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림으로 원고 쓰기

오랜 만에 원고 하나를 썼다. 정확하게는 발표문이다. 미완성 원고여도 괜찮고 메모 수준이어도 괜찮지만 가급적 완성본이어야 한다. 원래 마감은 5월 31일이었지만, 내부 마감 시간을 잘 알고 있기에 과감하게 방금 전 원고를 보냈다. 오늘은 2차 마감시간이기도 하고. 근데 오늘도 실질적인 마감시한보단 빠른 거다. 하하;;

비록 땜빵으로 하는 일이지만 하고 싶은 주제가 있어서 하겠다고 했는데 글쓰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많은 시간을 이면지와 워드프로그램 앞에서 보냈다. 멍하니 하얀 종이만 보았다. 실제 원고를 쓴 시간은 어제와 오늘 단 이틀. 이틀 동안 200자 원고지로 73매를 초날림으로 썼다. 아하하. ㅠ_ㅠ 아울러 원래 쓰겠다고 했던 주제가 아니라 다른 주제를 썼다. 지난 특강을 통해 정리한 내용을 썼다. 핵심 소재는 “트랜스젠더 혐오 살해”로 알려진 사건이고, 주제는 불안과 폭력을 통해 구성하는 젠더 범주. 고인을 트랜스젠더 부르는 행위를 중심으로 분석했으나, 워낙 초날림으로 급하게 쓰다보니 제대로 못 했다. 물론 이건 변명. 지금 한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거다. ㅠ_ㅠ

조만간에 여기에 공개하긴 해야 하는데… 차마 부끄러워서.. 으헝헝. 논문이나 그 비슷한 형식이어야 하는데 상상으로 점철했다. 그래도 재밌는 작업이다. 이 글을 이번에 발표하고, 다른 기회에 한두 번 더 얘기해서 전면 개작한 후 다른 주제로 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될는지… 이번 글을 통해 원래 하고 싶은 얘기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게 자신이 없어 주제를 바꾸기도 했다. 다음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간단하다. mtf/트랜스여성의 남성성. 이것은 트랜스젠더 운동을 시작하며 줄곧 가진 고민거리기도 하다. 과연 이번엔 할 수 있을까?

특강, 글, 아이디어

지난 금요일 특강을 했습니다. 메일로 요청 받기는 참 오랜 만이랄까요. 몇 해 전만 해도 트랜스젠더 관련 특강 요청 연락이 가끔은 왔습니다. 그게 2006년부터 2007년 정도. 그땐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 이슈가 유난히 유행했죠. 새로운 이슈는 늘 많은 사람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지만, 이런 관심이 유지되는 기간은 매우 짧습니다. 관심이 시든 시기가 되면, 이제 관련 이슈에 관심이 있고 고민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합니다. 트랜스젠더 이슈만을 특별히 지칭하는 건 아닙니다. 소중한 너무 많은 이슈들이 단발성의 화제로 끝나고, 관련 이슈에 천착하는 이들은 늘 생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 걱정일 뿐입니다.

암튼 지난 금요일 진행한 강의는 지금까지 경험한 강의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를 하는 제가 재밌었달까요. 사실 걱정이 많았습니다. 강의를 요청한 곳이 워낙 수준이 높은 집단이라 어떤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어서요. 아울러 어떤 소재를 해석하며 풀어갈지가 고민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있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요.

소재를 걱정하고 있는데, 그날 아침 트랜스젠더로 불린 한 사람의 피살된 사건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http://goo.gl/mJRb 여자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여관에서 알고 보니 남자라 격분해서 살해했다고 했고, 언론은 이를 트랜스젠더 살해 사건으로 제목을 뽑았습니다. 첨엔 저도 트랜스젠더 혐오 사건으로 간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고인도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얘기했을까요? 이 간단한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트랜스젠더란 범주를 어떤 맥락에서 부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성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니 남자라서 트랜스젠더라고 부른 것이라면 매우 위험합니다. 아울러 살해한 이유를 단순하게 상대가 트랜스젠더여서라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가해자의 진술을 100%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 바로 이 사건을 통해, 강의 주제로 연결하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트위터 만세!) 관련 사건과 논쟁 몇 가지를 엮어 얘기를 풀어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고, 걱정보다는 얘기가 풀렸습니다.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저도 제 말하기 방식에 적응한 것일까요? .. 아하하;;

한 가지 더 기쁜 건, 강의를 진행하면서 6월 중에 있을 발표글의 초안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5월 마지막 날까지 원고를 넘겨야 하는데, 고백하건데 아직까지 초안도 못 잡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있는데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강의를 진행하면서 대충의 틀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쓰는 일만 남았는데.. 쉽지 않네요. 하하..

아무려나 글을 쓰기 전에 강의를 할 일이 있을 때보다 좋은 경우는 없습니다. 강의를 통해 막연한 아이디어나 원고 초안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글이 읽을 만하면 발표 뒤에 이곳에 공개할게요. 흐.)

강의가 끝난 후 돌아오는 길도 즐거웠습니다. 강의 가기 전에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지난 금요일은 즐거움이 가득한 하루였나 봅니다.

+
이곳을 폐쇄할까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두 가지 방안이 있었습니다. 글은 구글독스를 통해 공개하고 소통은 트위터로 하는 방법, 혹은 아예 계정을 옮기는 방법. 하지만 관두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이곳 만의 존재 이유가 있으니까요.

강의 후, 즐거운 자학의 시간

두 반 연속 강의를 했습니다. 관례에 따라 이박삼일 즐거운 자학의 시간에 들어갑니다. ㅠ_ㅠ



근데 수강생이 저보고 “조신하다”고 말했습니다아아아아아아..;;;;;;;;;;;;;;;;;;;;

도대체 어떤 연기를 하면 이런 평을 들을 수 있는 건가효?

아아… 이보다 더 가식적일 수 없다..랄까요?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