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혼미해지는 소식

기말 페이퍼 기간이라 블로깅이 뜸한 와중에 매우 짧게 남겨야 하는 멘붕 소식.

집주인이 길고양이에게 호의적이진 않아도 무덤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구청에 연락해서 포획하겠다고 내게 알리고 갔다. 그나마 집 근처에서 밥 먹는 고양이가 나와 사는 고양이인 줄 알고, 내일 구청에 연락해서 사람 부를 예정이니 집 밖에 내놓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온갖 고민과 상념이 몸을 흔들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나는 특별한 조치도 못 한다. 내일 밤까지 페이퍼를 마감해야 하는데 이제 초고를 쓰고 있다. 다른 페이퍼에 너무 힘을 쏟은 덕에 지금 쓰는 페이퍼엔 그렇게 많은 힘을 싣지 못 하고 있달까… 아아..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어리석은 것이었을까…

[고양이] 함께 살고 적응하고, 다시 살아가고: 리카에게

1년이 흘렀습니다. 리카가 떠난지 1년. 우연히 기회가 되어 리카를 기억하는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얼추 일주일 전에 공개되었지만 제 블로그에선 오늘, 리카 1주기에 맞추어 공개합니다.
출처: www.family-b.net/27 언니네트워크+가족구성권연구모임. <비정상 가족들의 비범한 미래기획>
위 주소로 가시면 예쁘게 편집한 모습으로 읽을 수 있으니 가급적 위 주소에서 읽어주세요. 🙂
함께 살고 적응하고, 다시 살아가고: 리카에게
-루인(트랜스젠더/퀴어 연구활동가, runtoruin@gmail.com )
서둘러 모래와 화장실, 사료를 주문했다. 기대는 했지만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 줄은 몰랐다. 길고양이를 임보하고 있다는 연락을 전해들었고, 고민했다. 두려웠고 두근거렸다. 망설이다가 너무 늦지 않게 연락을 했다. 서둘러 필요한 물품을 구매했다. 그렇게 묘연(猫緣)을 준비했다.
물품을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문제였다.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었다. 꽤 오랜 바람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엔 준비가 없었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만화책,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을 설명한 책 한 권 읽은 적 없을 정도로 내겐 막연함 뿐이었다. 그저 물품을 사고, 누군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정도의 각오만 있다면 충분한 줄 알았다. 그렇게 덜컥, 말 그대로 덜컥, 고양이가 내게 왔다.
내게 온 첫날 리카는 곧장 집을 탐사 했다. 낯선 곳이라 구석에 숨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집 전체를 돌아다니더니 나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잠시 앉아 있다가 내 팔을 앙, 물곤 내려갔다. 리카는 우아했고 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밤엔 달랐다. 밤마다 우다다 달렸고 난 잠을 잘 수 없었다. 한창 바쁘던 그때 나는 밤을 거의 뜬 눈으로 보내곤 했다. 잠이 들만 하면 리카는 달리거나 울었다. 밤에 자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깨지 않으려고 했지만 혹시나 아파서 우는 것일까봐,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푸석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헤벌쭉 웃는 얼굴이기도 했다. 좋았다. 내 표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헤벌쭉 웃으며 다녔지만 함께 사는 것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혼자 산 나는 옷을 어떻게 갈아 입어야 할지, 샤워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한동안 리카가 날 볼 수 없는 곳에서 옷을 갈아 입었고 샤워 후 옷을 다 챙겨 입고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내게 고양이는 함께 사는 어떤 존재였다. 그랬기에 리카와의 동거가 사람과 동거하는 것처럼 낯설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리카는 임신한 고양이였다. 고양이와 생전 처음 사는데 벌써 출산 경험이라니… 길고양이라 몸이 부은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럴리 없었다. 배가 너무 빵빵해서 내게 오고 1~2주면 출산할 것만 같았다. 몇 주를 오늘내일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서야 출산했다. 리카는 내 무릎 위에서 출산하려고 했다. 출산을 앞두고 내가 마련해준 자리가 아니라 내 무릎 위에서 힘을 주었다. 난 서둘러 리카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출산이 끝난 후 다시 나의 무릎 위로 올라와 골골거리며 한동안 온기를 나눴다. 그렇게 여덟 아기 고양이가 태어났다.
출산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리카와 나의 관계는 나빠지고 있었다. 나의 잘못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해 일 년 중 그 시기가 가장 바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밤 늦게 돌아왔다. 여덟 꼬물이를 돌보는 리카의 어려움, 스트레스를 공유할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은 핑계다. 리카가 아이를 돌본다면 나는 리카와 정서적 교류를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늦게 귀가했기에 한 시간이라도 리카와 함께 하려고 했지만, 고백하건데 그땐 여덟 아깽이가 더 귀여웠다. 리카가 아기들에게 젖을 주는 동안 밥과 물을 마실 수 있게 작은 접시에 밥과 물을 담아 직접 먹이기도 했지만 이 정도론 부족했다. 리카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변했고.. 아니 내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어떤 존재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 한 나는 이 긴장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 출산한 존재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고 또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 해야 하는지 몰랐다. 내가 마음을 혹은 몸을 열어야 함을 몰랐다. 그 누군가의 습관에 일방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조절해야 했는데 그걸 몰랐다. 난 신경질을 감추지 못 한 상태로 리카에게 최선을 다하는 척했다. 그것을 눈치 못 챌 리카가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우리의 관계는 안정기에 들어섰다. 분양이 끝난 다음의 일이었다. 아기고양이에게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아이를 분양하며 가끔은 울었다. 한 번은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그렇게 이별하며 리카와 나, 그리고 리카의 딸 바람만 남았다. 그제서야 내게 여유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혹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리카의 눈을 보며 “우리 많이도 말고 일단 20년만 같이 살자”고 말하곤 했다. 집고양이 평균 수명이 15년이라고 하니 20년이면 과한 욕심도 아니잖은가. 다른 많은 집사들이 그렇게 믿듯, 별 다른 일 없이 오래오래 함께 살기를 바랐다. 우리 셋, 오래오래 함께 살기로 약속한 우리 셋.
리카는 애교가 많고 또 내 손을 많이 요구했다. 내가 집에 있을 때면 수시로 놀자고 울었고,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있길 바랐다. 내가 집을 나서면 문 앞까지 나와 가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집에 들어갈 때면 자다 깬 얼굴로 달려나와 나를 맞이했다. 외출할 때면 나가지 말라는 표정이었지만 쓰레기를 버리러 1분 가량 나갈 때면 야옹야옹, 울곤 했다. 어디가냐며 울었다. 너무 서럽게 울어 미안할 정도였고, 또 기쁘기도 했다. 잘해주는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날 찾는 것일까? 리카가 바라는 만큼 함께 놀지도 않고 리카가 바라는 음식을 양껏 주는 것도 아닌데… 리카는 언제부터 나를 자신의 동거인으로, 동반종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내게 리카는 그냥 어느 순간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리카를 내 일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해서가 아니었다. 함께 살면서 그냥 어느 순간 그렇게 되었다. 공간을 공유하고 생활을 함께 하며, 그 역사가 켜켜이 쌓이면서 우리는 서로의 일부가 되었다.
역사를 공유했지만 난 리카가 하는 말, 고양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싶진 않았다. 처음엔 궁금했다.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가 없어 사람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내가 리카에게 충분히 잘 해 주는 것이 아니기에 무섭기도 했다. 내가 충분히 잘 해줄 수 없기에 리카가 어떤 얘기를 할지, 어떤 불만을 토로할지 걱정이기도 했다. 그냥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 편했다. 적어도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두렵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 간의 대화가 아닌 다른 방식의 언어가 더 좋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상대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의 대화가 좋았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리카와 살면서 깨달았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소통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 이것은 역사를 쌓아가며 각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깨달았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 과정에서, 인간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나의 말을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빚은 비극은 아닐까를 고민했다. 소통할 수 있다는 기대가 관계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은 아닐는지.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은 관계를 더 편하게 만들고 (역설적으로)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함께 살며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나중에 더 잘 해 줄게’라고 적당히 미래를 약속하며(혹은 현재를 유예하며) 우리 셋은 잘 어울렸다. 시간은 흘렀고 일 년을 넘겼다. 고양이와 일 년 넘게 살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약속한 20년 중 고작 일 년을 함께 했지만, 그 일 년은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는 계기였다.
고양이와 가족을 꾸린다는 것, 그것은 결국 일방적으로 내가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주변 사람들 모두 내가 고양이와 살면서 많이 변했다고 얘기했다. 긍정적 의미에서의 변화였다. 수다가 늘었고 삶에 여유가 생겼다. 고양이와 살며 지출하는 적잖은 비용으로 경제적 여유는 줄었지만, 삶엔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스몄다. 진부한 얘기지만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아니라 고양이가 나를 돌보고 내가 나를 돌보는 일이다.
2011년 5월 어느 날 일주일 정도 리카가 밥을 안 먹었다. 뒤늦게 병원에 데려갔고 입원을 했다. 의사는 간이 없다고 했다. 급성이 아니라 일 년 이상 진행된 것 같다고 했다. 사흘 가량을 입원했다. 매일 병문안을 가며 리카가 깨어나길 바랐다. 리카의 얼굴을 보며 “우리 함께 살기로 했는데, 얼른 일어나야지”라고 말하며 좋은 생각만 하려 했다. 행여나 안 좋은 나의 마음이 전해질까봐 마냥 괜찮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면서도 리카를 붙잡고 있는 것이 나의 부당한 욕심은 아닐까 갈등했다. 리카는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운데 나의 욕심이 리카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그래서 미안했다. 잘 해준 것도 없는데 아픔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만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있는 날, 그 햇살 뜨겁던 날 오전 11시 20분 경, 리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 고양이별로 서둘러 떠났다. 리카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 해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리카를 떠나보내는 시간을 겪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두 개 뿐이었다. 미안하고 고마워. 화장장에 걸려 있는 많은 메모장에도 같은 말 뿐이었다.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더 사랑하지 못 해서, ‘다음에’라고 미뤄서 미안했다. 한창 바쁠 때 놀자고 하면 조금은 짜증난 목소리로 “나중에”라고 말했던 것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때 다만 1분이라도 시간을 냈다면 좋았을 텐데. 그 1분이 그렇게 대단한 시간도 아닌데.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다. 우리의 관계는 법적 해석에선 가족도 아니고 입양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다. 하지만 관계와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가족이며 서로를 입양한 사이기도 하다. 리카의 빈 자리를 바람과 내가 함께 채우고 또 애도한다. 비록 이 애도는 소수의 사람과만 공유할 수 있는 것이지만, 공유할 수 있는 사건이란 점에서 공동체의 일이기도 하다. 나는 반복해서 글을 쓰고 얘기를 하며 공개적 사건으로, 애도할 수 있는 사건으로 만들고 있단 점에서 리카는 내가 맺은 공동체 혹은 가족의 구성원일 수밖에 없다. 리카가 내 가족임을 확증하는 행동은 우리가 함께 살았던 시간을 공론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족만이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작업을 하는 관계가 가족/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리카, 안녕. 그리고 안녕.
(리카를 입양하기 직전부터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든 7개월 가량의 이야기는 ricathecat.tistory.com 에 있고, 그 이후의 일상과 리카를 떠나보냈을 때의 이야기는 www.runtoruin.com 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 바람, 융, 그리고 길고양이 일상

01
요즘은 바람의 수난시대입니다..랄까. 주말마다 집을 장시간 비우고, 수업준비로 바쁘다며 집을 비울 때도 많아요. 그래서 바람은 조금 화가 난 표정입니다. 물론 집에 있을 땐 바람과 최대한 많이 스킨십을 하려고 합니다. 자고 있을 때도 괜히 깨워서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고..(*사악*) 집에서 한창 작업을 하고 있을 때도 바람이 부르면 돌아보거나 머리와 뱃살을 한 번이라도 쓰다듬어 주려고 합니다.
아.. 이건 예전에도 하던 일이네요..;;; 암튼 6월 즈음까지는 이렇게 지낼 수밖에 없어 미안하달까요..
그리고 지금은 털갈이의 시간. 털이 풀풀 날리는 시간. 방 청소를 하고 나면 바로 털뭉치가 바닥에 굴러다닙니다. ;ㅅ;
02
글로 썼는지 기억이 안 나니 다시 쓸까요?
부산에 일주일 정도 머물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저의 걱정은 바람에게 향해 있는 만큼이나 길고양이 네트워크에도 향했습니다. 배 곪고 있으면 어떡하지.. 다 떠났으면 어떡하지… 집으로 돌아온 날, 집 근처에선 얼룩이2가 저를 보고 야옹,하고 울더라고요. 종일 절 기다린 것은 아니겠지만 그 순간은 조금 감동이었습니다. 몸 한 곳이 짠하기도 했고요. 근처 옥상에서 일광욕을 하던 시베리안 허냥이는 저를 뚫어져라 보더니 후다닥 달려오더라고요. 평소 이런 사이가 아닌데 말이죠. 미안했고 고마웠습니다. 일주일 자리를 비우기 전에 절 찾은 고양이가 그대로 다 저를 찾았습니다. 물론 우리의 거리는 여전하고요. -_-;; 흐흐. 밥 줘봐야 다 소용없지만 길고양이와 사람의 거리는 멀수록 좋은 거죠. 한국이잖아요…
03
봄이 오자 융이 거의 매일 아침 저를 기다립니다. 며칠 이러다가 말겠지 했습니다. 근데 거의 매일 아침, 밥 주러 나가면 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융은 괜히 몸을 쭈욱 늘이며 릴랙스를 하거나 문과 벽에 부비부비하거나. 흐흐. 그러며 집 안으로 들어올 때도 많습니다. 물론 거실까지는 아니지만 신발을 두는 현관까지는 들어왔다가 나가곤 해요.
재밌는 것은 바람의 반응입니다. 바람은 으아앙, 울면서 경계합니다. 꼬리를 잔뜩 부풀리곤 위협하죠. 그래서 길냥이에게 밥을 주고 나면 바람을 많이 다독여야 합니다. 평소라면 저를 피해 후다닥 도망가곤 하던 바람도, 이때만은 저를 기다립니다. 안아 달라고. 🙂
04
어느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얼룩이1이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던 저와 얼룩이1은 눈이 따악 마주쳤습니다. 평소라면 얼룩이1은 후다닥 도망갔을 텐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물론 저도 조심했고요. 일부러 뒤로 물러났고 눈을 마주쳤다 피하길 반복하며 딴청을 피웠으니까요. 얼룩이1은 그대로 가만히 있더니 저에게 고양이 키스를 날렸습니다. 눈을 깜빡, 깜빡. 아아… ㅠㅠㅠ
물론 밖에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제가 그 자리에 있는 한 얼룩이1이 편할 것 같지도 않아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후다닥 피했지만요. 흐흐.
05
얼룩이1과 얼룩이2는 정말 친한 것인지 자매/남매/형제 사이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거의 항상 함께 다닙니다. 얼룩이2가 사람을 좀 덜 가리는 편이고요.
요즘 날이 많이 더워 집에 있을 때면 문을 열어 놓고 지내곤 합니다. 그럴 때면 얼룩이1과 얼룩이2가 같이 와선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럴 때면 얼마나 귀여운지! 밥 먹는 뒷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06
루스는 이제 안녕인 것일까요?
지난 추운 겨울엔 거의 매일 루스와 만났습니다. 그땐 융을 만나기 어려워 걱정할 정도였지요. 봄이 온 뒤로 루스를 만날 수 없습니다. 발정기가 나면서 어딘가로 떠난 것일까요? 아니면… 아닙니다. 좋게 생각해야죠. 분명 다른 어디 좋은 곳으로 떠난 것이라고 믿을게요. 새로운 영역을 찾은 거라고 믿을게요.
07
며칠 전 새벽. 고양이가 요란하게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결에 발정기인가..라며 다시 잠들기를 청했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에 와서 이제까지 들은 적 없는 그런 요란한 소리였습니다. 발정기의 울음 같지도 않았고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소리가 요란해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창문을 열고 밖에 보니, 이웃집 지붕에서 고양이 둘이 대치상태였습니다. 한 아이는 시베리안 허냥이, 다른 아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흰 양말을 신은 아이 같은데 루스는 아닌 듯했습니다. 둘은 서로를 위협하듯 요란하게 울다가 맞붙었습니다. 조금 무서웠습니다. 정말 살벌하게 상대를 물었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선명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고양이는 목소리를 죽였고, 허냥이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실, 둘이 싸우는 순간 종이를 뭉쳐 던질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주의를 돌리거나 어떻게든 그 상황을 중지시키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함부로 개입할 수는 없다 싶어 그냥 쓰읍,이란 소리만 냈습니다.
둘은 대치를 계속했지만,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고양이는 낮게 울면서도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습니다. 전 고양이가 싸우다가 한 아이가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도망갈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몇 걸음 물러섰다가 낮게 울며 옆으로 눕고, 허냥이가 위협하듯 울며 다가가면 다시 뒤로 물러났다가 옆으로 누우며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얼른 헤어지라고 구시렁거렸습니다.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거든요. 저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둘은 그렇게 대치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반복하더니 결국 상황은 종료.
도망가야 했던 아이는 괜찮을까요? 또 누구였을까요?
08
아무려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