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이론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퀴어이론 맥락이나 어떤 언어를 전제하고 글을 쓰면 언제나 듣는 말이 어렵다, 못 알아듣겠다, 알아듣게 써라. 대중이라고 가정하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면 듣는 말이 왜 한국엔 아직도 퀴어이론을 깊이 다룬 글이 없냐, 왜 계몽적 글밖에 없느냐. (시기를 달리해서 나는 같은 사람에게 이런 요지의 반응을 접한 적도 있다.) 죽으란 소리다. 더 정확하게는 한국에서 퀴어이론을 하지 말라는 소리고 하려면 학문이 아닌 수준에서 하란 뜻이다. 한국의 퀴어이론은 학문수준이 아니란 평가를 할 수 있는 근거의 글만 쓰란 소리다.
나는 이런 식의 반응에 깊은 분노와 빡침과 화와 울분과 적대가 있다. 1990년대부터 LGBT/퀴어 관련 글을 여러 사람이 써왔다. 반응과 이해는 1980년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있는 글도 찾아 읽지 않으면서 무슨 글이건 어렵다고 떠들고 이론이 없다고 떠든다. 이론을 구축하려 들면 모르겠다고 하고 읽지도 않는다. 어쩌자는 것인가.

퀴어락 자원활동 고민

올 초 혹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퀴어락 상근자인 나의 소원은 자료 수집이 제 1순위였다. 퀴어락에서 무제한의 재정 여유가 생긴다면 자료를 왕창 구매하겠다고 고민했다. 수집 못 한 자료를 잔뜩 구입하고 싶었다. 몇 달 전부터 내 소원 1순위는 바뀌었다. 상근자 충원으로. 자료고 뭐고 간에 일단 상근자부터 충원하자.
올 초 혹은 상반기까지만 해도 그냥 천천히 퀴어락 자료를 내가 직접 다 등록하면 되겠거니 했다. 모든 자료를 파악하고 싶어하는 나의 성격이 이런 소망을 만들었다. 지금은 다 필요없고 상근자 충원을 꿈꾸고 있다.
올 초엔 분명 등록 대기 박스가 20박스 남짓이었고 컴퓨터 파일은 많지 않았으며 사진류는 수천장을 가늠할 뿐이었다. 지금은 등록 대기 박스가 25박스 남짓이며 컴퓨터 파일은 10기가 가량이며(상당수는 문서 파일이나 뭐 그런 것) 사진류는 수천장을 가늠하는데 암튼 늘어났다. 기존의 등록 대기 자료만 등록하면 될 수도 있겠지만 수집은 아카이브의 핵심 중 하나다. 그러니 끊임없이 수집하고 기증을 받았다. 많은 분이 기증해주셨는데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도 많은 기증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등록 대기 자료는 늘어나고 있으니 나의 소원은 충원이다.
그런 와중에 두 분의 자원활동가가 있었다. 한 분은 문서 152건을 스캔해주셨는데 이게 무척 크고 소중한 일이다. 퀴어락은 등록한 문서와 연속간행물을 모두 디지타이징(스캔하여 PDF로 변환)했으면 하는 오랜 계획이 있다. 자료 보존이란 차원에서도 무척 중요한 작업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계획으로만 있었는데 이걸 시작해주셨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다른 한 분은 퀴어락 소재 영상류를 모두 디지타이징해주고 계신다. 영상류의 디지타이징 역시 퀴어락의 오랜 계획이지만 엄두를 못 냈었다. 이걸 해주겠다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 그리하여 몇 년 내로 600여 건의 VHS가 DVD로 변환될 예정이다. 올 늦여름부터 시작하셨는데 이제 200번 가량을 작업하고 있다. 놀라운 건 재생이 안 되면 VHS의 부품을 수리해서 재생시키고 그 작업을 하면서 등록 내역과 실제 기록물이 일치하는지도 확인해주고 계신다. 정말 고마운 일을 해주고 계신다. 두 분 모두 고맙습니다!!!
두 분의 자원활동가를 겪으면서 깨닫기를 퀴어락이 자원활동가를 좀 더 수시로 받은 방식으로 운영 방향을 바꿀까란 고민을 하고 있다. 디지타이징 작업을 중심으로 자원활동가를 받는다면 무척 큰 도움이 될텐데라는 고민. 하지만 과거 문서를 꼼꼼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 말고는 퀴어락이 그에 대해 뭔가를 해드릴 수가 없어 쉽게 결정할 수 없다. 누군가가 자원활동을 하겠다고 먼저 연락을 준다면 어떤 대응은 하겠지만 퀴어락 적극적으로 자원활동을 수시로 받습니다,라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자칫 노동착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고민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라고. 어차피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순 없지만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