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가족?

8월부터 매달 한 편씩, 총 네 번의 칼럼(?)을 쓰기로 했다.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를 고민했다. 독자층이 매우 넓고, 퀴어 이슈를 거의 모르거나 “동성애”란 단어 정도만 들은 사람이 상당수일 가능성을 감안해야 했다. 트랜스젠더 이슈건, 동성애 이슈건, 바이 이슈건,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좀 알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냥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고 글을 쓰는 게 가장 좋다. 인권운동을 한다고 해도, 각자 집중하는 분야는 다 다르고, 누구나 모든 걸 알 순 없으니까.

어떻게 쓸까를 잠시 고민했지만 결론은 쉽게 났다. 지금까지 어디선가 했던 이야기를 가볍게 읽을 수 있게 바꾸는 것. 이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번에 보낸 글도 그렇다. 강의에서건 다른 어떤 곳에서건 몇 번인가 말한 내용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겐 매우 익숙한 얘기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겐 매우 낯선 얘기다. 매우 익숙한 느낌과 매우 낯선 느낌. 이 간극을 매우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낯선 느낌일 사람을 독자로 가정했다. 익숙한 사람이 더 읽을 이유야 없으니까. 🙂

근데 잘 쓴 글은 아니다. 다음엔 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싶다.

*편집자에게 보낸 판본: http://j.mp/9rRvy7
*편집 후 출판된 판본: http://j.mp/ahVT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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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01-기묘한 가족? – 발송용

기묘한 가족?

루인(잉여라서 행복한 트랜스젠더 활동가)

 

 

01

미국 ftm/트랜스남성, 토머스 비티의 세 번째 임신 소식이 얼마 전, 언론 기사에 보도되었다. 몇 해 전에도 “임신한 남성”이란
제목의 기사로 국내의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비티가 태어났을 때, 의료제도는 그를 여성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남성으로 이해하고, 호르몬 투여와 같은 의료적 조치를 통해 지금 남성으로 살고 있다. 그런 그가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에 출연해, 아이를 갖고 싶지만 파트너가 임신을 할 수 없어 자신이 임신했다고, 얘기했다.

 

<사진: 관련 기사 캡쳐. 경향닷컴.>

 

비록 비티가 “임신한 남성”으로 상당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그가 유일한 건 아니다. 국내외에서 트랜스남성이 임신하는 경우는
상당하다. 그 사유는 다양하다. 호르몬 투여를 시작했지만, 비티와 비슷한 상황이라 임신을 하는 경우가 있다. 때때로 트랜스남성과
트랜스여성이 결혼을 하고 트랜스남성이 임신을 하는 일도 있다. 혹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 정체성 관련 고민이 없어질 거란
막연한 믿음에 따른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류로 임신을 한다. 언론이 보도한 비티의 삶은, ‘가시적’인 어떤 사건일 뿐
유일하거나 특수한 경우는 아니다.

 

 

02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동반국)라는 곳에서 얼마 전,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란 광고를 게재했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더 정확하게는 이성애가 아닌 모든 섹슈얼리티를 “반대”하는 광고다. 동성애 관계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위기를 느꼈는지 불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광고를 냈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성애가 아닌 결혼관계는 공식적인 결혼
형태가 아니다. 법과 제도 상으로 가능하지 않다.

 

<동반국 광고. 출처는 구글이미지검색..;; >

 

물론 ‘현실’은 다르다. 법적으로 동성결혼이나 비이성애결혼을 한 경우가 없지 않다. 우선,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고민하고 있지만,
결혼과 아이가 해결책이라고 믿고 결혼한 경우. 이 경우를 동성결혼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규범적 이성애결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리고 바이 여성과 바이 남성이 결혼한 경우. 혹은, 레즈비언인 트랜스여성과 트랜스젠더가 아닌 레즈비언의 결혼(또한 게이
트랜스남성과 게이 비트랜스남성의 결혼). 트랜스여성이나 트랜스남성이 호르몬 투여와 같은 의료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겉모습은
남성이나 여성으로 통할 가능성이 크고 법적 신분 역시 그러하다. 이들 각자가 상대방과 합의하고 결혼했을 때, 이 결혼은 어떤
결혼일까? 규범적 제도는 이들의 결혼을 이성애결혼으로 기록하지만, 이성애결혼은 아니다. 며느리가 남자거나 사위가 여자인 결혼은,
종종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동반국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성애결혼제도, “아버지/사위/남편=남성”과 “어머니/며느리/아내=여성”이란 가족제도를 고집하지만,
헛된 집착이다. 부모들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동반국은 부인(!)하겠지만, 며느리가 남자거나 사위가 여자인 경우는 드물지 않다.
드물거나 낯선 느낌이라면 이들이 드물거나 드러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상력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비이성애관계의 결혼은, 일상에서
드물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03

정철 송강의 시조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란 구절은 여러 이유로 비판 받는다. 통상의 인식에서, 아버지가 아이를
낳진 않는다. 송강은 부계혈통이 규범적인 질서라는 당대 인식을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부계혈통을 규범이라고 주장하고 싶었거나.
하지만 토마스 비티처럼, 트랜스젠더가 개입하는 순간, 송강의 시조는 말 그대로다. 즉, “아버지 날 낳으셨다.” 비티의 아이는
송강의 시조를 자신의 경험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송강의 부모 역시, 트랜스젠더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트랜스젠더를
고민의 주요 축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맺어온 관계의 상당 부분이 꼬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남성이어야 하고, 어머니가 여성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사위가 남성이어야 하고, 며느리가 여성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아버지/사위/남편은 남성이고, 어머니/며느리/아내는 여성이란 막연한 믿음과 의심하지 않는 태도가 이성애 가족을 당연시한다. 이런
믿음과 태도가 다양한 형태의 젠더/섹슈얼리티와 가족 구성(오지랖 넓게 확장하면, 모든 인간관계)를 단순하게 만든다.

 

 

+

기묘하기로 따지면 흔히 말하는 “이성애가족”을 따를 가족구성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건 나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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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출판본이 가장 읽기 좋은 상태입니다.

++아시겠지만, 나중이란 결코 오지 않을 시간을 뜻합니다. 크크. 😛

[영화] 캔디레인, 노 엔드, 뉴 월드: 퀴어영화제 SeLFF 상영작

헝 아이 첸Hung-I Chen [캔디 레인]
로베르토 쿠질로Roberto Cuzzillo [노 엔드]No(End, Senza Fine)
Etienne Dhaene [뉴 월드](The New World, Le Nouveau Monde)

어제까지 퀴어영화제, SeLFF에서 상영하는 세 편의 영화를 꼼꼼하게 살폈다. 말 그대로다. 어떤 영화는 5분 정도의 분량에 한 시간이 걸렸다. 어떤 일로 꼼꼼하게 살펴야 했다. ;;

[캔디 레인](Candy Rain)을 살피는 시간은 내내 유쾌했다. 이야기와 영상 모두 감각적이다.
[캔디 레인]은 기본적으로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행복한 사람,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 함께 하고 싶지만 함께 할 수 없어 불행한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 이렇게 네 종류의 사랑 이야기가 느슨하게 이어져 있다. 영상의 색채가 같은데도 에피소드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는 건 이 영화만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네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개그코드는 완전 내 취향이다. 흐흐. 살피는 내내 계속해서 키득 거리며 웃었다. 어떤 장면에선, 앉아 있는 장소가 도서관 혹은 공공장소란 사실을 잊고 박장대소를 할 뻔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연신 웃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와 네 번째 에피소드에 공감했다.
소개글은 여기

다른 두 편은 인공수정과 아동양육 이슈와 관련 있다. 파트너 관계에서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고, 아이를 갖는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은 다양할 테다. 어떤 이들은 의료과정을 거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입양 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대리모’를 고용할 수도 있고, 그리고 …. 두 편의 영화는 서로 다른 이슈를 전하고 있다.

[노 엔드](No End, Senza Fine)는 인공수정을 하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공수정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건 깔끔하게 줄였다. 인공수정을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다뤘다. 아이를 갖기로 했을 때, 부모의 반대를 직면할 수도 있다. 이건 두 영화 모두 같다. 문제는 인공수정을 하기 전에 파트너에게 죽을 수도 있는 병이 생겼을 때, 이 글을 읽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유사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에서, [노 엔드]의 변별점은 이 부분이다. 아이를 갖기로 합의했는데, 파트너가 죽을 수도 있는 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참, 이 영화에선 인공수정 방법으로 의료기술을 사용한다.
소개글은 여기

[뉴 월드](The New World, Le Nouveau Monde)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 후 이성애가족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해소과정이다. 다른 하나는 정자를 제공한 ‘아버지’의 문제다. 레즈비언 관계에서 임신을 한 사람과 정자를 제공한 타인은, 현재의 가족개념에서 어떻게든 연결이 된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 사람은 엄마로 불릴 것이고, 정자를 제공한 사람은 아빠로 불릴 것이다. 그럼 임신한 사람의 파트너는? 아이의 엄마인 것 같기도 하고, 아빠인 것 같기도 하고, 아이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한 완전한 타인 같기도 하다. 정자를 제공한 이가 ‘아버지’로서 자신의 역할을 요구한다면 파트너의 소외는 가중된다. 이 영화는 이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영화에서 선택한 인공수정 방법은,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꽤나 코믹하다. 놓치기 아쉬울 수도 있다.
두 영화를 살피면서 인공수정이슈와 파트너 관계에선 임신을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관계를 새롭게 고민할 수 있었다. 공동체, 관계, 아동양육, 인공수정, 출산, 엄마노릇, 아빠노릇과 같은 이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상당히 흥미로울 듯하다. 커밍아웃이란 주제에 관심 있다면 [뉴 월드]의 몇 장면들이 인상적일 것 같다.
소개글은 여기

암튼 세 편의 영화를 살핀 후, 좋은 영화의 기준이 조금 바뀌었다. 이야기가 탄탄하고 편집이 잘 된 영화가 좋은 영화일 수 있지만, 이제부턴 대사가 적은 영화가 좋은 영화다. ㅡ_ㅡ;; 아, 무성영화 만세!! ;;;;;;;;;;;;;;;;;; 흐흐.

이쯤해서 고백하자면, SeLFF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자막을 제작하고 있다. 덕분에 네 편의 영화를 미리 살피는 행운을 잡았다. 위의 영화 평은 준 내부자의 입장에서 쓴 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모호하다. 아마 단순 관객으로 영화를 접했어도 비슷한 글을 썼을 거 같다.

포스터 및 프로그래머 추천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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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고민

이번 학기엔 수업을 한 과목만 듣는다. 어찌어찌하여 선택한 과목은 가족과 관련한 수업인데, 수업에 들어가기 전 이 수업을 통해 무엇을 고민할까를 고민했다. 보통 수업 첫 날 선생님들이, 이 과목을 듣게 된 이유를 물어보기에 그에 적절한 답변을 모색하는 거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과는 별도로 어쨌든 이 과목을 듣기로 했다면 이 과목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고민은 필요 없었다. 주제어는 “트랜스젠더/퀴어와 가족”으로 어렵지 않게 잡았다. 그러면서 트랜스젠더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가족구성권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고민해야지 했다. 이런 고민을 기말 논문으로 풀어내면 좋겠다는 안일함도 있었다.

지난 토요일(9월 1일) “우리, 여기에, 함께”의 기획으로 개최한 포럼인, “한국에서 성적소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에 다녀왔다. 다녀온 후 고민이 한층 많아졌다는 점에서, 확실히 잘 간 것 같다. 포럼에서 사람들의 얘기와 고민을 들으면서, 확실히 주제에 대한 고민이 짧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아쉬운 건, 어제인 일요일에도 다른 행사가 있었는데 결국 못 간 거. 가고 싶었지만 발등에 불인 걸 어쩌랴.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후 즈음의 시기에 사람들과 만나서 루인의 관심 주제를 얘기할 때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루인에겐 확실한 주제가 있다고. 그런 말과는 별도로 스스로도 확실한 주제가 있다고 자만한 시절이 있다. 웃기게도 그때 얘기했던 주제는 기껏해야 “트랜스젠더/퀴어와 관련해서 쓰려고요” 정도였다. 지금에야 이런 말이 코미디에 가까운 발언인 걸 알지만(국문과에 입학하면서 “소설과 관련해서 쓰려고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그땐 정말 이 정도면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런 믿음이 한 달을 못 갔다는 거랄까. ㅜ_ㅜ

가족과 관련해서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의 고민 역시, 이와 같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트랜스젠더/퀴어와 가족의 어떤 지점을 고민하려는 건지 더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았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렇게 막연하게 주제를 잡고 있었던 건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다는 깨달음. 제도적인 가족구성권, 부모를 비롯한 가족에게 자신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들, 얘기를 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얘기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얘기하는 과정은 어떤지,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의 과정은 어떤지, 이런 얘기를 들은 가족들의 반응과 이런 얘기를 가족들은 어떻게 경험하는지, 한국사회에서 친족어들은 성별이분법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데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을 한 후 가족과 친족들 사이에서 이런 호칭은 어떤 식으로 바뀌고 있는지(지금까지 불렀던 방식으로 부르는지, 다르게 부르는지, 계속 헷갈리는지, 의도적으로 섞어 사용하는지 등등) 등등. 또한 아들로서의 경험을 얘기한다는 것이 곧 자신을 “남성”으로 설명하는 건 아니고, 딸로서의 경험을 얘기한다는 것이 곧 자신을 “여성”으로 설명하는 것도 아닐 때, “남성”/”여성”으로만 구분하는 가족관계에서 자신을 “여성”/”남성”이란 식으로 구분하지 않는 트랜스들은 어떻게 협상하고 있는지, 혹은 “남성”/”여성”이란 식으로 자신을 얘기하는 트랜스라고 해서, “딸”(ftm의 경우)/”아들”(mtf의 경우)로 자신을 설명하기도 하고 “딸”(ftm의 경우)/”아들”(mtf의 경우)로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경험들을 마냥 부정하는 건 아니란 점에서 젠더화된 가족/친족 관계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어떻게 협상하는지, 등등.

기말레폿 수준에서 모색하기엔 하나 같이 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 얘기들이다. 하지만 좀 더 하고 싶은 얘기로 쓰겠지(좀 더 하고 싶은 얘기란 후자의 두 가지).

아무튼, 토요일에 참가한 포럼은 일정 간격으로 계속해서 개최하는 행사가 되면 좋겠다.