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로 부모가 아들에게 총을 준 사례가 있다. 총이라는 것이 가부장제와 젠더구조에선 ‘남성스러움’을 의미하기에 부모의 입장에선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총기 자살한 형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동생에게 총의 의미는 어땠을까. 이후 그 아이는 학교 성적이 떨어지고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는 문제아가 되었고 생활에 바쁜 부모는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귀찮은 표정으로 스캇 펙에게 아이를 맡겼다고 한다.
총기 자살한 형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동생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인 총은 자살명령이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어떻게 말 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자신에겐 별것 아닌 언어가 다른 사람에겐 잊고 싶은 상처를 환기시키는 폭력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떻게 소통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문제이다. 하지만 대체로 권력을 가진 자들, 그래서 별로 고민하지 않으며 인생을 ‘쿨~’하게 살 수 있는 자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편이다. “뭘 그거 가지고 화를 내?”, “별거 아닌 걸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반응 하냐?”라는 말과 함께.
애드키드님의 “배려“란 글을 읽으며 권력을 가진다는 건 별거 아니라는 몸앓이를 한다.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런 깨닫지 못함을 추궁당하지 않거나 오히려 지지받을 수 있는 것이 권력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러며 “관심 없음이 폭력이다, 생각하지 않음이 폭력이다”란 말을 떠올렸다(이런 맥락에서 어제 참가했던 한 강좌는 묘했다).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고통에의 감수성이다”란 말도 떠올랐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 것, 권력은 여기서 출발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민하기 위해선 자신이 가진 권력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하는 것과 연민이나 동정은 전혀 다른 감정이다. 상대방의 입장으로 고민하는 것은 자신을 상대화하는 것이지만 연민이나 동정은 여전히 자신을 권력자의 위치에 두는 것이다.)
어떻게 이야기하고 관계를 엮어갈 것인가는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