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바람과 길고양이와 그리고

01

11월 한 달 내내 꽤나 바빠서 주말에도 집에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12월 들어 여유가 좀 생겼다. 사흘 연속 밖에 안 나가고 종일 집에서 뒹굴기도 했다. 그 사흘, 바람은 참 편해 보였다. 아니다. 바람은 그 시간이 당연하단 듯 즐겼다. 그리고 오늘 내가 외출하려고 하자, 우앙, 으앙, 울었다. 나가지 말라고 서럽게 울었다.
고양이는 혼자 잘 지낸다는 말, 거짓말 같다. 강아지와 살아 본 적 없어 비교할 순 없다. 강아지와 비교해서 잘 지내는 걸 순 있으리라. 적어도 바람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고양이도 누군가와 함께 있길 바란다.
02
처음으로 스크래처를 샀다. 리카가 내게 오기 전 타워형 작은 스크래처를 샀지만 외면당했다. 그리고 문지방(?)이 스크래처 역할을 했다.
고양이 게시판을 구경하다 다용도 스크래처가 보여 하나 구입했다. 이것 http://goo.gl/5KBmE 개묘차가 크니 바람이 얼마나 잘 사용할지 걱정했다. 처음 들였을 땐 외면했다. 그래서 고양이풀 가루를 뿌려줬더니 그 다음부터 자주 사용한다. 심심찮게 스크래처에 앉아 있고 박박, 긁으며 뜯기도 하고. 이불 위에서 뒹굴다 스크래처 위에서 뒹굴다.. 흐흐.
아, 뿌듯하여라. 스크래처로도 쓰지만 그냥 앉아 있는 자리로도 사용하니 일석이조. 만족.
하나만 산 건 아니다. 사는 김에 하나 더 샀다. 이것 http://goo.gl/vkQrX
문지방을 보호할 겸 해서 샀다. 그리고 못을 박아 설치했는데… 무참하게 외면! 설치한 곳을 피해서 발톱을 긁고 있다. 끄응… 사용후기 보면 몇 달 뒤부터 열심히 사용한다는 얘기가 있으니 좀 지켜봐야겠다. 흐.
03
바람의 동생을 들이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내가 외출할 때면 가지 말라고 서럽게 우는 게 참 안쓰럽다. 나갔다 돌아오면 화가 났는지 잠시 동안 날 외면하는 것도 보기 좀 그렇고. 아울러 내년부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어서 걱정이기도 하다.
원래 계획은 바람이 7살 정도 되어 여유도 좀 생기고(과연 생길까?), 관록도 생기면(과연?) 동생을 들일 계획이었다. 근데 좀 빨라질 수도 있겠다. 들인다면 2~3개월 정도 된 아이로 들일 계획이다. 다 자란 길냥이를 들일 수도 있겠지만, 바람의 성격 상 그건 좀 위험할 것 같다. 바람이 경계를 많이 하는 성격이라 비슷한 덩치가 들어오면 트러블이 상당할 듯하다. 어린 아이가 들어와야 그나마 잘 어울릴 것 같달까.
암튼 빠르면 내년 즈음 새로 한 아이를 들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든 것은 다 계획일 뿐이다.
04
오랜 만에 고등어무늬의 길고양이를 만났다. 한 달 이상 못 만났는데, 어제와 오늘, 이틀 연속 만났다. 아울러 나를 기억해주는 듯하여 기뻤다는.
사진: http://goo.gl/gceYy (사진을 누르면 커집니다.
어제 오랜 만에 만나니, 첨엔 그냥 서로 바라만 봤는데 내가 가방을 열자 그때부터 미친 듯이 울었다. 밥 달라고. -_-;; 반갑다고 울 고양이가 어딨으랴. 킁. 근데 전에 없이 더 울었다. 우어엉 우는 건 기본이고 앞발을 들고 앉는가 하면, 앞발로 내 몸을 짚고 가방을 들여다 볼 기세였다. 배가 많이 고팠던 걸까? 첨엔 간식사료를 하나 줬다. 그랬더니 허겁지겁 먹었다. 평소 챙겨주는 사람이 여럿이라 잘 먹고 지내겠거니 했기에 그대로 헤어지려 했다. 그랬더니 우아앙, 울면서 날 따라왔다. 끄응. 그래서 간식 하나 더 꺼내 줬고, 결국 건사료를 한 봉지 내줬다. 그렇게 충분히 먹고서야 어딘가로 가버렸다.
오늘도 비슷했다. 간식을 먼저 주니 서둘러 먹었다. 그것으로 헤어지려니 우아앙, 울면서 날 따라왔다. 이 놈의 인기란…이라고 착각하고 싶지만, 밥을 달라는 것 뿐. ㅡ_ㅡ;; 결국 건사료를 더 주고 헤어졌다. 아니, 오는 길, 가는 길 두 번을 만났고 두 번 모두 털렸달까. 크.
05
바람의 뱃살을 인정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한동안 바람에겐 뱃살이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바람의 뱃살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뱃살이 매력포인트! 아웅, 몰캉몰캉, 말랑말랑, 토실토실. 크크.

[고양이] 그리움 혹은

내가 살기 위해 적지 않으면 안 되는 말.

지금도 리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고통스럽다. 부재를 깨달으면 몸 한 곳이 욱씬거린다.
그래서 리카에게 미안하다. 더 잘 해줬어야 하는데, 더 많이 사랑했어야 하는데, 서툰 집사라서 미안하다.
그래서 바람에게 미안하다. 지금은 없는 존재를 그리워하여 함께 있는 존재를 쓸쓸하게 만들 것 같아.
처음부터 능숙한 집사는 없다는 사실을 바람과 함께 살면서 깨닫고 있다. 아니, 능숙한 집사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저 서로에게 적응하고, 적당히 퉁칠 수 있을 뿐이란 것을… 그저 낯선 상황에 조금 덜 놀라는 것 정도로 적응하는 시간이 있을 뿐이란 것을… 이별을 경험하고서야 뒤늦게 집사란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리카에게 미안하다. 내가 리카에게 조금 더 익숙해질 시간을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원망이 아니라 내 어리석음을 닮은 아쉬움이 미안한 감정으로 내 몸 한 곳에 고여 있다.
잘 지내니?

[고양이] 오늘 하루

아침, 융에게 밥을 주러 나가니 빈 밥그릇에 융이 앉아 있었다. 융은 자리를 피할까 말까 살짝 고민하다가 자리를 피했다. 난 일단 물그릇을 채우고 나서 밥을 주려고 했다. 그 와중에 융은 계단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계단 아래서 발라당…

> 융 님께서 발라당을 시전하셨습니다.
오늘따라 사진기를 가지고 나가고 싶었지만 참았는데, 가지고 갈 걸 그랬다. 이 장면을 찍어야 했는데. 융의 발라당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융의 발라당을 보는 날이 오다니…
사실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다. 사소한 일에도 민감해질 수 있는 그런 날이다. 전날부터 계속 긴장한 상태였다. 이 와중에 융의 발라당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알바는 빠졌지만 알바 관련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처리하고 중요한 일을 하러 갔다. 긴장감이 넘치는 자리였다. 그래서였는지 같이 모여 있는 사람들이 서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나중엔 웃음소리가 넘쳤다. 물론 그 웃음엔 울음이 섞여 있지만. 중요한 일은 그럭저럭 끝났다. 이 일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밝힐 일이 있을 테니 더는 생략하고…
저녁, 집에 돌아오니 융이 사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나 사료 그릇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융이 마지막으로 먹은 건지 모르겠지만 융은 밥을 달라고 울었다. 발라당을 시전하진 않았다. 그저 앙, 앙, 앙, 하고 울었다. 내가 무척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피하진 않았다. 그 모습이 귀엽다.
집으로 들어와 바람을 꼭 껴안으면서 언젠가 융을 집으로 들여야 하는 날이 올까,라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금방 이 고민을 지웠다. 쉽지 않은 일이니까. 내가 감히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지금과 같은 관계가 좋다.
아무려나 좋은 박스와 털옷을 준비해서 집 근처에 내놓을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