(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의) 디자인은 단순한 걸 선호한다. 지금의 [Run To 루인] 스킨이 너무너무 좋은 것도 그래서이다. 글에 집중할 수 있기도 하지만 단순하면서 예쁘기 때문이다. (태터툴즈 1.0버전이 나왔다고 하는데 바꾸지 않고 있는 건 지금의 스킨을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어서 이다.)

지금 알바를 하고 있는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지 않는 이유도 디자인 영향이 크다. 첫 페이지에 너무 많은 걸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어느 것에도 집중을 할 수 없는 역효과가 나타난 격이다. 지금에야 익숙하지만 처음엔 상당히 어려웠다. 난무하는 이미지들이라니.

그러고 보면 루인이 즐겨 찾는 블로그의 스킨/디자인은 한결같이 루인이 선호하는 모습이다. 하긴, 흥미로운 글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스킨 때문에 글은 읽지도 않고 그냥 창을 닫은 적도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미지 없이 글자만 있어서 별로라는 사람도 있긴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