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히르쉬펠트, 글 실어줄 잡지사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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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지도교수가 이번 학기 연구년이라며 방 열쇠를 주셨거든요. 으하하. 만날 사용하진 않겠지만 주말을 비롯하여 주중에도 부담없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무척 기뻐요.

선생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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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트랜스젠더 역사서를 읽고 있습니다. 개인 프로젝트에 쓸 중요한 참고문헌이기도 합니다. 무척 흥미롭게 읽은 내용이 있는데요…
히르쉬펠트Magnus HIrschfeld란 성과학자가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중반에 활동했지요. 전 트랜스젠더 운동과 동성애 운동에서 무척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1910년대 처음으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구분한 인물이거든요. 단순히 구분한 것이 아니라,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는 질병이나 정신병, 도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느낌을 충분히 표현하는 실천으로 해석했습니다. 병리화를 비판하고 트랜스젠더와 함께 연구활동을 펼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동성애 인권 운동을 지지하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고요.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고요. 이번에 책을 읽으며 새롭게 배운 사실. 히르쉬펠트는 1920년대 후반, 1930년대 초반엔 독일에서 매우 유명했다고 합니다. 한 mtf가 경찰에 잡혀 재판을 받은 적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남성이 여장을 했다는 것. 판사는 이 사람의 얘기를 듣고선 히르쉬펠트를 찾아갈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뭐, 대충 이 정도의 명성인 거죠.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히르쉬펠트가 설립한 성과학 연구소에서 1932년 성전환수술을 시행하는데, 그 비용을 정부가 지급합니다. 히르쉬펠트의 오랜 노력으로, 트랜스젠더의 성전환수술에 드는 비용을 정부가 지급하도록 한 거죠. 물론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끝납니다만… 아울러 1936년 그 자신 동성애자며 유대인인 히르쉬펠트는 숨을 거둡니다.
아마도 성전환수술비를 국가에서 지급한 최초는 1932년 독일이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이탈리아는 현재 성전환에 드는 의료비용을 국가에서 지급합니다(개인은 무료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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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정리한 원고를 수정하고 있습니다. 과정에 관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이번 주말 전에 완료할 예정입니다.
이제 원고를 실어줄 잡지사만 구하면 됩니다. 크크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960년에서 1989년 이태원 지역에서 살았던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분석한 글입니다. 한국사 맥락에서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추적한 거죠. 초고를 읽은 사람은 다들 호평했습니다! 신문, 단행본 등에 실린 흔적을 모았기에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국내 유일한 원고기도 하지요. 후후.
… 굽신굽신

트랜스젠더 기록: 이태원 사진기록, 신문 기사

원문 출처: http://goo.gl/w7bhs
이 글은 원문을 확장한 것. 🙂
01

지난 금요일 외출을 겸해서 이태원에 있는 트랜스젠더 클럽/바 입구와 간판 사진을 찍으로 돌아다녔다. 내가 파악하고 있는 트랜스젠더바는 14개다. 이태원 소방소 근처에 대부분이 모여있고 몇 개는 좀 멀리 떨어져 있다.
 

근데 어느 기사에서 15개를 언급하여… 나머지 한 개는 어딨지? 정말 15개냐, 아님 대략 15개 정도를 15개라고 확정해서 말한 것이냐… 흠… 아니면 내가 하나라고 추정한 곳에 두 개가 있울 수도 있다. 작년 어느 시간까지는 한 건물에 두 갠가 세 개가 있기도 했는데 지금은 좀 애매한 상태다.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 바/클럽의 사진을 찍는 작업은 작년부터 벼르던 일이다. 더 정확하게는 이곳에 이사 오면서부터 벼르던 일이었다. 그걸 이제야 시작했다. 일단은 처음이니 스케치하듯 찍었다. 소소한 기록용으로 쓰기엔 무난하지만 제대로 사용하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내가 전문 사진작가도 아니니 기록을 꾸준히 남기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사진 찍는 일을 무척 귀찮아하는 인간이라 얼마나 꾸준히 할지가 관건이로구나.. 으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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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트랜스젠더 부부의 사고 소식이 났다. 관련기사: http://goo.gl/VLhHq
‘mtf/트랜스여성’과 ‘ftm/트랜스남성’이 결혼했고, 이혼을 앞두고 남편 트랜스남성이 아내 트랜스여성을 살해했다고…
관련 기사를 검토하다가 재밌지만 익숙한 사실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기사가 mtf/트랜스여성은 트랜스젠더라고 표시하지고 있다. mtf/트랜스여성이 여성이며 아내란 점을 부인하거나 의심하는 기사는 거의 없다. 반면 ftm/트랜스남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난감해한다. 어떤 기사는 가슴을 절제한 여성이라고 표현하고, 여장남자, 혹은 남성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여성이라고 쓴 기사도 있다. 하리수 씨가 등장한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 한국사회에서 mtf/트랜스여성은 낯설기만한 존재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ftm/트랜스남성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며 당혹스러운 존재다. 적어도 주류 언론이 재현하는 모습에선 그렇다. 그래서 어떤 기사에선 “트랜스젠더 살해”란 제목을 뽑기도 했다. 가해자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며 피해자만이 트랜스젠더라는 듯. 기사를 검토하며 한국 사회에서 mtf/트랜스여성과 ftm/랜스남성을 대하고 이해하는 인식의 차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관련 기사를 어렷 확인하면서 이 둘의 관계를 트랜스젠더로 규정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ftm/트랜스남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감함을 드러내는 기사는 이 부부관계를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로 설명하기도 했다. 트랜스여성은 여성, 트랜스남성은 레즈비언 부치로 설명하는 식이다. 내가 처음 접한 기사에선 트랜스여성과 트랜스남성 부부로 설명했기에 나는 이 범주로 사건에 접근했다. 하지만 다른 기사를 여럿 비교 검토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이성애-트랜스젠더 부부로 설명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이성애 관계로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레즈비언 관계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기사를 비교하는 방식으로는 둘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할 길이 없다. 기껏해야 추정할 뿐이다. 살아 있는 남편에게 직접 묻지 않는 한 이 둘의 범주는 몇 가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도 남편이 해석하는 가능성일 뿐, 고인이 된 아내가 해석하는 범주는 확인할 길이 없다.
범주 해석과 별도로, 관련 기사를 검토하며 mtf/트랜스여성과 ftm/트랜스남성의 위상 차이를 새삼 깨달아 기분이 묘하다. 2006년부터 활동판 언저리에서 밍기적거리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물론 이건 나만의 깨달음은 아니다. 소위 “대중”(나 역시 대중의 일부다)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선 트랜스여성이 트랜스젠더의 전부다. 소위 활동판이나 학제라고 불리는 영역에선 트랜스남성이 트랜스젠더의 전부다. 물론 이런 단순한 감상은 과장이다. 하지만 과장만은 아니다. 2011년 지금도 신문사에서 트랜스젠더 특집을 다룬다고 하면 트랜스여성만 다룬다. 트랜스남성을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여성학을 중심으로 이런 저런 학술적 논의 자리, 내가 언저리에서 머뭇거리는 활동판에서 다루는 트랜스젠더는 트랜스남성이 대부분이다. 물론 트랜스여성만 다루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그 논의 대부분이 트랜스젠더의 (이상)심리를 다루는 식이다. 그런 논문은 의미있는 논의가 아니라 무시할 뿐이다. 흥미로운 글 중 mtf/트랜스여성에 초점을 맞춘 경우는 거의 없다. 이 간극은 언제나 재밌는데 미디어에서 재현하고 ‘대중’이 널리 인식하는 트랜스젠더는 mtf/트랜스여성이 전부인데 의미 있는 학제 논의는 ftm/트랜스남성이 전부라니..(아, 이건 내가 속한 분과의 문제인가.. 흐흐.;; )
아무려나…
고인에게는 애도를… 부디 다음 생은 원하는 삶이길…
가해자에겐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만 있길.. 다른 혐오는 없길…(이것이 가장 무섭다.)

지하철도 젠더 구분?

어제 G+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줄이거나 예방하기 위해 여성칸을 만들겠다는 방안은, 예방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관련 이슈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싫으며, 대충 구색맞추겠다는 안일함을 표현한 것 뿐이다. 이런 방안을 내면서 안 부끄러웠을까?( http://goo.gl/YD4za )
글의 발단은 서울시에서 지하철에 여성전용칸/여성안전칸을 만든다는 기사다(http://goo.gl/f61R0). 지하철 내 성폭력 사건을 줄이겠다는 시장의 의지에 따라 추진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비판 거리는 차고 넘친다. 이렇게 고민 없고, 철학 없는 정책이라니…
글로 남긴 나의 첫 번째 반응은 G+에 쓴 메모지만, 기사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걱정은 다른 거였다. ‘트랜스젠더(mtf/트랜스여성)는 어떡하지?’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지 않거나, 아직 하지 않았거나, 이제 막 시작해서 남성으로 통하는 mtf/트랜스여성은 여성전용칸을 사용할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 관련 특강을 하면, 늘 하는 얘기가 있다. 화장실을 비롯한 몇몇 공간의 젠더 구분이 유발하는 이슈다. 여성화장실, 남성화장실과 같은 공간 구분은 트랜스젠더를 곤란하게 만들고 모든 개인에게 규범적 젠더를 내면화하도록 한다. 머리카락 길이가 매우 짧고 남자처럼 보이는 여성이 여성화장실을 사용하기 쉽지 않고, 여성스러운 남성이 남자화장실을 사용하기 쉽지 않다. 화장실을 비롯하여 젠더 이분법으로 나뉜 공간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적 젠더를 실천하도록 하는 일상 장치다.
비단 이분법으로 분명하게 나뉜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용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전용공간은 특정 젠더를 위한 공간이어서 문제라는 게 아니다. 어떤 젠더를 배제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도 아니다. 전용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특정 젠더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규정하기 때문에 문제다. 가장 진부한 질문을 던지면 다음과 같다. “여성전용공간이 얘기하는 여성은 누구인가?” 주민등록번호 상의 성별이 2/4/6으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 그렇다면 ftm/트랜스남성은 여성이 아니지만 여성전용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럴 때 그 공간은 ‘여성전용’공간일까? 그렇다면 겉모습이 여성으로 통하는 사람의 공간? 앞서 말했듯 남성으로 통하는 mtf/트랜스여성은 매우 곤란하다. 모든 mtf/트랜스젠더에게 의료적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논쟁거리를 낳지만 여기선 생략. 다시,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 하는 사람? 그렇다면 피상적으로 ‘여성전용’공간이란 구분이 무의미할 수 있다. 또 다른 방책으로, 주민등록번호 상 여성이지만 트랜스여성은 예외적으로 출입 가능? 그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트랜스젠더는 행사진행요원에게 자신이 트랜스젠더라고 밝혀야 하는 걸까? 다른 말로 그 행사에 참가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저는 트랜스여성이에요’라고 대대적으로 알려야만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밝히길 원한다면 밝힐 수도 있겠지만 밝히길 원하지 않는 사람도 차고 넘친다. 전용공간 역시 지배 규범적 젠더를 실천하도록 하는 장치일 수밖에 없다.
지하철에 여성전용칸이건 여성안전칸이건 어쨌거나 젠더 구분 공간이 발생했다고 치자. mtf/트랜스여성은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을까? 내 상상력에 존재하는 mtf/트랜스여성의 상당수가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나의 반응은 간단하다. 그런 정책은 매우 폭력적이라고(이런 표현 참 오랜만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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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읽으며 좀 웃겼다. 서울시 시장이 밀고 있는 정책인데 욕은 여성가족부가 먹고 있다… 흠… 제목만 읽고 댓글 쓴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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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댓글은 ‘남성도 매너손으로 불편하니 남성전용칸을 만들어라!’고 주장한다. 가해자로 의심 받지 않기 위한 행동(성폭력의 복잡함을 고민하길 바라는 건 아니니;; )과 피해를 겪지 않기 위한 행동을 동일시하는 언설은 매우 곤혹스럽다. 아… 가해자의 인권, 수용인(구금인)의 인권, 피해경험자의 인권 논의가 매우 지저분해지면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아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