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 태도, 권력욕

각 커뮤니티엔 그 커뮤니티에서의 유명인이 있다. 커뮤니티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며 그 활동이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가 지명도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만들어진 이름을 사람들이 기억한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대충 이미지를 떠올리고 신뢰할 수 있거나 없음이 결정되기도 한다. (유명인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란 뜻이다.)
특정 공동체에서의 유명세는 그 개인의 노력 혹은 행동으로 이룬 것이기에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유명세가 곧 권력도 아니다. 물론 어떤 곳에선 인기, 유명세가 권력으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유명하다는 것은 그냥 유명하다는 의미 이상 없는 곳도 많다. 이를 테면 퀴어 활동판에서 유명한 활동가가 퀴어 활동판을 좌우할 권력이 없는 것처럼. 아울러 그것이 만약 권력이라고 해도 그 권력은 언제나 무수히 많은 비판적 평가를 동반한다. 그러니 유명하다는 건 권력을 행세할 수 있는 자리에 있음이 아니라 더 많은 비판에 직면할 자리에 있음을 뜻할 때가 많다. 원하지 않는 관심과 호사가의 구설에 오르기 쉽다는 의미다.
유명세가 좋건 나쁘건 상관없이 누군가가 유명세를 탐한다면, 인지도를 탐한다면 그땐 한 가지 방법 뿐이다. 그냥 묵묵하게 활동하면 된다. 온라인 카페라면 열심히 글을 쓰고 댓글을 달며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 된다. 때로 다른 사람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글을 쓰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활동하면 된다. 이것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기, 유명세는 본인이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기는 것이다. 특정 공동체에 몇 년 있었다고, 어떤 행동을 했다고 ‘나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까 대접해줘!’라고 한다면? 그냥 진상이다.
아울러 특정 공동체에 새로 가입한다면 다른 공동체에서의 역사, 유명세 같은 건 없다고 여겨야 한다. 전혀 다른 공동체에서 유명인이라고 해서 새로 가입하는 곳에서도 유명인처럼 행동한다면 혹은 유명인 대접을 바란다면 이건 ‘연예인병’이라고 불리는 어떤 행태를 하는 추태와 같다. 이를 테면 한국에서만 조금 유명한 연예인이 외국에서도 연예인 행세를 한다면? 아니 한국에서도 방송에 나올 때나 연예인이지 방송 아닌 곳에서 연예인 대접을 바란다면 욕 먹는 경우가 더 많다. 혹은 영화판에서 좀 유명하다면 영화인이 있는 곳에서나 유명한 것이지 다른 곳에서도 유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유명하다고 믿는다면 어떤 맥락에서, 어떤 공간에서 유명한 건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를 가리지 못 하고 유명인 행세를 하고 유명인 대접을 바란다면 이건 추태고 진상이다.
이건 다른 말로 유명하지 않은 사람 없고 귀하지 않은 사람 없다. 헌책방에서 알바 할 때면 소위 유명하단 사람 여럿 왔다. 물론 그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내겐 그냥 고객12일 뿐이었지만(뒤늦게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대학 교수면 대학에서나 교수지 헌책방에선 그냥 고객일 뿐이다. 그런데도 헌책방에 와서 교수라는 권위의식에 쩌는 행동을 할 때면, 그냥 추하단 느낌 뿐이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연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헌책방 판매원 입장에선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아울러 헌책방에 오는 사람 중에 유명하지 않은 사람 없더라. 다들 자신만의 커뮤니티에선 유명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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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변방의 듣보가 타인의 유명세를 질투하여 썼다고 독해하신다면… 예리한 겁니다. 우흐흐

어느 부끄러운 정치학을 메모하다

1969년 스톤월 항쟁 이후 1970년대 초, 뉴욕 등 미국 동부 지역에서 LGBT로만 얘기할 수는 없는 일군의 집단이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그것이 현재 미국 퀴어/LGBT 기록에 남아 있는 첫 자긍심 행진이다. 그 행진은 어쨌거나 진행되었지만 이듬해엔 두 개의 다른 행사로 나뉘었다. 기존의 행사를 이어간 집단, 그리고 일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와 그 정치학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첫 행사에서 일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와 게이 진행자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그 결과 일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는 트랜스젠더와 드랙퀸 등을 배제하는 별도의 행사를 진행했다.
이렇게 행사가 분리된 사건, 그리고 특정 집단을 배제하며 일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를 중심으로 열린 행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이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이렇게 행사가 나뉘거나 행사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에 최소한 정치학은 있었다는 점이다. 그 정치학이 비록 트랜스혐오를 밑절미 삼고 있다고 해도 공개적 주장과 논쟁은 존재했다. 하나로 시작하여 두 개로 나뉠 땐 정치적 해석과 입장이 있었다. 이 해석과 입장이 그 당시 그리고 지금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인지는 별개로 해도 어쨌거나 정치학은 있었다. 다른 말로 최소한의 품위가 있었다. 최소한의 논의, 생산적 정치학으로서의 논의라는 품위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어느 중요한 행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관련한 일을 들을 때면 그냥 부끄럽다. 그저 자신의 권력욕 혹은 과시욕, 명예 등을 위해서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고 욕하는 행태를 접하노라면 정말 부끄럽다. 권력과 명예가 필요하면 그냥 그걸 원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깔끔하다. 이 좁은 바닥에서 어떤 거창한 명예와 대표성을 원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가 부여할 수 있다면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아는 수준에서 퀴어/LGBT 바닥에 있는 그 누구도 누군가에게 무엇을 부여할 권한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자신의 성실성, 자신의 헌신과 노력이 자신의 가치를 형성하고 구성할 뿐이다. 그런데도 마치 누군가가 대표라도 될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를 지목해서 맹비난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려고 애쓰는 행태, 이런 행태는 그냥 추하다. 아무런 품위가 없다. 간단하게 절차만 지키면 될 일을 피해자 코스프레하면서 취하는 행태는 정말이지, 내가 그와 같은 지면에서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마저 부끄럽게 만든다.
인권의 최전선에 있다고 타인이 말해주길 바라는 그 욕망, 그리고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마음, 바로 이런 마음의 정치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정말 부끄럽다. 여기에도 남성성, LGBT 권력 정치 등으로 정말 많은 것을 논할 수 있다. 사실 이 욕망과 마음에 엄청난게 많은 정치학이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부끄럽다.
김조광수 관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