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집 근처에 사는 고양이 융, 그리고 TNR

사료와 물. 딱 이 두 가지만 내놓고 있지만 고양이가 살아가는데 있어 이 두 가지보다 중요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라고 어리석은 저는 헛소리를 합니다. 흐흐.

전에 말했듯, 현관문 앞에 물과 사료를 두고 있습니다. 사료는 하루에 두 번 정도 채우고 물은 매일 아침 새로 갈아 줍니다. 사료를 잘 먹은 날보다 물을 잘 마신 날이 더 기분 좋고요. 어떤 날은 물 한 그릇을 다 마셨더라고요. 바람이 이렇게 물을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몇 고양이가 드나드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 아이는 고정입니다. 까만색과 흰색이 섞인 고양이. 이름은 융이라고 하죠. 고개를 돌려 책장을 살피니 [융과 괴델]이란 책 제목이 가장 먼저 들어와서요. 흐흐. ;;
융은 거의 상주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_-;; 물론 저를 경계합니다. 밥을 먹고 있을 때 제가 나가려고 하거나 외출했다 돌아오면 융은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도망갑니다. 1층과 2층 사이의 층도리라고 불러야 할지 선반이라고 불러야 할지, 저로선 정확한 명칭을 모르는 그곳을 통해서요. 그냥 적당히 거리만 둬도 될텐데 아예 숨어버립니다. 크릉. 하지만 밥을 먹고 있지 않을 때면 종종 층도리 혹은 선반에 자리를 잡고 자고 있습니다. 마침 층도리 혹은 선반에 지저분한 박스가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 자더라고요. 어떤 날은 그곳에서 골뱅이 모양으로 자고 있고 어떤 날은 그곳에서 쉬고 있습니다. 아… 곤란해.
정말 곤란한 일입니다. 전 그냥 지나가는 길에 먹길 바랐는데 아예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이걸 바란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곳이 위치 상 좋은 곳이긴 합니다. 남향이라 햇살 따뜻하고 언제든 돌아다닐 수 있는 길목이거든요. 작년 여름 집 주변에서 아기고양이 셋을 만났는데, 융이 있는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에 아기고양이 셋이 모여 있더라고요.
암튼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고요. 오늘 집에 들어오는 길에 확인하니 융은 그곳에서 자고 있네요. 전 괜히, 야옹하고 소리를 내서 융을 깨웠습니다. 케케. 물론 바람이 자고 있을 때도 자주 깨웁니다. 지금 자면 안 된다고, 나중에 밤에 자라고요. 흐흐. ;; 융은 잠에서 덜 깬 표정으로 저를 봤는데요… 순간 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귀. 왼쪽 귀가 일부 잘려 있습니다. 으잉? 놀랍게도 그 아이는 중성화수술(TNR)을 받은 아이 같습니다. 99% 확신하지만 혹시나 다쳐서 귀가 찢겨 나갔는데 그 모양이 TNR 표시와 비슷하게 생긴 걸 수도 있으니 추정하죠.
TNR이라면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가 동반종에 무덤덤한 분위기란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돌아다니면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을 무척 자주 만날 수 있거든요. 물론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우연히 많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길고양이, 동네고양이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는 사람을 만난 적 없습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선 고양이가 나타나면 욕을 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이 동네에선 아직 못 만났습니다. 언젠가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고 있는데 동네 사람이 지나간 적 있습니다. 전 살짝 불안했습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봐. 근데 그 사람은 그냥 씨익, 웃고 지나가더라고요. 비슷한 일화는 건강검진을 위해 바람을 데리고 나갔을 때입니다. 동네 떠나가라고 우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씨익 웃거나, ‘그놈 고양이 참 요란하게 우네’라면서 웃는 게 전부였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겠죠. 제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안 좋은 일도 있을 겁니다. 그저 제 경험에 비추면, 다른 동네에 비해 괜찮은 거죠. 고양이 입장에선 다를 테고요.
정말 TNR이라면 동네 사람들은 어떤 논의를 거친 걸까요? 단순히 동네주민센터에서 홍보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요. 센터의 홍보 이상으로 어떤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데 어떤 노력이 있었을까요? 궁금합니다. 물론 저는 의문을 해소할 의지가 없습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질문을 해야 하는 작업인데 제가 가장 기피하는 작업이거든요. 크크. ;; 그래서 그냥 의문으로 남겨 두려고요.
참고로 제가 현관문에 사료와 물 그릇을 내놓고 있는 것, 주인집에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말 안 하네요.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갑니다. 호감도가 급상승하네요. 흐흐.
그러거나 말거나 가장 싼 사료를 주문할까 봅니다. ㅠㅠㅠ
+
리카를 닮은 그 아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어디 있다 나타난 걸까요? 아무려나 살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고양이] 동네 고양이에게 밥을 줄까?

2층 현관문 앞에 사료 그릇을 두었습니다. 언제부터일까.. 추석 전부터인 건 확실하네요. 동네 고양이가 여럿 있고, 이웃집 옥상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고양이가 넷 있거든요. 그들이 제 집까지 오는 건 쉽지 않지만 혹시나 싶어 현관문 앞에 사료 그릇을 두었습니다. 세들어 사는 입장에선 현관문 앞에 두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더라고요.
처음 며칠은 그대로였습니다. 추석때문에 부산에 가기 전, 누군가가 와서 먹고 갔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채워두고 갔습니다. 추석이 지나니 그릇이 깨끗하네요. 냄새를 맡고 왔거나 그냥 제 집을 지나다니던 냥이가 발견했거나. 그래서 다시 그릇을 채웠습니다.
참 묘하죠. 어느 순간 이웃집 고양이 넷이 안 보였습니다.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아울러 사료 그릇은 언제나 그대로였습니다. 누구도 입을 댄 흔적이 없네요. 그냥 그렇게 끝나나 했습니다. (이 즈음 리카를 닮은 아이도 안 보이더라고요.)
며칠 전 비가 내렸습니다. 방치한 사료 그릇은 비에 젖었죠. 아침에 나갈 땐 괜찮았는데 저녁에 돌아오니 잔뜩 불었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얼마간 먹은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아, 다시 찾아온 것일까? 그 동안 어디에 간 것일까? 어디서 무얼하다 나타난 것일까요?
그릇을 씻고 사료를 새로 담았습니다. 야금야금 먹은 흔적. 그리고 어느 날은 하룻밤 사이에 한 그릇을 비웠더라고요. 아웅, 귀여워라. 신나서 그릇을 채웠습니다.
어제 아침, 평소처럼 그릇을 채우고 현관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늘 창문을 열어 놓지만 현관문을 열어야 환기가 제대로 되는 느낌이거든요. 바람은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 번은 바람을 꼭 껴안고 현관문 밖으로 나간 적이 있습니다. 바람은 잠깐 버티더니 제 몸에 상처를 남기곤 서둘러 방으로 도망갔습니다. 이 겁 많은 고양이!) 겁 많은 바람이 활짝 열린 현관문을 구경하다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전 그냥 심심해서 우는 건가 싶어 다가갔더니, 동네고양이가 사료를 먹고 있네요. 사료를 먹다가 제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고선 저를 빤히 보더라고요. 전 얼른 방으로 숨었습니다. 가끔 고개만 내밀어 구경했죠. 아그작, 와그작, 사료를 먹는 소리가 경쾌해요.
바람과 비슷한 무늬네요. 검은 색과 흰 색. 하지만 바람보다 예쁠 순 없습니다. 😛 전 고등어 무늬나 삼색을 기대했는데 바람과 비슷한 무늬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크크. ;;
어제 저녁, 귀가하는 길에 집 근처를 살피니 그 아이가 여유롭게 쉬고 있습니다. 사료 그릇은 깨끗했고요. 후후. 사료 그릇을 채우고 나서 잠시 쉬다가 길냥이를 위한 사료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oTL…
지금은 바람과 같은 아미캣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미캣이 좀 비싸요. 가난한 집사가 사기엔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죠. ㅠㅠ 더구나 지금 모든 판매처에서 품절이라 11월 중순까지는 구입할 수도 없는 상황. 심지어 베지펫도 가격이 상당히 올랐다는 -_-;; 아울러 동네냥이가 한 아이만 온다는 보장이 없네요. 그래서 길냥이용으로 싸고 양 많은 것으로 구매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아.. 내 인생 왜 이러는 것이냐.. ㅠㅠㅠ 보관할 곳도 이미 다 정했어요. 보일러실이요. 이제 겨울이라 보일러실에 보관해도 큰 문제가 없겠더라고요. 여름이면 너무 뜨거우니 곤란하지만요. 뭐, 당장 살 것은 아닙니다. 아미캣 수급 상황도 확인하고, 길냥이가 꾸준히 오는지도 확인해야 하니까요. 사료를 잔뜩 샀는데 길냥이가 안 오면 이것도 곤란한 일이죠. 물론 사료셔틀을 다닐 수도 있지만 전 그냥 현관문 앞에서만 줄 거니까요.
아아… 또 혼자서 고민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크크. ;;;

[고양이] 리카와 바람

01
밤에 자려고 누우면 리카가 떠오릅니다. 지난 겨울의 어떤 일 때문에…
어떤 집 고양이는 집사의 이불 속에 들어와 잔다던데 리카는 그런 적 없습니다. 늘 이불 언저리에서 잠들었습니다. 그게 아쉬워서 잠들 때면 리카를 억지로 껴안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리카는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제가 꼭 붙잡았죠. 리카는 나가길 포기했고 전 한동안 붙잡고 있다가 놓아줬죠. 그럼 리카는 후다닥 빠져나갔습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리카는 제가 잘 준비를 하면 후다닥 도망쳤습니다. 저는 얼른 따라가선 구석에 숨은 리카를 억지로 끄집어 냈죠.
이런 밤을 보내던 어느날 리카에게 미안했습니다. 리카가 무척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 그래서 리카를 억지로 붙잡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전 중단했지만 리카는 습관처럼 우엥, 울면서 도망갔습니다. 전 따라가지 않았죠. 저 혼자 이불 속에 들어갔죠. 한참 후 리카는 뭔가 겸연쩍은 듯 구석에서 나왔습니다. 그땐 여기까지만 고민했는데…
제가 따라가지 않았던 그때, 리카 혼자 도망가서 숨어 있던 그 시간, 리카는 나를 기다리진 않았을까? 자신을 잡으러 올 나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 짦은 시간이나마 쓸쓸하지 않았을까?
그 쓸쓸함을 떠올리는 날입니다.
02
지난 여름 바람과 난 따로 잤다. 날이 더웠는지 바람은 늘 바닥에서 뒹굴었다. 가을이 오고 날이 쌀쌀하니 바람이 매트리스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새벽에 잠깐 눈을 뜨면 바람이 오른쪽 어깨 부근에서 식빵을 굽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 그 자리… 리카가 머물던 자리다. 리카는 이불 속에서 잠들지 않고 언제나 내 오른쪽 어깨 부근에서 식빵을 구우며 잠을 잤다. 리카가 머물던 그 자리에 이제 바람이 있다.
아… 이불을 같이 덮고 자는 고양이는 내가 바랄 수 없는 로망인가…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