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관련 소식 및 단상

트위터를 메모장 겸, 관계 맺기 겸 등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메모가 쌓이면 블로깅을 하고요.. 하하.

01
지난 16일엔 이탈리아에 트랜스젠더 전용 감옥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http://bit.ly/93u8sr 살짝 심란하더군요. 요즘 관심이 구금시설이라 묘하게 반갑기는 한데요. 이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분리주의 같거든요. 트랜스젠더를 별도의 시설에 구금시켜, 기존의 이분법을 견고하게 유지하려는 욕망. 물론 현재 상황에선 별도의 구금시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효과적인지엔 회의합니다. 분리된 공간은 결국 아무 것도 바꾸지 않으니까요. 물론 살짝 부럽기도 하죠. 하하.

02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하리수 씨가 사진전을 연다고 합니다. 근데 누군가가, 하리수 씨가 언론사에 보낸 사진이 외설적이라고 고소했다네요.. 아악. 하리수 씨에게 고소할 내용인지, 언론사에 고소할 내용인지 매우 모호한데요. 저는 이 고소가 사진이 외설적인게 문제가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사진이기 때문에 외설적이라며 고소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외설적이라면, 그리고 외설적인게 안 좋은 거라면, 하리수 씨 사진전 홍보 사진보다 더 외설적인 연예인 사진이 널렸거든요. 하리수 씨 입양을 거부했던 기관처럼, 이번 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03
외국의 DandyID란 사이트가 성별 표시 부분을 male, female, transgender로 구분했다는 소식입니다. http://bit.ly/c5rfDA 아악. 이탈리아 감옥 소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몇 년 전, 메가박스 사이트에 가입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인상적이었던 점은 주민번호와 별개로 성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더라고요. 물론 메가박스의 성별은 여성, 남성 뿐이었습니다. 메가박스의 성별 표기 부분과 DandyID의 성별 표기 부분이 얼마나 다를까요? 물론 트랜스젠더를 따로 표시할 수 있도록 한 점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둘에서 차이를 못 느낍니다. 굳이 성별 표시를 해야 했을까요? 만약 이용자 통계를 위해 성별이 필요했다면, 고르지 않고 빈칸으로 남겨둘 수 있는 선택권도 줬으면 합니다.

04
연합뉴스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특집 기사를 세 편 실었습니다. http://bit.ly/9r8VPA http://bit.ly/a9sTK2 http://bit.ly/ctLD4T 근데 이 기사 세 편 모두 완전 코메디. ㅡ_ㅡ;; 내용은 나름 열씸히 썼습니다. 근데 저는 이 기사의 다른 면을 알고 있거든요. 구글버즈로는 몇몇 사람들과 관련 얘기를 이미 했는데요.

기사를 쓰기 전에 연합뉴스 기자 한 명이 ㅎ님과 만나는 자릴 가졌습니다. 기자 왈, 자신은 트랜스젠더 이슈를 전혀 모르니 배우기 위해 왔다고 했고요. 어떻게 아느냐면 저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ㅎ 님이 주로 얘기했고, 저는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그리고 공개된 트랜스젠더 관련 자료를 몇 가지 줬습니다. 그런데 그 자료에 문제가 있었는지, 설 명절 기간 부산에 있는데도 연락을 해서 자료를 보내주곤 했죠. 저는 그 기자, 정말 고생한다고 느꼈습니다. 기자에겐 명절도 없구나… 라면서요. 근데, ㅎ 님과 저를 만난 기자와 기사를 쓴 기자가 다르네요? 응? 이건 뭘까요?

더 재밌는 코미디도 있습니다. 기사 내용 중에

‘한국에 성전환자가 몇 명인가’란 단순한 질문에 정부 관계자조차 “생각보다는 많을 것”이란 어이없는(?) 답변을 내놓는 실정이다. http://bit.ly/9r8VPA


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생각보다는 많을 것”이라는 대답은 (제가 아는 한)정부 관계자가 한 거 아닙니다. ㅎ 님이 한 거죠. 그 맥락은 어떤 거냐고요? 보통 동성애나 트랜스젠더 관련 특강을 가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질문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에 트랜스젠더(혹은 동성애자)가 몇 명이나 되나요?” 입니다. 이럴 때 대답은 “저도 몰라요. 들이대는 잣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다를 거고요.” 정도? 한국에서 이성애자, 비트랜스젠더가 몇 명인지 아무도 모르듯,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가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비이성애자, 트랜스젠더는 매우매우 적을 거라고 가정하죠. 이러한 편견에 대한 가장 세련되고, 적확한 대답은 ㅎ 님의 “생각보다는 많을 것”입니다. 저, 옆에서 듣고는 완전 감동했다는. 흐흐. 그런데 이 대답이 엉뚱하게도 정부관계자의 어이없는 답변으로 돌변했네요. 읽고 완전 짜증났죠. 결국 편집술이 빚은 폐해인가요?

+
별거 아니지만… notice를 조금 수정했습니다. 그냥 그렇다고금요… 하하 ;;

한 해를 살아가기: 회의, 트랜스젠더 운동, 추억하기.

01
어제 오후,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한 통 받고선 오늘 오전에 회의를 하나 잡았다. 가까운 곳이지만 가까이 산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회의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밥을 먹고 나니 시간이 애매하다. 아카이브 일을 하러 가려니, 도착해서 후치를 꺼내면 알바를 하러 갈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02
玄牝에 있는 물건들 중, 몇 가지를 제외하면 모두 10살은 먹은 거 같다. 玄牝에 있을 때마다 애용하는 음악재생기는 1997년 겨울에 산 거다. 카세트테이프 두 개를 재생할 수 있는 제품으로, 당시 가격은 무려 88,000원. 만 원 정도를 더 주면 반복재생 기능이 있는 제품을 살 수 있었지만, 만 원이 없었다. 그래서 A면이 다 돌아가면 테이프를 꺼내서 B면으로 바꿔야 한다. 얼추 12살인 이 기기. 재밌게도, 음악을 들을 때면 테이프를 재생할 때가 가장 정감있다. 뭔가 포근하다. 이제는 CD로, 아니 CD에서 mp3를 추출해서 mp3p로 듣는 일상이지만, 테이프로 음악을 들을 때면 선명한 느낌은 없어도 따뜻한 느낌은 있다. 이건 모두 추억, 향수 때문이겠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감쌀테니, 이건 순전히 나의 추억, 기억, 경험때문이다. 가끔은 길에서 mp3p말고 테이프 재생기를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하하;;

근데 내겐 무려 20년은 된 거 같은 기기가 있다. ‘아하’라고 불렸던 휴대용 테이프 재생기. 처음부터 내건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걸 물려받았다. 테이프를 들으려면 소리가 늘어져서 힘들지만, 라디오를 듣는덴 지장이 없다. 이런 제품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골동품 취급할까? 신기해할까?

03
그래도 오래되기로는 지금 내가 사는 집, 玄牝이 가장 오래되었을 테다. 어쩌면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자려고 누워 있노라면 천장이, 벽이 앓는 소리도 들린다. 아침엔 벽이, 천장이 찌익, 찌직, 쿠웅, 하는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기도 한다. 설마 자고 있는 사이에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 하하.

04
어느 동네가 유서 깊지 않겠는가. 지금 내가 사는 동네만 역사와 이야기가 가득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내겐 특별하다.

05
내가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한 단체는 이제 형태를 바꿀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얘기는 나중에,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쓰기로 하자. 할 말이 너무 많지만 지금은 묻어두기로 하자. 기록은 다 남아 있을 테니까.

아울러 나는 이제 그 단체 소속으로 나를 소개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06
아침 회의는 그 단체에서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활동과 관련있다. 회의는 올해 사업으로 어떤 일을 기획하고 있는데 같이 회의를 했으면 한다는 거였다. 즉,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같이 얘기를 나눴으면 한다고 해서 잡은 회의였다. 프로포절만 선정되면 정말 잘 할 단체고, 나 역시 어떻게든 같이 하겠다고 말하겠지?

기쁜 일이다. 정말로!

07
어쩌면 내가 바랐던 형태로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걸까? 그런데 내가 바란 형태란 건 어떤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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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과 이태원 지역을 중심으로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홅으면, 트랜스젠더와 비트랜스가 구분되었던 적은 없는 듯하다. 한 동네 주민으로 살며 서로 돕고 싸우고 친목모임을 꾸리고 욕도 하면서… 그냥 세상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이곳에도 있(었)다. 이런 역사, 그리고 현재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소위 말하는 정체성이라는 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체성이라는 범주 구분이 개인의 경험과 개인들 간의 친밀감을 단절내는 건 아닐는지. 저 사람과 이 사람은 다르다는 식의 구분짓기, 범주를 나눠 설명하는 방식이 결국 ‘경험’과 ‘공동체’를 논쟁과 싸움의 장으로 만드는 건 아닐는지. 간단하게 쓸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정체성이라는 범주가, 집착할 수록 폭력적으로 변하는 건 확실한지도 모른다.
(오프라인으로도 만나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렇게 말한다음, “아님 말고”라는 말을 덧붙일 거란 걸 알겠지? 흐흐.)

09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건, 그런데 결국 따뜻했거나 아팠거나 어쨌거나 추억으로 각색된다는 의미겠지. 1997년 말에 산 기기도 용산과 이태원의 역사도 모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각색하는 이야기들이다. 어떤 식으로 각색할 것인가? 관건은 이것이지만,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아무려나 올해의 나는 또 어떤 일을 하려고 아둥바둥할까? 생활비가 나오는 일, 생활비 정도는 아니지만 공과금에 보탤 수는 있는 정도의 활동비를 주는 일, 이런저런 돈을 주진 않아도 내가 좋아서 일단 하고 보는 일… 아니다. 결국 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다. 그리고 상대방은 언제나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려고 애써서 고마울 뿐이고. 위태롭지만, 위태롭다고 광고를 하니 그냥 죽으란 법은 없는지 주변에서도 챙겨준다.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올해는 또 어떻게 살아갈까?

묻고 답하기: ‘있는 그대로의 나’?

가끔 이메일로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요청 받거나, 간단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때마다 답장을 보내곤 하는데요. 그러다보니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아울러 이메일을 보낸 분만 읽기엔 아쉽기도 하고요. 제가 쓴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동안 들인
품이 아깝달까요. 하하 ;; 그래서 앞으로는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이곳에 올릴까 합니다. 올리는 주기는 없습니다. 이메일이 오면
그때마다 정리해서 올릴 수도 있고 귀찮으면 한두 번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



글 혹은 이 시리즈의 독자는 이제 처음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 이슈나 퀴어 이슈에
관심을 가진 이들입니다. 그러니 내용은 최대한 단순하게 정리했습니다. 내용이 단순하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상당하지만 어쩌겠어요.
😛 이 시리즈(?)에 실릴 글의 상당 부분은 다른 단체에서 발간한 자료집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으니 꼭 함께 읽으시길 바랍니다.
🙂

기본 용어는 KSCRC사전을 참고하세요. 🙂 출판물로는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에 실린 용어정리가 있고, 다른 여러 단체에서 발간한 다양한 자료집도 있습니다.

모든 관련 기록물은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www.queerarchive.org)을 참고하세요. 🙂



질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꼭 수술을 해야 할까요?

답변:
다이어트를 하려는 사람에게, 성형수술을 하려는 사람에게, 혹은 자신감이 없는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네 자신을 인정해”란 식의 조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네. 가장 무난한(=맥빠지는) 조언이긴 합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란 개념 자체를 다시 고민하는 것이 더 좋은 게 아닐까요?

트랜스젠더의 맥락에서, 주민등록번호 상으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사람이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고 단 한 번도 자신이 여자가 아니란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다고 가정할 때, 이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남들 보기에 남자인 몸일까요, 자신이 인식하는 여성이라는 젠더정체성일까요? 이것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나’라고 생각하는 ‘나’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너’는 다르기 마련입니다. 이 차이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누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가도 논쟁거리고요.

비단 이런 경우만이 아닙니다. 한 쪽 손의 손가락이 여섯 개일 때, 의사 중에서 수술을 해서 손가락을 다섯 개로 만들지 않고 여섯 개를 그대로 두는 것에 동의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샴쌍둥이가 태어나면 거의 언제나 분리수술 기사가 함께 합니다. 많은 의사들은 아이가 간성으로 태어났을 때, 간성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항상 여성 아니면 남성 어느 하나의 젠더로 만드는 간성수술을 그 부모에게 권합니다(많은 경우, 간성의 의견은 무시되고요). 이런 맥락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쩌면 사회에서 가장 규범적인 형태에 맞춘 몸, 규범에 완벽하게 들어 맞지는 않아도 대충 그에 근접하는 형태의 몸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회가 용인하는 수준의 몸을 갖추었을 때, ‘있는 그대로’라는 언설이 그나마 가능합니다. 아니, 사회에서 용인할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수위와 기준이 있고, 그에 맞춘 몸일 때만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맥락에서, 여성이면서 고환과 음경을 유지하는 몸, 남성이면서 질을 유지하는 몸을 ‘있는 그대로의 몸’으로 여기진 않는다는 거죠.

질문 자체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란 표현 자체를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건 분명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