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단체와 관련한 글을 쓸 때 실제 염두에 둔 어떤 정황 판단이 있었다. 차마 쓸 수는 없지만.. 쓸 수 없는 건 자기 검열이라기보다 아직은 짐작이라 선뜻 얘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어떤 질문을 공유하자면, 제목과 같다. LGBT 단체 혹은 한국의 동성애 단체는 여성운동/여성주의 단체와 연대하는가? LGBT 혹은 동성애 단체는 여성주의단체에 연대를 종용하기도 한다. 그럼 여성주의단체의 의제나 활동에 동성애 혹은 LGBT 단체는 연대를 종용하는 만큼 참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 이게 고민이다. 각 단체의 활동은 페미니즘과 퀴어정치, 이 두 정치학을 주요 정치적 밑절미 삼아 활동하고 있는가? 물론 이 질문은 바로 나 자신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두 정치학의 자장에서 나는 움직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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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성매매
이룸 절대강좌 “퀴어+성매매”가 6주 일정으로 끝났다. 퀴어와 성매매 이슈의 교차점, 유사점, 차이점 등에서 강의를 진행한 자리였다. 아마도 퀴어 이슈와 성매매 이슈를 함께 다룬 첫 번째(정확한 건 아님) 강좌가 아닐까 싶다.
물론 ‘퀴어+성매매’가 퀴어의 성매매인지, 퀴어이슈와 성매매이슈의 비슷한 지점을 다루는 것인지, 그 모든 것인지, 이렇게 구분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인지는 수강생마다, 강사마다 다 달랐을 듯하다. 이 미묘한 차이는 추후 작업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퀴어+성매매 이슈로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같이 얘기해야 함에도 같이 얘기하는 자리가 없었으니까. 이번엔 채윤 님의 강의 말미에 잠깐 언급되는 것으로 끝났지만, 남성 간 성매매, 여성 간 성매매를 따로 다루는 자리도 있으면 좋을 텐데… 트랜스젠더의 성매매도 좀 더 현재 이슈로 다루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고.
미국 논의를 중심으로 하면, 여성 간 성매매(여성 성판매자와 여성 성구매자의 관계)를 다룬 논의가 거의 없는 듯한데 그렇다고 관련 이슈가 없을리 없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논할 수 있을까? 레즈비언 전용 룸쌀롱은 또 어떻게 논할 수 있을까? 한국 젠더 이슈에서, 퀴어이슈에서 남성 간 성매매 이슈를 다룬 논의도 거의 없는데 이것 역시 중요하게 다뤄야 할 테고. 트랜스젠더의 성판매/성노동을 본격 논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강의 때도 말했지만, 한국 대중 문화에서 트랜스젠더는 성판매자/유흥 업소의 노동자인데도 학제 성매매 이슈에선 트랜스젠더가 없다. 트랜스젠더의 성매매를 논하는 것과 함께 성매매 이슈에서 트랜스젠더가 부재하는 찰나가 무슨 뜻인지를 살피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번 강좌를 들으며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퀴어/트랜스젠더 이슈와 성매매 이슈를 논함에 있어 HIV/AIDS 이슈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점이다. 트랜스젠더 맥락에서 이 연결고리를 설명하는 글을 써야 할 텐데… 음… 꼭 내가 해야 하는 건 아니고.. 누군가 해주면 더 좋겠지만… 꽤나 방대한 작업이라 누군가가 석사논문 주제로 다뤄도 괜찮을 텐데. 아무려나 내게 있어, 트랜스젠더+성매매+에이즈의 연결고리를 고민할 계기가 생겼다는 점만으로 충분히 중요한 시간이다. 남은 고민과 과제는 이제부터 천천히 공부하면 되고.
그나저나 단체를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성매매 이슈를 강조하는 단체에서 ‘퀴어+성매매’ 이슈를 다루는 강좌가 나왔으니 퀴어 이슈를 강조하는 단체에서 ‘퀴어+성매매’ 이슈를 다루는 강좌가 나와도 괜찮을 텐데…
퀴어페미니즘
수업 쪽글입니다. 이 글로 지난 학기 수업 쪽글은 끝. 퀴어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쓴 글에 대한 요약 정리 쪽글이고요. 입문서 성격이 강한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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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은 어떻게 만날까? 둘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른 논의를 전개하는 정치학일까,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며 또 다른 지형을 탐문하는 정치학일까? 물론 단 한 번도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그리고 트랜스젠더리즘)이 별개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 이런 식의 질문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곤란함을 야기한다. 별개인 적 없는데 별개로 사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을 구분해서 이해하는 이들에게 이 질문은 유의미하다. 이미 1990년대 중반 페미니스트와 퀴어 이론가가 둘의 접점을 모색했음에도(Feminism Meets Queer Theory) 여전히 둘을 분리해서 사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을 별개로 사유하는 이들에겐 일단 각각을 구분해서 설명하고 그 다음 연결하는 방식이(상당히 문제가 많다고 해도) 수월하게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에선 유용할 수도 있다.
퀴어 페미니즘을 논하는 미미 마리누치(Mimi Marinucci)의 책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교차점을 출발한다. 이것은 1994년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Against Proper Objects”에서 페미니즘의 주요 논제를 젠더로만 환원할 수 없다는 비판적 입장보다는 1992년 헨리 에이브러브 등(Henry Abelove, Michele Aina Barale, David M. Halperin)이 편집한 책 The Lesbian and Gay Studies Reader의 서론에서 시도한 구분에 따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에이브러브 등은 페미니즘이 젠더에 초점을 맞추고 논하듯 레즈비언과 게이 이론은 섹스와 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춘다며 레즈비언과 게이 이론을 규정하려 했다. 마리누치 역시 “퀴어 이론의 경우, 섹스와 섹슈얼리티를 강조한다. 페미니즘 이론의 경우 젠더와 섹스를 강조한다”(106)고 말하며 둘을 구분한다. 그렇다면 이때 페미니즘은 무엇인고 퀴어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퀴어 페미니즘에 있어 페미니즘은 대체로 제2 물결 페미니즘을 뜻한다. 마리누치는 제2 물결 페미니즘을 탐문하는 작업은 대개 두 가지 경로로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첫째, 포스트 페미니즘은 제2 물결의 미션이 이미 성취되었기에 페미니즘은 더 이상 필요없다고 얘기한다(107-8). 둘째, 제3 물결 페미니즘은 제2 물결 페미니즘의 방식으로는 위계와 권력을 문제 삼을 수 없기에 제2 물결은 철지났을 뿐만 아니라 진부하다고 주장한다(108). 포스트 페미니즘과 제3 물결 페미니즘 혹은 퀴어 페미니즘은 둘 다 제2 물결 페미니즘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지만 대응은 전혀 다르다. 전자가 페미니즘의 불필요를 논한다면 후자는 새로운 페미니즘의 필요를 주장한다. 마리누치에게 퀴어 페미니즘은 새로운 필요로서, 지금 등장해야 하는 흐름이자 방향이다. 이를 위해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 모두에서 인종차별주의와 계급차별주의가 존재했음을 인정하고 이를 반성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지배의 논리와 위계를 문제삼아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은 교차한다. 퀴어 이론은 언제나 이분법과 위계에 비판적이며 페미니즘 역시 억압과 위계에 비판 이론이다. 그리하여 퀴어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내에 존재한 LGBT 혹은 퀴어 혐오, 퀴어 연구/섹슈얼리티 연구에 존재한 여성 혐오를 방지하는 작업일 뿐만 아니라 둘의 교차점에서 더욱 날카로운 비판 이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