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락 자원활동 고민

올 초 혹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퀴어락 상근자인 나의 소원은 자료 수집이 제 1순위였다. 퀴어락에서 무제한의 재정 여유가 생긴다면 자료를 왕창 구매하겠다고 고민했다. 수집 못 한 자료를 잔뜩 구입하고 싶었다. 몇 달 전부터 내 소원 1순위는 바뀌었다. 상근자 충원으로. 자료고 뭐고 간에 일단 상근자부터 충원하자.
올 초 혹은 상반기까지만 해도 그냥 천천히 퀴어락 자료를 내가 직접 다 등록하면 되겠거니 했다. 모든 자료를 파악하고 싶어하는 나의 성격이 이런 소망을 만들었다. 지금은 다 필요없고 상근자 충원을 꿈꾸고 있다.
올 초엔 분명 등록 대기 박스가 20박스 남짓이었고 컴퓨터 파일은 많지 않았으며 사진류는 수천장을 가늠할 뿐이었다. 지금은 등록 대기 박스가 25박스 남짓이며 컴퓨터 파일은 10기가 가량이며(상당수는 문서 파일이나 뭐 그런 것) 사진류는 수천장을 가늠하는데 암튼 늘어났다. 기존의 등록 대기 자료만 등록하면 될 수도 있겠지만 수집은 아카이브의 핵심 중 하나다. 그러니 끊임없이 수집하고 기증을 받았다. 많은 분이 기증해주셨는데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도 많은 기증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등록 대기 자료는 늘어나고 있으니 나의 소원은 충원이다.
그런 와중에 두 분의 자원활동가가 있었다. 한 분은 문서 152건을 스캔해주셨는데 이게 무척 크고 소중한 일이다. 퀴어락은 등록한 문서와 연속간행물을 모두 디지타이징(스캔하여 PDF로 변환)했으면 하는 오랜 계획이 있다. 자료 보존이란 차원에서도 무척 중요한 작업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계획으로만 있었는데 이걸 시작해주셨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다른 한 분은 퀴어락 소재 영상류를 모두 디지타이징해주고 계신다. 영상류의 디지타이징 역시 퀴어락의 오랜 계획이지만 엄두를 못 냈었다. 이걸 해주겠다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 그리하여 몇 년 내로 600여 건의 VHS가 DVD로 변환될 예정이다. 올 늦여름부터 시작하셨는데 이제 200번 가량을 작업하고 있다. 놀라운 건 재생이 안 되면 VHS의 부품을 수리해서 재생시키고 그 작업을 하면서 등록 내역과 실제 기록물이 일치하는지도 확인해주고 계신다. 정말 고마운 일을 해주고 계신다. 두 분 모두 고맙습니다!!!
두 분의 자원활동가를 겪으면서 깨닫기를 퀴어락이 자원활동가를 좀 더 수시로 받은 방식으로 운영 방향을 바꿀까란 고민을 하고 있다. 디지타이징 작업을 중심으로 자원활동가를 받는다면 무척 큰 도움이 될텐데라는 고민. 하지만 과거 문서를 꼼꼼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 말고는 퀴어락이 그에 대해 뭔가를 해드릴 수가 없어 쉽게 결정할 수 없다. 누군가가 자원활동을 하겠다고 먼저 연락을 준다면 어떤 대응은 하겠지만 퀴어락 적극적으로 자원활동을 수시로 받습니다,라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자칫 노동착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고민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라고. 어차피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순 없지만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나의 성적선호/성적지향 관련 잡담

몇 사람이 직접 묻기도 했다. 트랜스젠더라면서 왜 레즈비언이라고 설명하느냐고. 여성이 아니라, mtf/트랜스여성이 아니라면서 왜 레즈비언으로 스스로를 설명하느냐고. 무슨 의미냐고 궁금해했다. 나는 설명하려고 했지만 분명하게 그 의미를 전달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를 비이성애자로 설명하기위해 레즈비언이란 단어를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레즈비언이 아니라 바이나 이성애자로 설명해도 무방했다.
이성애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나의 이성애와 통용되는 이성애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다. 통용할 수 없는 간극이라고 느꼈다. 보통의 이성애는 여성과 남성의 연애를 지칭한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나를 이성애자라고 설명한다면 그 말은 나를 결국 여성으로, 나의 성적선호는 남성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나는 이성애의 이성이 나와 다른 젠더를 지칭하는 단어로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누구도 나와 같은 젠더일 수 없다. 동시에 누구와도 나는 같은 젠더일 수 있다. 이것을 표현하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레즈비언이란 범주를 선택했다.
바이섹슈얼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미국 바이섹슈얼 단체 바이섹슈얼리소스센터는 양성애를 나와 같다고 여기는 젠더 및 나와 다르다고 여기는 젠더를 향한 비/성적, 비/낭만적 끌림이라고 했다(‘비’는 나의 교정이다). 그렇다면 나는 바이섹슈얼에 더 가깝다. 물론 사람의 범주와 삶은 정체성 정의에 부합하며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과 무관하게 실천되고 체화된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반드시 레즈비언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이성애자기도 하며 바이섹슈얼이고 무성애자기도 하며 그 무엇도 아니기도 하다. 그냥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