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육식을 하겠다면 같이 밥 먹으러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날도 오겠지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씩은,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사람 앞에서 이반queer/트랜스 혐오적인 발언을 농담이나 유머랍시고 하는 것과 육식하는 자리에 같이 있는 것에 별 차이를 못 느낄 때가 있거든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물론, 루인은 같이 밥 먹고 싶을 만큼 유명인도, 대단한 사람도, 매력적인 인간도 아니니 결국 혼자 밥을 먹겠다는 얘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테고, “고립”을 자처하는 걸 수도 있겠지요(채식을 한다는 말에 “사회생활 어떻게 하려고?”란 얘기를 참 많이도 들었거든요). 혼자 밥 먹는 거야 익숙하거니와 좋아하는 일이니 문제될게 없겠죠. 어려운 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론, 채식주의를 얘기하는 건, 페미니즘을 얘기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느껴요. 페미니즘이 옳은 건 알겠는데 그래도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거나 활동 하는 건 싫다는 반응과 채식이 좋은 건 알겠지만 실천하기엔… 하며 말을 줄이는 반응은 너무 닮아 있더라고요. 아, 다른 세계관과의 만남엔 이런 머뭇거림이 따르기 마련이죠. 하지만 채식이 좋은 건지, 옳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누구랑 밥을 먹느냐가 문제이기도 할 거예요. 어떤 모임은 고기를 구워먹는 자리라도 참석하겠지만 어떤 모임은 사찰음식을 하는 곳이라도 참석하기 싫을 테니까요. 하지만 언젠간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육식을 한다면 함께 밥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날이 올 거란 예감이 들어요.
[#M_ +팁.. | -.. | 작년 어떤 자리에서, 채식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어려워 한다는 얘길 들었어요. 당황했어요. 마치 채식을 한다는 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굶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했거든요. 루인은 이런 고민을 별로 안 했었더래요. 뭐, 다른 이유로 단식을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아님, 처음부터 비건vegan이란 “완전” 채식을 지향했기에 그런 건 아닐까 해요. (비건이나 과식果食주의자Fruitarian야 말로 “순수”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란 말은 당혹스러워요.) 그럴 필요가 뭐 있겠어요. 그냥 처음엔 “붉은 고기”를 안 먹고, 고기 없는 생활이 몸에 익으면 생선을 안 먹고, 하는 식으로 조금씩 바꿔 가면 되죠. 뭐, 6개월 정도 채식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기가 너무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죠. 스님이 냉면 그릇 바닥에 고기 깔고 먹는다는 “농담”도 있는데요. 그리곤 다음 날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죠. 정치학을 어떻게 이렇게 가볍게 말 할 수 있느냐고 화낼 수도 있겠지만 뭘 그렇게 어렵게 해요. 그냥 몸이 즐거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볍게 하면 되지. 채식을 한다는 건, 몸의 즐거움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에서 출발하는데(어디까지나 루인의 해석) 몸이 즐겁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 말이 채식은 취향이란 의미는 아니예요. 조금씩, 조금씩 몸이 즐거운 방향으로 실천하는 거지, 억지로 해서 괴로울 필요가 없다는 얘기예요. 어차피 채식을 시작하고 관계의 정치학으로 고민한다면, 다시는 육식으로 돌아가기 힘들 거라 믿으니까요.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