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즈음, 이랑 종이매체를 발간하겠다고 글을 썼을 때, 여러 번 들은 얘기 중 하나는, “길다”였다. 웹상의 짧게, 짧게 쓰는 글에 익숙한 사람들을 가정하면, 길긴 길었다. (그림 한 장 없는 글이었으니 그 만큼 더 길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 글만이 아니라 여기에서도 루인이 쓰는 글은 “긴” 편이다. 맞춤법을 확인하기 위해 HWP에서 교정을 하는 편인데, 기본적으로 한 페이지는 넘고 두 세 페이지에 달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길긴 긴가보다.
몇 해 전, 생전 처음으로 인터넷의 한 카페에 가입하고 나름대론 열심히 활동을 했었다. 가입인사도 쓰고 종종 글도 올렸다. 카페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날,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카페에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참 말이 없네요, 였다. 글로는 말이 참 많은데 정작 목소리로 발화하는 자리에선 너무 조용해서 다른 사람 같다고 착각이 들 정도라는 것이었다.
인터넷만 접속하면 “늑대의 탈을 쓴 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루인에겐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구분이 별로 없다.
이런 현상, 온라인으론 말(글)을 많이 하는데 오프라인에선 말 수가 적은 편인 건, 이랑 등의 다른 모임에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말 수가 적다고 착각하는 건지도 모른다-_-;;) 낯가림이 심하니 익숙하지 않은 곳에선 좀 더하달 뿐 그렇다고 익숙한 곳에서 말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건 아니다. 어떤 면에선, 두어 마디만 해도 “쟤는 말이 참 많아”라는 소릴 들을까봐 두려워하는 편이다.
다만, 루인은 글로 표현하는데 더 익숙하고 더 편하게 느낄 뿐이다. 그렇다고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다. 계속해서 노력할 뿐, 못쓰는 편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지도 모른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갈망으로 엄청 노력했지만, 간접적으로 글쟁이(여기선 문학에 한정)로 살긴 어렵겠단 얘기도 들었다. 그 말에 화도 나고 열등감도 느꼈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바람을 버렸을 때, 그럼에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로 안도감을 느꼈었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지속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몸의 꿈틀거리는 언어를 직조하고 발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말 수가 적은 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목소리로 말하겠다는 욕망 보다는 문장으로 쓰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문자로 표현하고 있으면 목소리로 표현할 때 보다 더 많은 내용이 떠올라서 즐겁다. 그 모임/사람이 아무리 오래되고 익숙하다 해도 얼마간의 어려움 혹은 긴장감이 생겨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중간에 끝내는 경우가 많지만 루인의 확장인 玄牝에서 역시나 루인의 확장인 나스타샤와 [Run To 루인]과 놀 때면 긴장감으로의 수축되는 정도가 덜하고 훨씬 편하다. (목소리로 소통하는 자리에선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로의 갈등이 많아서 더 어려워하기도 한다. 일테면 루인이 사는 공간을 玄牝으로 말 할 것인가 그냥 집으로 말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등인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玄牝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구와도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보다는 메일을 통해 얘기를 주고받길 더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시간을 가지고 정리하고 글을 쓰는 시간 동안 다시 정리하며 소통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을 나누는 시간은 길어지지만 그 만큼 할 수 있는 내용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리플을 다는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글을 읽으면 그 자리에서 리플을 달고 싶기도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즈음, 쓰고 싶은 리플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떠오른 리플은 종일 몸에 남아서 여러 가지 문장으로 노는데, 이렇게 놀다보면 결국 며칠이 지나고 리플을 쓰고 싶은 글은 한참 뒤에 있고, 며칠 지난 글에 리플 쓰기 ‘민망’해서 그냥 쓰지 않고;;;
애드키드님의 글을 읽다가 요 며칠 몸속을 돌아다니던 문장들이 떠올랐다. “아하, 맞아맞아”하면서 읽고나서, 시간이 지나자 떠오른 문장들이 조합되어 다가왔다. 두어 문단이면 될 줄 알았는데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