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트랜스젠더 관련 소식입니다.
Jan 30, 2012 – Public
::기사::
A Lone Transgender Activist Confronts Santorum 2012.01.20.
크니나 라헤자Kneena Raheja(20살)은 남부에서 소년으로 태어났고 소년으로 살았다. 그녀는 이제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생각한다. 챨스턴 대학 학생이 이날 오후 LGBT 활동가가 가장 혐오하는 정치인에게 속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릭 산토럼[공화당 대선후보]의 언론 컨퍼런스에 갔다. “트랜스 가시성”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라헤자는 “산토럼씨, 당신은 퀴어의 피를 흘렸다”고 소리쳤다. 많은 사람이 도착하진 않았고 한 남성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후, 라헤자는 버즈피드에게 “내 생각에 릭 산토럼 같은 사람은 퀴어에게 정말 폭력적이다.”고 말했다.
“난 단지 그가 침묵하는 시간 만큼, 우리를 동의하지 않는 시간 만큼, 트랜스젠더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리려고 여기에 왔다.”
라헤자는 그녀의 접근법을 그녀가 일상에서 접하는 것에 평등하고 반대적 대항으로 설명했다.
“난 겁에 질린 사람이며, 두렵기 때문에 올바른 것을 하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침략자라도 되는 것처럼 느낀다.”
산토럼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는 다른 후보자에 의해 상처 받은 존재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엄청난 영향은 깨닫지 못 하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라헤자는 다른 공화당 후보라고 나을 것 없다고 말했다. “그들 모두 백인 우월주의자이다. 그들은 모두 돈 많고 나이 많은 백인 남성이며, 나의 경험을 모르는 남성일 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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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릭 샌토럼은 미국 보수 기독교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네요.. http://goo.gl/c7Ec3 ㅡ_ㅡ;;
Jan 31, 2012 – Public
::기사::
Cops deny ridiculing transgender woman 2012.01.22.
한 트랜스여성은 그릇된 이유로 체포되고 모욕당했다며 위니페그 경찰을 고소했다.
경찰과 시 당국은, 2011년 6월 13일 이른 아침, 성 제임스 시민 센터의 주차장에서 순찰 경찰이 니키 핑크 콕스를 억류하는 등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보상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콕스는 담배를 피며 차에 앉아 있을 때 경찰 순찰차가 다가왔고 그녀에게 총구를 겨누며 차에서 내릴 것을 명령했다고 주장했다.
콕스는 땅에 엎드리라는 명령을 들었고, 재빨리 수갑에 채워졌다고 말했다.
경찰차 뒷자석에 앉아 있을 때, 콕스는 경찰이 “그는 트래니야. He’s a tranny.”라며 비웃는 것을 들었다.
얼마 후, 경찰은 콕스에게 그들은 불법침입죄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얼마 안 가 풀려났다.
콕스는 아픔과 불안, 패닉으로 고통스러웠고, “그녀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모욕적 언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지난 8월 경찰 키쓰 맥카스킬과 시 당국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은 불법침입죄 용의자를 찾아 “위니페그 시”에 있는 시민 센터에 갔다고 답변서에 적었다.
경찰은 총을 꺼내긴 했지만 콕스의 차를 향해 겨누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 버전의 문서에 따르면, 콕스는 처음부터 경찰의 명령에 “비협조적”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그녀에게 수갑을 채우고, 무기를 찾았으며 경찰차에 태웠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경찰에 따르면, 콕스에게 법적 권리를 고지했으며 체포 이유를 알렸다고 한다.
상황을 파악한 뒤 경찰 중 한 명은 콕스에게 그녀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며 사과했다고 경찰은 말했다.
시 당국은 소송이 각하되길 희망하고 있다.
Feb 1, 2012 – Public
::기사::
Transgender Americans may face increased risk of mistreatment in Occupy crackdowns 2012.01.31.
국립공원서비스는 D.C.의 “캠핑 금지” 규칙에 따라 이번 주 맥퍼슨 스퀘어와 자유플라자에 있는 점령Occupy 시위대를 철거할 계획이다. 많은 시위대가 철거 공지에 응한다고 해도, 다른 시위대는 국립공원서비스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항의하겠다며 버티고 있다.
게이시티뉴스가 보도한 것처럼, 트랜스젠더는 직접 행동에 참여한 오랜 역사에서처럼, 이번 점령 운동에서도 중심 인물이다.
국립트랜스젠더평등센터(NCTE)의 전무 이사 마라 키슬링는 트랜스젠더를 위한 관심을 표명했다.
“직접 행동에서 트랜스젠더의 역사적 참여때문에, NCTE는 트랜스들이 자유발언과 정치 권력을 실천하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을 이해하길 원한다.”고 키슬링은 말했다.
D.C. 점령 야영자의 퇴거는, 이번 주 공원 경찰이 쏜 테이저 건을 맞은 시위자 한 명, 오클랜드, 캘리포니아, 뉴욕에서의 400명 체포와 함께, 국가 전역의 경찰 당국의 긴장이 증가하는 국면에서 점령의 말미에 시작되었다.
NCTE는 점령 운동으로 촉발된 대화를 환영한다. 미국에서 비고용의 비율이 두 배에 이르는 트랜스젠더는 미국에서 고용기회와 정치 권력의 불균형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99%에 속한다.
“국가 자본이 있는 여기서부터, 문제와 불평등의 해법을 볼 때 우리는 무시된 이들을 본다. 영민한 비폭력 직접 행동은 모든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정책에 주목하도록 하는 평등하고 강력한 방법일 수 있다.”고 키슬링은 말했다.
그러나 NCTE는 또한 트랜스젠더와 그들의 동맹의 참여에 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접 행동에 참여하는 트랜스젠더는 잘못된 대우, 폭력, 그리고 체포의 위험에 놓일 수 있다. 구금절차, 정체성 기록, 그리고 미등록 트랜스로서 혹은 장애인 트랜스로서 시위에 참여함에 따른 위험을 포함하여 폭넓은 요소를 이해할 기본 가이드가 있다.
“컴튼 카페테리아 항쟁부터 스톤웰에 이르기까지, 트랜스젠더는 트랜스젠더 평등과 다른 이의 고용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최전선에 섰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트랜스는 그들의 권리와 직접 행동을 통해 권리를 진전하고자 할 때 직면할 위험을 깨달아야 한다.”고 키슬링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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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내용이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시민권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선두에 섰다는 점이죠.
Feb 3, 2012 – Public
::기사::
푸켓가젯. 2011.11.23. 작성: Chaiyot Yongcharoenchai
특별 보고서: 푸켓의 트랜스젠더 낙인을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
나쁜 소식은 빠르고 지속적으로 전파된다. 그리고 사회가 비난을 퍼붓길 좋아하는 일반적 용의자, 뭔가 ‘다르거나’ 전체를 대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미등록 이주자, 난민, 이주 노동자, 그리고 본질적으로 편리한 희생양인 다른 소수자 집단이다. 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종종 낙인 찍히는 그런 집단 중 하나는 트랜스젠더 공동체, 카토이다.
카토이는 태국에서 태어났고, 자랐고, 등록되었다. 그들은 최소한 18세기 라타나코진 시대부터 태국 사회의 일부다. 그러나 주류 정신에서, 카토이는 태국의 사회적 구조에서 주변부에 속한다.
트랜스젠더 공동체는, 특히 파통에서, 시끄럽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란 이미지다. “한 개의 썩은 사과가 박스 전체를 망친다”란 고전적 사례처럼.
그러나 역경이 없진 않아도 다른 길을 선택한 “좋은 사과”도 있다.
토에드삭 “가이” 카이프라이완(30살)은 사콘 나콘(태국 동북 지역에 있는 그녀의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취득한 학사학위로 일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기에 교육학 학위를 취득했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언제나 내 열정을 불러일으킨다,”고 가이는 말했다.
“그것과 관련한 꿈은 한 가지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다.”
“내가 졸업했을 때, 나는 곧 바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쉽지 않았다.”
“내 머리카락은 여성처럼 길었고, 구직 지원서를 제출하러 갈 때 여성처럼 옷을 입었다. 내겐 뛰어난 학점과 탁월한 교육 기술이 있었음에도, 얼마나 많은 학교가 날 좌절케 했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
“몇 달 뒤, 나는 마침내 사콘 나콘에 있는 직업 학교에서 영어와 태국어를 가르칠 직업을 구했다.”
“학생들은 내가 교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나의 능력 때문에 날 존경한다. 유일한 문제는 다른 남성 동료다. 그들은 나를 다르게 취급하고 날 존중하지 않는다.”
“최악은 그들이 언제나 날 농담거리도 여긴다는 점이다. 그들은 결코 날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고향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날 공동체의 농담거리로 생각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난 내가 존중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가이는 7년 전 푸켓으로 이사했고, 호텔 접수처 직원이 되었다.
“동료와 잘 지냈다. 비록 우리는 일이 끝난 후 함께 어울리진 않지만 그들이 날 존중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호텔에서 3년 정도 일했다. 이후 그녀는 파통 병원의 사바이 디 클리닉에서 상담사이자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클리닉은 혈액검사, 상담 서비스, 푸켓에 있는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위한 HIV 익명 검사를 제공한다.
가이는 트랜스젠더에게 안전한 섹스를 하는 법, HIV나 STD(성병)에 감염되었을 때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하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한다.
그녀는 그 일을 통해 교사로서의 훈련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차별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내 경력에서 최고는 아니다. 최고는 나처럼 카토이로 정체화하는 사람을 위해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것이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제대로 된 일자리right job를 찾아 투쟁하는 것은 아니다.
틴티나른 “움” 홈로스클라(23살)는 지역 직업학교에서 경영학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한 후 곧 푸켓 국제 공항에 있는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 그때가 18살이었다.”
“일을 하며 문제가 없었고 동료와도 잘 지냈다. 비록 일을 하며 특별한 즐거움도 없었지만 나는 내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작은 창업을 계획했다.”
움은 점원에서 부동산 판매업, 휴양시설 접수원으로 직업을 바꿨다. 지금은 푸켓 LGBT 공동체와 함께 일하는 지역 비정부기구인 Andaman Power Organization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는 활동적 역할을 하면 좋겠다.”
다른 단체와 함께 그 단체는 파통의 성노동자를 포함하여 푸켓 인근 LGBT 공동체를 위한 워크숍을 개최한다.
“일 년에 한 번,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해야 하는 푸켓 지역 건강 사무소와 함께 큰 행사를 연다. 첨엔 정말로 무서웠다. 비트랜스젠더와 일했던 내 경험이 한 몫했다. 그들은 대개 부정적 시선으로 날 보았고 내가 하는 말에 주목할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틀렸다. 모두가 내 얘길 들었다.”
“이 직업은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나와 나처럼 전문직에 있는 다른 많은 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서서히 바꿀 것이라고 믿는다.”
태국의 많은 고용주는 개인적 경험보다 교육 기관의 졸업장을 더욱 신뢰한다. 하지만 이 원칙은 트랜스젠더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솜폴 “위키” 싯티웨치(30살)는 푸켓에 있는 일류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호텔 사업에서 직업을 구하기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난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회사에 취직했다. 그것은 호텔 예매 사이트를 위한 웹 개발이다. 엄밀하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지만, 나는 다른 곳에서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곳에서 2년 간 일을 한 다음, 좀 더 도전적으로 행동하기로 했고, 구직활동을 했다.”
“많은 호텔과 회사의 문을 두드린 후, 나는 차별을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 몇몇 호텔은 나를 고용하려 했지만, 그들은 내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남자처럼 행동’하길 요구했다.”
“난 나 자신을 바꾸도록 강요당하는 것이 싫었기에 좌절했다.”
위키는 마침내 소이 파라다이스(파통에 있으며 야간에 게이들이 주로 모이는 지역)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그녀는 가이가 일하고 있는 사바이 디 클리닉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난 소이 파라다이스에서 일하는 성노동자와 안전한 섹스 및 HIV/AIDS 관련 지식을 공유한다. 여기선 모든 사람이 나를 알고 존중하기에 내겐 쉬운 일이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이다.”
“소이 파라다이스의 카토이 성노동자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인다. 그들은 협력하길 원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난 마마-산스mama-sans 혹은 포주를 통해 접근한다.”
“파통엔 아직도 트랜스젠더의 출입을 금지하는 나이트클럽이 많다. 무척 당혹스럽지만 그 상황을 이해한다. 트랜스젠더는 그 지역에서 이미지가 나쁘다.”
“난 단지 우리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도록 모든 트랜스젠더에게 힘을 주고 싶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우리들 다수가 동등한 사람이며 사회에서 우리는 동등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