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이어받기

이맘 블로그에서 읽고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청연의꿈님이 루인을 지적했더라고요. 그래서 받았어요.

1. 안녕하세요.

안녕한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혹은 어떤 안녕을 묻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정말 모르는 것뿐이네요. 루인의 무식은 안녕하답니다. 🙂

2.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밝히기 싫으시다면 닉넴이라도 알려주세요)

루인이라고 해요.

3. 그 이름(닉네임)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전적인 의미와는 상관없이 변화하다, 변태하다 등으로 해석하고 있고요.

4. 그렇게 짓게 된 계기?

루인이란 키워드를 클릭하시면 “Nina Nastasia의 [Run To Ruin]“이라고 적혀있어요. 몇 해 전,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시간을 위로해준 음악이 있는데, Muse와 Nina Nastasia예요. 그 시간을 기념한다는 의미로 지은 닉이죠.
[#M_ +.. | -.. | Nina Nastasia의 음악이 궁금하시면
Nina Nastasia – Ugly Face
Nina Nastasia – Ocean
Nina Nastasia – That’s All There Is
Nina Nastasia – On Teasing
Nina Nastasia – Underground
Nina Nastasia – Stormy Weather
Nina Nastasia – We Never Talked
지금도 너무 사랑하는 음악이죠. 항상 위로해주고 듣고 있으면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지거든요._M#]

5. 성적 평균은 약 몇?

중, 고등학생 시절엔, 반에서 10등 전후의 사각지대 성적. 못한다고 찍히지도 않지만 잘하지도 않은. 애매해서 모두의 관심 밖에 위치하는 아주 유용한.
대학은, 평점평균은 못 밝히고 A+부터 D0까지 분포가 다양해요. 흐흐

6. 휴대폰 액정에는 뭐라고 써있습니까 그리고 그 휴대폰 제작회사 이름은?

제작회사는 샘숭. 큭. (이맘을 따라했어요;;)
액정에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다.” 정희진 선생님의 책에 나오는 구절이죠. 너무너무 좋아해요.

7. 성별은?

아마, 이 질문 자체로도 소논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사한 주제로 서너 편의 소논문을 쓴 적도 있고요. 그만큼 문제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는 질문으로 다가오거든요.
루인은 루인의 성별(젠더)을 몰라요.

8. 당신이 좋아하는 것(아무거나)

종일 이불 속에서 뒹굴기, 뜨거운 핫초코의 바다에서 헤엄치기
울기, 궁상떨기, 비 오는 날 비 맞기, 숨책에 숨기
Nina Nastasia, Muse, Sole, Themselves, DoseOne, Portishead, Keith Jarrett, Eric Satie, 조용필, 최재훈, 장필순, 이승환, 이승철, 이상은, t.A.T.u … 한때 그리고 지금도 루인을 위로하는 음악들
새로 산 책 마지막 장에 날짜와 산 곳, “Run To 루인”이라고 적는 일
지지, 나스타샤, 玄牝, 이랑, 루인과 세미나를 함께 하는 사람들(너무 고마운 사람들)
몸을 자극하는 새로운 깨달음들, 앎들, 이런 쾌락들
정희진 선생님, 벨 훅스bell hooks,
매일 같이 똑같은 반찬과 매일 맛있는 밥을 해주는 검은색 뚝배기, 트랜스
달콤한 베지밀 비, 푸짐한 공시디와 스노우캣
매니큐어를 바르는 순간, 그리고 그 냄새
사과, 수박, 과일들, 소통할 수 있는 공간들, 그런 시간들
그리고 J

9.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현재의 욕망이 “부당한 욕심”이 아니라 즐거운 쾌락임을.
3초 전의 루인과 안녕하고 작별하기

10. 당신의 성격

INFP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처녀자리, 사자자리
하지만, 루인이 인지하는 루인의 성격과 다른 사람들이 말해주는 성격 사이엔 많은 괴리가 있어요.

11. 당신이 제일 무서워 하는 것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침묵. 물론 다른 사람은 루인의 감각 범위에 있는 사람에 한정.
무섭다기 보다는 그 순간을 견디기 힘들어함.

12.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

루인이라는 키워드를 누르면 그림이 나와요. 흐흐

13. 당신이 제일 싫어하는 캐릭터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어서 안달하고 쿨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인간

14. 당신이 제일 즐겨보는 만화

즐겨 읽는 건 아니지만, 아트 슈피겔만의 [쥐](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링크는 1권만)

15. 이 문답이 어땠습니까. 즐거웠으면 좋겠군요.

좀 더 자극적이었으면 좋겠어요. 푸훗.

16. 여기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바톤 이어받을 5명?

소심한 루인은 누군가를 지정하지 못해요. 그냥,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이라고 할게요.;;;

낯선 말하기와 편한 글쓰기

일전에 이랑의 한 친구랑 무슨 얘기를 하다가, 루인은 일단 글이 길어서 다른 이름을 써도 쉽게 알 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작년 봄 즈음, 이랑 종이매체를 발간하겠다고 글을 썼을 때, 여러 번 들은 얘기 중 하나는, “길다”였다. 웹상의 짧게, 짧게 쓰는 글에 익숙한 사람들을 가정하면, 길긴 길었다. (그림 한 장 없는 글이었으니 그 만큼 더 길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 글만이 아니라 여기에서도 루인이 쓰는 글은 “긴” 편이다. 맞춤법을 확인하기 위해 HWP에서 교정을 하는 편인데, 기본적으로 한 페이지는 넘고 두 세 페이지에 달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길긴 긴가보다.

몇 해 전, 생전 처음으로 인터넷의 한 카페에 가입하고 나름대론 열심히 활동을 했었다. 가입인사도 쓰고 종종 글도 올렸다. 카페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날,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카페에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참 말이 없네요, 였다. 글로는 말이 참 많은데 정작 목소리로 발화하는 자리에선 너무 조용해서 다른 사람 같다고 착각이 들 정도라는 것이었다.

인터넷만 접속하면 “늑대의 탈을 쓴 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루인에겐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구분이 별로 없다.

이런 현상, 온라인으론 말(글)을 많이 하는데 오프라인에선 말 수가 적은 편인 건, 이랑 등의 다른 모임에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말 수가 적다고 착각하는 건지도 모른다-_-;;) 낯가림이 심하니 익숙하지 않은 곳에선 좀 더하달 뿐 그렇다고 익숙한 곳에서 말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건 아니다. 어떤 면에선, 두어 마디만 해도 “쟤는 말이 참 많아”라는 소릴 들을까봐 두려워하는 편이다.

다만, 루인은 글로 표현하는데 더 익숙하고 더 편하게 느낄 뿐이다. 그렇다고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다. 계속해서 노력할 뿐, 못쓰는 편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지도 모른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갈망으로 엄청 노력했지만, 간접적으로 글쟁이(여기선 문학에 한정)로 살긴 어렵겠단 얘기도 들었다. 그 말에 화도 나고 열등감도 느꼈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바람을 버렸을 때, 그럼에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로 안도감을 느꼈었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지속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몸의 꿈틀거리는 언어를 직조하고 발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말 수가 적은 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목소리로 말하겠다는 욕망 보다는 문장으로 쓰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문자로 표현하고 있으면 목소리로 표현할 때 보다 더 많은 내용이 떠올라서 즐겁다. 그 모임/사람이 아무리 오래되고 익숙하다 해도 얼마간의 어려움 혹은 긴장감이 생겨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중간에 끝내는 경우가 많지만 루인의 확장인 玄牝에서 역시나 루인의 확장인 나스타샤와 [Run To 루인]과 놀 때면 긴장감으로의 수축되는 정도가 덜하고 훨씬 편하다. (목소리로 소통하는 자리에선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로의 갈등이 많아서 더 어려워하기도 한다. 일테면 루인이 사는 공간을 玄牝으로 말 할 것인가 그냥 집으로 말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등인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玄牝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구와도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보다는 메일을 통해 얘기를 주고받길 더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시간을 가지고 정리하고 글을 쓰는 시간 동안 다시 정리하며 소통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을 나누는 시간은 길어지지만 그 만큼 할 수 있는 내용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리플을 다는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글을 읽으면 그 자리에서 리플을 달고 싶기도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즈음, 쓰고 싶은 리플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떠오른 리플은 종일 몸에 남아서 여러 가지 문장으로 노는데, 이렇게 놀다보면 결국 며칠이 지나고 리플을 쓰고 싶은 글은 한참 뒤에 있고, 며칠 지난 글에 리플 쓰기 ‘민망’해서 그냥 쓰지 않고;;;

애드키드님의 글을 읽다가 요 며칠 몸속을 돌아다니던 문장들이 떠올랐다. “아하, 맞아맞아”하면서 읽고나서, 시간이 지나자 떠오른 문장들이 조합되어 다가왔다. 두어 문단이면 될 줄 알았는데 길어졌다.

커밍아웃: 루인에게 쓰는 편지

어째서 커밍아웃의 즐거움보다 그 두려움을 먼저 배운 것일까, 하는 몸앓이를 하곤 한다. 그것이 루인만의 특수한 상황일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루인이 접한 책이나 글 중엔, 커밍아웃의 즐거움,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커밍아웃을 한 이후 겪은 아웃팅이나,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 혹은 주변의 혐오증으로 인해 커밍아웃을 못하고 숨기고 산다는 얘기들이 많다. 특정 누군가에게만 커밍아웃을 했는데, 하지도 않은 혹은 하기 싫었던 사람들도 알고는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봤다는 사례. 회사나 단체에서 일하는데 커밍아웃 이후 쫓겨났다는 사례. 가끔씩은 아웃팅을 협박하며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신문에 나기도 한다(이런 기사의 리플은 한 호흡 멈추고 읽는다). 커밍아웃을 고민하기 전부터 루인이 먼저 접한 정보는 커밍아웃 이후의 부정적인 사례들이 대다수였다.

그런 루인은 무엇이 가장 두려웠을까. 루인에게 가장 힘들었던 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커밍아웃보다는 루인에게 하는 커밍아웃이었다. 루인에겐 자신에게 하는 커밍아웃이 가장 힘들었다. 왜? 예전에 한채윤씨가 “동성애는 서구에서 수입된 거라고 하지만 정말 수입된 건,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혐오증이다”라고 하셔서 무릎을 치며 좋아했던 흔적이 몸에 있다. 적어도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좋아하는 대상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 어느 쪽도 아니든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좋아하는 감정으로 느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과거를 해석하는 일에 용기가 필요했고 잊혀져서 발굴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10대들에게 이반이 “유행”이라는 식의 기사를 접하곤 하는데, “유행”이기 전에도 이런 감성은 풍성했다. 수입되었다면 수입된 건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혐오증”이다.

루인이 접한 글에서 아웃팅의 두려움이나 커밍아웃 이후의 부정적인 사례들이 많은 것은 이것과 관련 있을까. 하지만 커밍아웃 이후 무조건 부정적인 일만 있는 것은 아닌데.

이건 루인이 주로 지내는 공간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니 루인의 이성애혈연가족들과 그 친족들은 [Run To 루인]을 모른다. 알리고 싶지도 않고(동거란 주제만으로 얼굴 표정을 바꾸며 경악하는 모습을 접한 적이 있다). 하지만 [Run To 루인]을 알면서 루인을 아는 사람에게라면 커밍아웃한 것이 오히려 ‘자유’롭고 훨씬 편하다. 적어도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서 거짓말을 할 필요 없고, 남의 이야기처럼 말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남의 사례인양 말하는 것만큼 불편하고 괴로운 일도 없다. 스스로를 기만한 느낌이랄까. 루인의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들과 섹슈얼리티와 관련해서 얘기하며 남의 이야기인양 말하고 나면, 루인에 대한 불쾌함으로 며칠이고 앓는다.

[Run To 루인]을 통해 커밍아웃을 한 후 가장 좋았던 건, 스스로를 속일 필요가 없어진 점이다. 모든 말하기는 협상하는 말하기이기에, 닿은 사람 모두에게 커밍아웃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소통하거나 공유하고자 한다면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이 현재의 감정이다. 이반queer나 비’이성애’, 트랜스와 관련해서 글을 쓸 때, 커밍아웃을 한 상태에서 쓰는 것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쓰는 것은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 자기 삶을 남의 이야기처럼 쓴다는 것의 괴리, 글을 통해 들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 끊임없는 자기 검열 등에서 어느 정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은 커밍아웃만의 즐거움일 것이다. 아웃팅이 두렵다면 커밍아웃하는 것이 오히려 힘이 된다.

커밍아웃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커밍아웃을 해서 힘들었다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즐겁다는 얘기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커밍아웃을 하겠다, 안 하겠다가 아니라 커밍아웃 자체가 공포가 되지 않길 바라니까. 그래서 커밍아웃이 (얼마간의) 두려움 속에서도 좀더 즐겁고 좋은 일로 여겨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